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로부터]
[김수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다음 소희’는 대학을 안 가도 될까
2023-04-20
글 : 김수민 (시사평론가)

<다음 소희>를 본 관객은 ‘다음에 올 소희’의 삶을 향해 기도했을 것이다. 콜센터 소희를 괴롭힌 자본과 소비자의 갑질이 사라지기를, 다음 소희에게 권리와 노조가 주어지기를 소원했을 것이다. 다음 소희의 일터는 자신의 적성과 전공을 살린 곳이기를, 특성화고가 이를 받쳐주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나의 바람은 조금 더 나아간다. 나는 다음 소희가 본인이 원한다면 부담 없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고, 그의 직업 탐색이 여유롭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맹목적으로 대학에 진학한다. 국가적 낭비다.” 지난 3월31일, 국회 인구위기특별위원회에서 한 의원은 이렇게 발언했다. 많이 듣던 말이다. “대학은 공부할 놈만 가자. 대학 안 가도 먹고살 수 있게 해주면 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제 자녀를 ‘공부 안 해도 될 놈’으로 분류하는 경우는 못 본 것 같다. 자기네는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 강물’이고, 남의 집은 ‘개천의 가재, 붕어, 개구리’인가. 유럽의 낮은 대학 진학률이 부러운 사람들은 대학에 가는 사람과 안 가는 사람이 어느 계급·계층에 속해 있는지, 그곳에서도 ‘고졸 마이스터’의 신화가 붕괴되고 있는 현실부터 살펴보시라.

2016년 스크린도어 수리 중 사망한 ‘구의역 김군’은 그 무렵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내겐 ‘대학을 나와야 대접받는 세상’보다 취업하기에 너무 이른 그의 나이가 더 두드러져 보였다. 최근 정년 연장과 관련한 여론조사에서 2030세대가 높은 찬성률을 나타내고 있다. 첫째, 고성장 속에 일자리가 쏟아지던 시대는 지나갔다. 청년들은 어차피 이른 취업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부모 세대의 연장전을 응원한다. 둘째, 기대수명의 증가는 절대 막지 못한다. 오늘의 청년들이 지금 퇴직자의 나이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지금 퇴직자들보다 꽤 젊을 것이다. 후일을 생각하면 ‘조기 취업’보다 ‘은퇴 지연’이 합리적이다. 인생은 길어졌고 조기 취업은 힘든 판에 ‘대학은 갈 놈만 가라’?

4년제 대학 졸업자가 전문대로 ‘리턴’하는 현상도 “처음부터 전문대를 가지 그랬어”라고 치부할 일이 아니다. 일반적인 시민 교육과 전문적인 직업 교육이 모두 필요한 세상이다. 원하는 사람은 둘 다 배울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고 대학교와 전문대 문을 더 활짝 열어야 한다. 엄청난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대학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 부실한 지방 사립대는 청산하기 전에 ‘공공 영역 흡수’를 꾀하고, 대학 서열을 저층화해야 한다. 청년들의 공익 활동 기회를 늘려, 그들이 ‘지원만 받는다’는 열패감이나 ‘아직 어리다’는 인식에 휩싸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요즘 ‘대학가 천원 아침밥’을 체험하는 정치인들 누구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교육-노동 패러다임도 없고, 재정 확보를 위해 국민에게 증세를 요청할 용기도 없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구호도 곱게 들리지 않는다. “빨리 취업해서 니들이 알아서 사세요!” 다음 소희의 등도 떠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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