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케첩과 주스의 중간 정도 되어 보이는 핏물이 사방에 어지럽게 흩날린다. 잔인한데 웃긴, 온도 차를 기꺼이 즐길 수 있다면 이 혼란스러운 난장판에 발을 디뎌도 좋다. <렌필드>는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에서 백작의 시종으로 나온 렌필드를 모티브로 한 영화다. 한때 부동산업자였던 렌필드(니컬러스 홀트)는 드라큘라(니컬러스 케이지)의 유혹에 빠져 그의 하인이 된다. 그로부터 90여년, 렌필드는 드라큘라가 힘이 약해지거나 위기에 빠졌을 때마다 그를 보살피며 거처를 옮겨야 하는 피로한 삶을 이어간다. 초인적인 힘과 영생의 영광은커녕 정착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회의를 느낀 렌필드는 심리상담 모임에도 나가보지만 신통치 않다. 그러던 어느 날 불의에 저항하는 용감한 경찰관 레베카(아콰피나)의 용기에 마음이 흔들린 렌필드는 달라지기로 결심한다. 한편 경찰관이었던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은 레베카는 도시를 주름잡는 범죄집단 로보 패밀리에 맞서 고군분투 중이다. 각자 다른 이유로 목숨을 위협받는 두 사람은 거대한 적을 물리치기 위해 힘을 합친다.
<렌필드>는 유혈이 낭자한 고어물과 실소가 터지는 코미디 사이를 널뛰며 피바다 소동극을 벌이는 B무비다. 1931년 첫선을 보인 <드라큘라>의 속편을 자처하는 만큼 원작 소설에 나온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와 현대적으로 각색했는데, B급 코미디를 무대 삼아 액션, 스릴러, 호러, 누아르까지 온갖 장르를 뒤섞었다. 특히 드라큘라에 종속된 하인 렌필드의 모습을 부당한 노예계약, 우울증과 동반의존증 등 현대사회에 어울릴 코드로 비틀어 풍자하여 공감대의 폭을 넓힌 점이 영리하다. 어떤 경로로 우회했건 간에 <렌필드>의 본질은 피칠갑 B급 액션이다. B급 병맛 코미디라는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기상천외하고 말도 안되는 볼거리를 쉴 새 없이 제공한다. 과한 묘사에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걸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피칠갑 액션, 만화적 과장이 주는 재미에 눈 돌릴 새가 없다. 무엇보다 배우와 캐릭터의 결합이 탁월하다. 드라큘라를 익숙하면서도 파격적으로 재해석한 니컬러스 케이지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마치 그를 위한 맞춤복처럼 독보적이다. <웜 바디스>가 연상되는 니컬러스 홀트의 소심과 세심을 넘나드는 연기는 설득력을 더한다. 아콰피나 역시 한 장면, 한순간을 그냥 흘리는 법 없이 깨알 같은 웃음을 선보인다.
다만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미처 담지 못한 부분이 다소 아쉽다. 짧은 상영시간에 속도가 꽤 빠른 편인데도 종종 늘어지거나 생략된 지점이 없지 않고, B급 정서를 방패 삼아 편의적이고 허술하게 넘어가는 부분이 상당하다. 그럼에도 레트로의 재해석이란 장점과 과잉이라는 특색을 뚝심 있게 밀어붙인 크리스 매케이 감독의 고집이 돋보인다. 진입 장벽이 확실한 반면 일단 통과하면 충분히 즐길 만한 통쾌하고 기발한 난장판이다.
드라큘라에게 바칠 먹이를 찾아야 하는 렌필드는 우울증, 동반의존증 치료모임에 참석한다. 그들을 괴롭히는 나쁜 사람을 희생자로 데려가려고 하는 렌필드의 모습은 마치 악으로 악을 응징하는 다크 나이트를 닮았다. 혹은 해방을 꿈꾸는 집요정 도비를 닮은 걸지도?
CHECK POINT
<드라큘라> (감독 토드 브라우닝, 1931)<렌필드>는 1931년 벨라 루고시 주연의 <드라큘라>에 가장 가까운 영화다. 원작 소설과 달리 드라큘라와 계약을 하러 가는 조너선 하커의 역할을 렌필드가 맡게 된 것도 영화만의 각색이었다. <드라큘라>를 직접 오마주한 장면을 찾는 재미가 쏠쏠한데, 여기저기서 빌려온 클리셰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묘하게 비틀어 깨부수는 영특한 재주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