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확인>은 그 제목처럼 알 수 없는 온갖 것들로 꽉 차 있다. 29년 전 지구 상공 곳곳에 다수의 UFO가 출현했단 세계관 아래 다채로운 서사와 형식이 종잡을 수 없이 가지를 뻗친다. 영화의 정체성을 대번에 파악하기 쉽지 않은데, 이것이 바로 전주영 감독의 기획 의도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자란 후 사회인이 되어서야 한국에 온 전주영 감독은 2018년쯤의 한국 사회를 ‘불가해’로 느꼈다. 집단적 갈등, 청춘들의 불안, 갑질, 부조리가 넘쳐나는 사회의 면면을 마주하면서도 문제의 원천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이 혼란스러움의 감정을 UFO라는 물질로 구현하고 탐구하게 됐다.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싱가포르국제영화제 등 해외 유수 영화제에 이어 첫 국내 상영으로 전주를 찾은 전주영 감독은 한국 관객들과의 대화를 열렬히 기다리고 있었다.
- 첫 장편영화 <미확인>의 기획 배경은?
= 2018년에 기획을 시작했다. 당시 한국의 세태를 보면 뭔가 콕 집어서 말하기 힘든 혼란이 느껴졌다. 가령 부모님, 조부모님 세대는 한국전쟁이나 국가 단위의 산업화처럼 특정할 수 있는 난관들이 있었다. 열심히 삶을 이어 나가면 극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종류의 어려움들이었던 것 같다. <국제시장>처럼 말이다. 그런데 요즘의 우리 세대에게 무엇이 문제고 무엇이 불안하냐 물어보면 명확하게 답하기가 곤란하다. 세대 갈등? 지구온난화? 부동산? 문제는 많은데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 영 모호하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도시 위에 미확인의 비행 물체가 있다는 설정으로 구체화했다. 처음엔 같은 세계관 속의 여러 일을 유튜브 시리즈로 연재하려고 했다. 하지만 하나의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여야 영화의 감정이 더 살아날 듯했고 결국 장편영화로 발전시켰다.
- 애초 시리즈물로 기획했다는 전사가 있듯 <미확인> 속엔 페이크 다큐멘터리, 극영화, 뮤지컬,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형식이 공존한다.
= 여러 형식 속의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장르에서 각자의 규칙을 따른다. 그래서 한 영화 속의 인물들임에도 서로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작금의 현실도 비슷해 보인다. 우리는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서 과거보다 더 연결돼 있다고 느끼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감정적으로는 더 멀어지고, 쉽게 갈등하고,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며 각자의 세계에 갇힌 느낌이다. 그래서 인물들이 각기 다른 세계, 장르의 벽을 깨고 만나는 순간을 영화 후반부에서라도 구현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었다.
- 전작인 단편 <시간 에이전트>도 그렇고 SF 장르를 표방하지만 사실은 그 속의 드라마를 더 중요히 여기는 것 같다.
= 그렇다. 워낙 SF 장르영화나 책, 과학 지식에 관심이 많기에 SF의 외피를 택하고는 있다. 그러나 장르적 재미를 목표하기보단 내 이야기를 맘껏 펼치고 싶은 욕망이 최우선이다. 어떻게 보면 대중성을 얻기 위한 편법이지 않을까. 실상은 이게 뭔가 싶은 이상한 이야기인데, SF라는 껍데기로 관객을 유혹하는 거니까. (웃음)
- 그래도 뚜렷한 SF적 설정이 있다. 인간 모습의 외계인이 사회에 녹아들어 있다는 ‘외계인 정신 몰수설’이다. 일종의 바디 스내처 서사인데 흥미로운 점은 본인이 외계인인지 사람인지를 정확히 알 방도가 없다는 부분이다.
= 인간과 외계인의 경계를 최대한 모호하게 표현하려 했다. 이런 모호함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세상의 모습이다. 실제 우리 삶에선 대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확실치 않다. 예를 들어 본인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 DNA, X-ray 검사를 받는 인물이 나온다. 과학적 검증에 따라 인간이라는 결과가 나왔는데도 본인의 정체성을 의심한다.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 역시 과학적으로, 이성적으로 증빙할 수 없지만 유지되는 것들이 많다. 가령 종교, 사상, 사회적 정체성처럼 말이다. 논리적인 정답을 떠나서 본인이 무엇을 믿고 판단할지는 순전히 본인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관객들도 각자의 생각대로 영화의 설정과 상황을 판단해 주면 좋겠다.
- 영화에서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기도 한다. UFO와 외계인을 신봉하는 신도들이 등장하는데 어떤 의도인가?
= 아버지가 목사이시다. 덕분에 어릴 적부터 종교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해온 편이다. 종교의 역할 중 하나는 현실의 불가해한 현상들에 답을 주는 일이다. 그러니 UFO가 지구에 나타난다면 분명 이에 대한 답을 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답을 주려는 신흥 종교가 생기겠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신도들이 UFO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초자연적인 현상처럼 느끼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사실 이 물줄기는 지면의 수증기가 UFO에 맺혀서 내리는 일종의 비일 뿐이다. 단순한 물리적 현상에도 종교가 주관적인 상상을 통해 답을 내려는 상황을 그리고 싶었다.
- 비가 내리는 장면에서 UFO를 확대해서 보여준다. 철 같은 표면에 고랑이 나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러한 모양을 택한 이유는?
= 철광석의 질감을 구현하려 했다. UFO의 정체성을 최대한 중립적으로 만들고 싶어서다. <디스트릭트9>이나 <인디펜던스 데이>의 UFO를 보면 굉장히 기계적인 모습이다. 또 어떤 영화의 UFO는 생물처럼 꿈틀거리기도 한다. 이런 특징이 있으면 관객들이 UFO의 맥락을 구체적으로 유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자연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철의 표면을 레퍼런스로 삼았다. UFO가 무난한 구체 모양인 것도 같은 이유다. 정사각형, 정삼각형이면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만 같으니까. (웃음)
- ‘중립적’이라고 하니 외계인을 자청하는 남자 둘의 대화가 떠오른다. 외계인과 인간의 공존이 가능할지 아닐지 토론하는 대목이다. 여기서도 영화는 두 세계의 공존 가능성을 중립적으로 다루려는 것 같다.
= 우리 주변 사람들도 각자 다른 생각, 사상, 믿음을 지니고 살지 않나. 설사 외계인끼리일지라도 의견이 다르고 대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이런 같음과 다름의 문제가 명백히 판가름 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덧붙이고도 싶었다. 외계인의 눈에는 박테리아든 코끼리든 사람이든 비슷한 지구의 생명체일 거다. 이런 타자의 시선에서 인간의 존재성을 달리 바라보고 싶었다. 글쎄, 말하다 보니 너무 혼란스러운 답변인 것 같아서 미안하다. (웃음) 아무튼 앞에서도 말했듯이 <미확인>의 결론은 오로지 관객의 몫이다. 그래서 더욱더 관객과의 대화가 기대된다. 해외 관객과 다른 한국 관객만의 새로운 해석이 많을 것 같다. 얼른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