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인의 데구루루]
[김세인의 데구루루] 굴러가는 영화
2023-04-13
글 : 김세인 (영화감독.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연출)
<정오의 낯선 물체>

여자, 외계인, 아기, 임신, 자신, 복제, 출산, 탈피, 수영장, 반복…

인터넷을 처음 사용할 수 있게 된 10살 무렵부터 나는 종종 위의 키워드들을 나열해 검색했다. 위 키워드들은 텔레비전으로 본 어느 영화 속 한 장면이자 아주 긴 시간 간헐적으로 꿨던 꿈 장면의 요소이다. 중학생 때 수업이 시작하기 전 쉬는 시간에 컴퓨터실로 뛰어가 학교 컴퓨터로, 대학 신입생 때 도서관 컴퓨터로, 늦은 새벽 카페에서 과제를 하다 노트북으로, 지하철을 타고 가며 휴대폰으로 장면의 근체를 찾기 위해 검색했다. 이 미스터리는 장시간에 걸쳐 불현듯 얼굴을 드러내고 검색창에 나를 풍덩 빠뜨렸지만 재능 없는 탐정인 나는 여전히 어떤 영화의 장면인지 알지 못한다.

유치원 등원 중 작은 사고가 난 이후로 어린이 시절은 집에서 홀로 영화를 보며 지냈다. 영화 채널에서 나오는 영화들이었는데 팀 버튼 감독의 영화들, <애들이 줄었어요> 같은 가족 코미디 영화, <죽어야 사는 여자> <프라이트너> <엑시스텐즈> 등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영화들도 방영되는 대로 시청했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 며칠 전에 본 영화의 내용도 나에게는 희미하기 때문에 당연히 대부분의 영화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쩐지 그중 여전히 생경하게 남아 있는 장면이 있다.

임신여자가 누군가로부터 쫓기고 있다. 그녀는 외계인으로 예상된다. 점점 배가 불러오더니 수영장에서 출산하게 되는데 정작 태어난 것은 아기가 아니라 자신, 여자였다. 출산이라기보다는 마치 탈피 과정 같은 모양새인데 그런 복제가 영화 내내 반복된다.

이 장면은 지속적으로 꿈에서 반복되었고 문득 일상 속에서도 떠올랐다. 여름방학 초저녁 무렵 발톱을 깎다가 떠올라서 나를 선득하게 만들고, 몹시 피곤했던 비 오는 날에도 괜스레 장면이 떠올라 외계인 여자가 안쓰럽게 느껴졌고, 늦은 낮잠 속 꿈에서도 선명히 떠올라 잠에서 깬 후 현실이 가짜인가 잠시 혼란스러워하기도 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장면은 여러 감각으로 명징해지는데 어쩐지 영화의 정체는 점점 미궁으로 흘러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부족한 검색 실력 탓에 찾을 수 없는 이 영화를 급기야 25살, 졸업영화로 찍어버리자 결심하기도 했었다. 당시 나는 여느 20대 청년이 그러하듯 자아라든지 정체성에 관한 고민으로 잠들기 어려웠고 그것들과 연결지어 반복되는 장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상상했다. 하지만 이 장면이 정말로 실재하는 영화라면 결국 표절이라는 판단이 들어 시나리오도 쓰기 전에 그만두었다. 긴 세월 동안 머릿속에서 변형되고 섞인 장면은 이제 영화인지, 꿈인지 구분도 할 수 없지만 말이다.

지난겨울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았다. 사실 잘 모르겠다. 이 영화는 이래서 좋고 저 영화는 저래서 좋고. 내 취향은 기준 없이 변덕스럽다. 나는 점심 메뉴도 정하지 못하는 사람인데. 그러다 보니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묻는 질문에는 우물쭈물하다 입을 꾹 다물게 된다. 부끄러웠다. 날을 잡고 사랑하는 영화에 대해 생각했다. 뒤늦은 고민이었다.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은 뭘까. 가장 사랑하는 영화에 대한 답이 어렵다면 가장 오래 생각한 영화는 뭘까. 가장 오래 나와 함께한 영화는 무엇일까.

그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까지 만든 영화들을 포함해 비교해도 가장 오래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던 의문의 외계인 여자. 비록 온전하지는 않지만 부분적으로, 꿈으로 기억으로 형태를 바꿔가며 내 곁에서, 내 안에서 부유했던 그 장면. 아무 기준 없이 떠올랐다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꽤 자주 그것은 내가 혼자일 때, 외로울 때, 혼란스러울 때 나타나 그 시간들을 함께했다. 섣부른 위로 없이 다만 암흑의 구멍으로 남아 혼란한 마음들, 쓸데없는 고민들을 뺏어가고 굉장한 호기심으로 시간들을 채워주었다. 사랑까지는 몰라도 꽤 의리 있는 우정이 아닌가. 이제는 이 장면을 영화라 불러도 될까. 그것은 이제 내 일부가 되고 내 일상이 되고 내 친구가 되었다. 나의 친밀한 미스터리.

어린이였던 내가 하릴없이 보았던 영화들, 늦은 새벽 깜깜한 거실에서 까무룩 흐릿해지는 의식으로 만났던 케이블TV에서 흘러나온 영화들, 실험영화제에서 의미도 모른 채 받아들였던 영화들, 이미 친구의 감상과 섞여버린 친구가 들려줬던 영화의 줄거리들. 온전한 몸체는 아니지만 나에게 내려앉은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다. 2022년 가을부터 겨울까지 지난 영화(<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관객과의 대화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필사적으로 의미와 장치들, 설계 따위를 피력했지만 정말로는 상관없다. 솔직히 부끄럽게도 동료들과 친구들에게 영화가 관객에게 다르게 전달되면 어떡하냐며 세상 모든 호들갑은 다 떨었지만 정말, 정말로는 상관없다. 다만 위에 호출된 영화들과 나의 관계처럼 영화가 누군가에게 내려앉아 미지의 어떤 감각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영화 <정오의 낯선 물체>에서 선생의 치마 속에서 튀어나온 구슬이 사람들을 경유해 흙바닥을 굴러가는 축구공이 되었던 것처럼 이야기가 누군가의 사연으로 누군가의 신비로운 구슬로 또 이내 천진한 사람들의 장난감이 되는 것을 상상해본다. 결국 내가 도달하고 싶은 것은 친밀함인가. 친밀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나는 내가 만드는 영화, 이야기, 앞으로 <씨네21>에서 연재할 글들도 단지 어떤 단서로 남아 오래도록 사람들 사이를 무심하게 굴러갔으면 좋겠다. 아주 멀리, 깊은 곳으로 굴러가며 사람들 안에서 더해지고 덜어지며 마구 곡해되고 오해되고 가리가리 찢겼으면 한다. 3주에 한번, 이 지면을 통해 이야기를 쓰고 생각하는 생활에 대해 써보려 한다.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워하는 와중에 지금 이렇게 또 하나의 구슬이 식탁에 앉아 키보드를 치는 내 잠옷 속에서 튀어나와 굴러간다. 데구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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