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폐막작 매진, 전체 예매율 83%… 개막을 앞둔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가 예열 과정을 마쳤다. 예년보다 더 적극적인 관객 참여가 예상되는 가운데 고유의 개성을 간직한 다채로운 작품들이 전주에 모였다. 영화제 개막 3일 전 설렘과 걱정이 공존하는 분위기 속에서 전진수, 문석, 문성경 프로그래머를 만났다.
- 지난해 오프라인 행사를 확대하면서 영화제 정상화에 시동을 걸었다. 올해는 영화제를 기다리는 관객의 설렘이 더 크게 느껴진다.
= 전진수 실제로 관객 반응의 변화를 몸소 체감하고 있다. 지난해 사전 예매율이 67.2%에 달하는데 올해는 벌써 83%를 넘어섰다. 개막 전부터 많은 사람의 관심이 느껴진다. 해외 게스트도 작년엔 50여 명 정도였는데 올해는 그보다 두 배가 넘는 100여 명의 손님이 전주를 찾는다. 티켓과 숙소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반응도 듣고 있다. 여러 걱정과 함께 긍정적인 분위기를 느끼는 중이다.
- 올해 전주영화제는 ‘우리는 늘 선을 넘지'라는 명랑한 슬로건과 함께한다.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전주영화제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문장이다. 이 의미를 가장 잘 보여줄 상영작을 꼽아준다면.
= 전진수 작년까지 ‘영화는 계속 된다'는 슬로건을 썼다. 막막한 팬데믹 상황 속에서 어떻게 영화를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을 담은 문장이었다. 이제 코로나19가 완전히 잦아든 엔데믹 단계에서 이 슬로건을 계속 사용하는 건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아이디어를 공모했는데 우리의 명랑한 팀원들이 명랑한 슬로건을 만들어 줬다. (웃음)
= 문석 전주영화제는 언제나 참신한 소재와 소외된 이야기, 주목받지 않은 신진 창작자를 주목해 왔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이번 슬로건의 색깔이 잘 맞았다. ‘영화보다 낯선’ 섹션에 해당하는 모든 작품이 올해 슬로건의 의미를 잘 보여줄 것 같다. 한국경쟁 섹션에서 상영되는 손구용 감독의 <밤 산책>은 아예 소리가 나오지 않는 등 실험적인 모습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마스터즈 섹션 중 라브 디아스 감독의 <필리핀 폭력 이야기>는 무려 러닝 타임이 413분이라 시간이 선을 넘었다. (웃음) 이런 독특한 지점들을 흥미롭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지역 밀착형 프로그램들도 눈에 띈다. 전주라는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골목상영이나 전주시와 함께 기획해 산책, 마중, 음악으로 주제를 확장한 ‘전주씨네투어' 프로그램이 인상적이다. 관객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기획인가.
= 문석 기존 영화제 관객뿐만 아니라 영화제에 큰 관심이 없던 일반 시민까지 우리의 잠재 관객으로 만들 수 있는 접점이 될 수 있다. 그 관심을 이끌기 위해 전주 어느 곳에나 영화를 만날 수 있는 방식을 택했다. 한 명이 보든 백 명이 보든 그곳에 여전히 영화가 상영되는 분위기를 만들어 자연스럽게 유입을 끌어내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영화제 관객의 문턱을 낮출 수 있다.
= 문성경 전주씨네투어-마중은 독립영화계에서 활약하는 배우들이 많이 소속된 ‘눈 컴퍼니’와 함께 한다. 상영작에 출연하는 배우가 관객과의 대화(GV)에 참석하면 같은 소속사의 다른 배우가 모더레이터를 맡아주는 방식이라 더 편하고 유쾌한 분위기가 이어질 것 같다. 배우들만 아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굉장히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이다.
- 올해 특별전 중 ‘KAFA 40주년 특별전'이 눈에 띈다. 어떤 의미를 담아 기획되었나.
= 문석 한국영화아카데미(이하 KAFA)는 한국 영화의 흐름을 만들어 낸 곳이다. 처음 설립된 1984년 이후 김의석, 박종원, 장현수(1기), 임상수(5기), 이재영(7기), 봉준호, 장준환(11기) 등 중대한 영화인들을 많이 배출했다. 결국 한국 영화는 KAFA 자체의 역사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고자 기획하게 되었다. 그런데 작품 수가 너무 많았다. 기본적으로 실습 작품과 졸업 작품이 있고, 이외에도 무수한 장편이 존재한다. 한편 단편 영화를 다시 살펴 보니 우리가 그동안 잘 몰랐거나 다시 보니 더 좋은 작품이 많았다. 장편 영화의 경우 극장 개봉을 했거나 OTT 플랫폼에 많이 소개된 반면 단편 영화는 전문 플랫폼이 활성화돼 있지 않아서 관객이 접근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기수별 졸업생에게 설문을 돌리고 현·전직 교수 10명의 추천도 받아 총 40편의 상영작을 선정했다.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선정할지 헤매는 시간이 있었지만 여러 논의를 거쳐서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
- 저예산 영화 제작을 독려하기 위해 마련된 지원 사업 ‘전주시네마프로젝트’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다. 이를 기념하는 특별전 ‘전주시네마프로젝트: 프로듀서로서의 영화제’가 열린다.
= 문성경 전주시네마프로젝트는 1년에 장편 영화 3편, 편당 1억씩 지원하는 제작·투자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국내외 통틀어 33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10년의 세월을 되돌아보고, 또 앞으로의 10년을 어떻게 나아갈지 고민해 보기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우아한 나체들>(2016) <노무현입니다>(2017) <겨울밤에>(2018) <이사도라의 아이들>(2019) 등 지금까지 제작된 국내외 작품을 상영하고, ‘오늘과 다른 내일, 영화의 확장을 꿈꾸다’라는 주제로 유관 컨퍼런스를 기획했다. 최근 영화 산업 자체가 침울하다 보니 영화제도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자리를 통해 우리가 모색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해 보려 한다. 영화를 보는 축제뿐만 아니라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생각하는 축제로서도 의미가 있다.
- 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프로그래머로서 포부와 바람이 있다면.
=전진수 사고 안 나고 안전하게 마칠 수 있으면 좋겠다. 또 영화제를 찾는 감독과 관객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감동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프로그래머로서 갖는 꿈이자 바람이다.
=문석 집행위원장 선임 관련 이슈가 한동안 시끄러웠다. 많은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전주영화제의 정체성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모두가 확인할 수 있는 자리와 기회가 되길 바란다.
=문성경 이번 전주영화제에도 실험적이고 개성 넘치는 작품들이 많이 모였다. 멀티플렉스 극장이나 OTT 플랫폼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들이 아니다. 낯설지만 사랑스럽고 묘하지만 매력적인 이 작품들을 관객들이 신나게 접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