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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드라마톡] ENA ‘보라! 데보라’
2023-04-21
글 : 유선주 (칼럼니스트)

“우리 이제 그만 보자.” 사귀자는 말도 사랑한다는 고백도 없는 남자와 4년을 만나던 여자가 끝을 알리는 말에 심장이 아리다. 사귀었다고 할 수 없으니 헤어지자는 말도 가당찮다고 생각해 겨우 고른 말일 테니까. 마주 앉은 남자는 낮에 백화점에서 산 ‘작고 반짝이는’ 증표를 꺼내지도 못한 채, 자신이 야비하고 비겁하며 곁에 있는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었다는 여자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다. 둘이 엇갈리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라디오 연애상담 코너 때문이었다. 방송 작가인 유리(김지안)는 ‘연애코치 데보라의 연애에 대한 거의 모든 것’에 자기 사연을 익명으로 보냈고, 출판 기획자인 수혁(윤현민)은 연애 ‘궁예질’을 하는 못마땅한 작가로 여겼던 데보라(본명 연보라, 유인나)의 방송을 듣고 반지를 샀다. “벌거벗은 몸은 스스럼없이 보여주면서 관계에 대해 말하는 것만은 쑥스러워하는” 남자 유형을 자비 없이 해체하는 보라의 설득력은 정체된 두 마음을 움직였으나, 결과는 파탄. 본인의 연애 역시 수월하게 풀리지 않는 것이 ENA <보라! 데보라>의 출발점이다.

연애 관련 인플루언서인 보라는 삶을 전시하고 선망이나 가십을 제공해야 하는 위치다. 연애코치의 연애가 망하면 커리어도 위태롭다고 여기고 있으니, 외가댁 치킨 2세 노주완(황찬성)과의 연애도 일과 분리되기 어렵다. 보라가 설파하는 연애의 노하우는 “기대는 충족시키고 예상은 빗나가게 해”, “앞서나가지 말자. 주도권은 나한테 있다” 등으로 다양한데, 프러포즈 예상은 거듭 빗나가고, 먼저 간 남편 제사를 지내는 자손들을 지켜보는 말년까지 시뮬레이션하다 진이 빠지는 자리에 주도권은 없다. 나를 벗어나 상대를 이해하고, 때로 무리도 하게 되는 것이 연애의 속성이고 연애 드라마가 다루는 성장도 이와 연결되어 있으나, <보라! 데보라>는 나를 잃어버리고 괴로워하게 되는 연애의 경계를 궁금하게 한다.

CHECK POINT

오랫동안 만나던 커플이 ‘이 연애는 잘못되었다!’ 별안간 각성하게 되는 때가 있다. KBS <드라마 스페셜 2021-딱밤 한 대가 이별에 미치는 영향>은 축구 승부 내기를 하던 연인끼리 진심으로 때리는 딱밤이 그 계기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고, 져줄 마음이 없는 상대의 식은 마음을 알게 되고, 제3자와 다툼이 있을 때 연인을 편들기보다 부끄럽게 느껴지는 자신의 마음도 깨닫게 되며 미뤄둔 이별을 치르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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