‘다사다난’하고 ‘지통재심’(至痛在心, 지극한 고통이 마음속에 있다)했다. 2014년 4월16일,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월호가 가라앉아 299명이 목숨을 잃었다. 두달 전에는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의 붕괴 사고로 10명이 사망했다. 생활고로 사망한 송파구 세 모녀 사건,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 등 마음을 착잡하게 하는 뉴스가 이어지는 가운데 나라 밖으로는 에볼라 바이러스로 7500명이 사망했고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가 득세하며 테러위협을 확산시켰다. 다사다난한 시국에도 사람들은 영화관을 찾았다. 2014년 관객수는 2억1506만명에 달하며 2년 연속 2억명을 돌파했다. 이해, 2013년 12월 개봉작인 <변호인>을 포함해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도 네편이나 나왔다. 2014년 여름의 극장가는 여느 때보다 뜨거웠다. <군도: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 <명량> <해적: 바다로 간 산적> <해무>까지 100억원 이상 들인 블록버스터 4편이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하며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여름은 박스 자체가 크다보니 센 외화가 없으면 한주 단위로 내보내도 소화가 가능했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배급사 관계자 역시 “텐트폴 시장에 작품을 한주 간격으로 내거나 때때로 센 외화를 끼워서 작품 2편을 내놓는 경우도 있는데 리스크를 기꺼이 감수하는 선택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거다. 이때만 해도 천만 영화가 여러 편 나오던 때였다”고 말했다.
<명량>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다
7월23일, 여름 블록버스터 중 가장 먼저 개봉한 <군도>는 개봉 첫날 55만명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했다. 관련 홍보 담당자는 “<군도>는 마케팅쪽으로 역대급 영화였다. 여름의 최고 기대작이었고 모니터링 시사도 나쁘지 않았지만 개봉 직후 반응이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라고 했다. 첫주 토요일 87만명이었던 관객수가 일요일에는 10% 줄더니 2주차 주말에는 10만명대로 줄었다. 내부에서도 배급 문제라기보다 영화가 충분히 관객에게 어필하지 못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반면 <명량>은 개봉 전만 해도 큰 기대작은 아니었다. “CG 퀄리티에 대한 우려와 너무 잘 알려진 이순신 이야기가 얼마나 새로울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어서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여름 시장에 합류한 <명량>은 개봉 첫날 68만명 관객을 모아 직전의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갈아치웠다. 이어 12일 만에 누적 관객수 천만을 돌파했고 최종 관객수 1761만명을 기록했다. 오늘날까지도 역대 박스오피스 1위로 남아 있는 기록이다.
중장년층이 움직였다
<명량>은 개봉 4일째부터 누적 관객수가 100만명 단위로 늘어났다. 당시 CGV와 맥스무비 예매 분석에 따르면 40대 관람객 수가 역대 최대였고, 재관람률도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중장년층이 움직이자 낮 시간대에 매진됐고 당시 1586개 스크린 좌석 점유율이 86.3%를 기록하기도 했다. 전년도보다 30%나 늘었다는 중장년 관객층은 어떻게 움직였을까.
“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리더의 부재로 실망했던 국민들에게 영화 속 이순신의 리더십은 현실의 공백을 충족시키는 힘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맘카페나 학부모 사이에서 <명량>이 필관람 영화로 추천되고 있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극장을 찾은 30, 40대 여성 관객이 많았다”라고 홍보 관계자는 당시를 떠올렸다. 정치적 편향성 논란을 일으켰던 국정교과서 이슈나 중고교과정에서 한국사가 선택과목이었던 상황이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겠다. 당시의 중장년층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386세대는 이전의 중장년층과 다른 세대이고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데도 적극적이다 보니 이순신에 열광해서 나왔다기보다 자녀나 친척들에게 <명량>을 권하며 이순신에 대한 열광을 지키려는 사람들에 가까웠다.” 의도가 어떻든 30~50대 관객이 가족을 동원해 극장을 찾은 게 <명량>의 흥행에는 주효했다.
패밀리 타깃이 유효했다
11월 비수기에 이례적인 흥행을 일으키며 천만 관객을 모은 <인터스텔라>는 62개 개봉국 중 미국을 제외하고 한국에서 가장 큰 매출을 기록했다. 맥스무비 예매 통계에 따르면 40대 이상이 43%를 차지했고 가족 단위의 관람객이 많았다. 정통 SF영화의 흥행에도 교육열은 빠지지 않는 키워드였다. 당시 마케팅을 담당했던 김태주 올댓시네마(현 로스크) 실장은 “자녀 교육뿐 아니라 성인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물리 강의 영상을 만들고 물리학자와 GV를 열기도 했다”고 말했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나 영화 개봉 직후 ‘가족애’로 이어진 마케팅도 유효했지만, <인터스텔라>가 그해 천만 관객을 모은 데에는 ‘가족’들의 힘이 있었다.
<국제시장>은 애초에 ‘패밀리 타깃’ 영화였다. 당시 영화 관계자는 “트렌드나 특정 연령층에 집착하면 타깃을 좁히게 되지만 패밀리 타깃 영화는 1인이 최소 4장의 표를 구입한다. 3대가 관람하면 6장 이상”이라고 말했다. ‘3대가 함께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가족영화’로 홍보한 <국제시장>은 이듬해까지 도합 1426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키덜트’ 관객을 대상으로 ‘성인 뮤지컬영화’라는 마케팅 포인트를 잡았던 <겨울왕국> 역시 가족 관객을 사로잡으면서 승자가 됐다. 이채현, 이나리 호호호비치 공동대표는“당시 성인 대상 시사회를 많이 열기도 했지만, 노래 영상이나 의상 등 파생 콘텐츠가 생기면서 관객 사이에서 신드롬이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관객 팬덤을 형성한 <겨울왕국>은 장기흥행을 이어가며 외국 애니메이션 사상 첫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설 연휴 극장가를 접수한 <수상한 그녀>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가족 코미디였다. “황동혁 감독의 각색이 절묘했다. 과학적 근거 없는 판타지지만 드라마로 잘 밀어붙였고, 심은경, 나문희, 성동일 등 배우들이 잘 살렸다.” 거기에 로맨스, 가족, 감동 요소를 잘 섞어 ‘웃기다 울리는’ 드라마를 완성했다. 384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영화계에 이변을 일으켰던 독립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도 2014년에 빼놓을 수 없다. 홍보를 맡은 영화사 하늘 최경미 이사는 “영화 속 감동 포인트가 여성, 혹은 젊은 층에 소구될 거라고 생각했고 처음부터 중장년층이 타깃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젊은 층에서 시작된 입소문에 중장년층이 반응하면서 스코어가 역주행했다, 제작비 1억2천만원으로 만든 영화는 당해 매출액 298억원을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