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영화는 ‘보는’ 매체다. 영화를 감상한다는 것은 스크린에 투영되는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인지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삼사라>엔 ‘보아서는’ 안 되는 15분의 시간이 있다. 영화의 중반, 눈을 감으라는 영화의 권유를 따르고 나면 완전한 어둠 속에서 섬광들의 점멸과 자연의 소리만을 느끼게 된다. 이를 통해 <삼사라>가 체험하게 만드는 것은 티베트 불교에서 말하는 ‘바르도’, 이른바 생과 사의 중간에 있는 세계다. 2013년 이후 꾸준히 전주를 찾고 있는 로이스 파티뇨 감독은 언제나 새로운 영화 언어, 새로운 감각의 지평을 꿈꾼다. 자연 풍광의 이미지에서 시간의 흐름을 포착하던 그의 시선은 이제 인간의 표정과 생기에도 집중하기 시작했다. 올해 전주시네마프로젝트의 선정작이기도 한 <삼사라>는 올해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인카운터스 부문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 공식 일정으로만 한국에 5번 넘게 방문했다. 특히 전주국제영화제에는 꾸준히 작품을 냈고 7년 전엔 ‘버티칼: 시간과 경관’ 전시회까지 열었다. 이번 방문에 대한 소회는.
= 올해는 전주시네마프로젝트로 방문하게 돼서 더 뜻깊다. 덕분에 <삼사라>가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수상도 했고, 곧이어 전주까지 찾게 되니 기쁘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는 전 세계 독립영화계에 큰 도움이 된다. 적지 않은 자금 지원과 함께 창작자가 새로운 영화의 형식, 언어를 개발하는 데 있어서 전적인 자유를 보장해 준다.
- 라오스의 루앙 프라방 지역, 탄자니아의 잔지바르섬을 배경으로 삼은 이유는.
= 먼저 <삼사라>는 눈감고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단 착상에서 출발했다. 이런 생각에 빠져있던 중에 우연히 티베트 불교의 ‘바르도’라는 개념을 알게 됐다.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중간 지대를 뜻한다고 하더라. 그 사이에서 어떻게 길을 잃지 않고 사후세계까지 갈 수 있을지 나름대로 공부해 봤다. 그러다 보니 바르도의 과정이 눈을 감고 영화를 본다는 일전의 아이디어와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회의 과정을 영화로써 직접 체험하는 그런 형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불교권 국가인 라오스를 로케이션으로 선정했다. 먼저 내가 사는 스페인과 무척 멀고 문화적으로도 다른 곳이란 점이 흥미로웠다. 또 다수의 어린 수도승이 함께 사는 사원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 후엔 라오스와 크게 대비되는 제2의 장소가 필요했다. 그래서 예전에 비주얼아트 워크숍을 위해 방문했던 잔지바르섬을 택했다.
- 두 장소의 대비가 필요했던 이유는.= 생과 사를 넘어 생명체가 초연결되는 과정이 영화의 내용 아닌, 그 연결 지점의 극단을 대비해 주는 문화적이고 가시적인 차이가 있어야 했다. 우선 물리적인 거리도 멀거니와 지형적으로 라오스는 내륙지방, 잔지바르는 섬이다. 또 종교적 측면에서 라오스는 불교권, 잔지바르는 이슬람권이다. 또 이 두 장소가 적절했던 이유는 한 문화권 내에도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단 점이다. 라오스엔 불교뿐 아니라 애니미즘이 토착화되어 있으며 하몽족이라는 소수 민족이 함께 살기도 한다. 잔지바르엔 무슬림과 더불어 마사이족이 공생 중이다. 이처럼 경계가 있는 듯 없는 듯한 뉘앙스의 장소들이 필요했다.
- 최초의 착상이었다는 ‘눈을 감고 볼 수 있는 영화’에 관해 묻고 싶다. 아무래도 캄캄한 극장에서 볼 때 더 효과적인 것 같은데 관객이 다시 극장에 모이는 지금의 시점을 노린 건가.
= 타이밍은 순전히 우연이다. (웃음) 다만 최대한 다양한 방식의 감상을 원했기에 좋은 부분이긴 하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눈 감고 떠나는 15분간의 여정이다. 이 명상의 시간 동안 영화가 사람들을 또 다른 세계로 안내해 주길 바랐다. 거의 모든 감독이 원하는 바이기도 하겠지만 새로운 영화 언어, 그로부터 발견하는 새로운 현실의 모습이란 언제나 나의 목표다. 늘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다.
- 전작들과 다른 점이 느껴진다. 자연의 풍경보단 사람들의 대화, 감정, 활력이 더 중요해졌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작품들은 대개 인간을 자연 속의 피사체로 사용했다. 가령 <붉은 달의 조류>에선 인물들의 움직임을 완전히 차단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의 이유는.
= 정확한 감상이다. 원래 비디오아트, 현대 미술계에 있을 땐 자연과 예술 작품의 관계에 집중했다. 그래서 영화로 분야를 조금씩 옮겨 오면서도 자연과의 관계를 통한 예술의 새로운 사고방식, 사용법을 탐구했다. 이른바 풍경 영화다. 그러나 이번엔 사람, 사람들이 속한 지역 사회의 문화와 더 깊게 교류하고 그들의 감정을 전하고자 했다. 라오스의 어린 수도승들, 잔지바르 해초 양식장의 여성들과 몇 달간 직접 먹고 자며 겪은 그들의 생활 양식, 이에 대한 나의 감상을 담아내고 싶었다. 또 이들의 문화가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중요한 이야깃거리였다. 다만 그렇다고 하여 다분히 인간 중심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진 않았다. 예를 들면 1부의 노파가 2부의 염소로 환생하는 설정이 있다. 이때 카메라는 종종 염소의 시점 숏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인간의 시선을 넘어서 동물, 자연의 존재감을 강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를 연결하는 영화의 가능성을 보장하고 싶었다.
- 그렇다면 영화엔 비전문 배우만 등장하는 건지.= 1부에서 죽어가는 노파만 전문 연기자다. 그곳 주민들의 신념 때문이다. 그들은 아픈 인물을 연기하면 실제로 불행이 닥칠 수 있다고 믿었다. 한 주민이 출연 의지를 내비치긴 했으나 가족과 마을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심지어 촬영이 끝나고 나서는 노파 배우가 죽는 연기를 한 로케이션에서 주민들이 제사를 치르기도 했다. 이처럼 문화적 차이에 의한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전문 배우를 기용했고, 제작진도 네 명을 제외하곤 모두 현지에서 꾸렸다.
- 영화의 구체적인 장면 하나를 언급하고 싶다. 라오스 밀림에서 수도승들이 갑자기 랩 음악을 듣는 장면인데 어떤 의도였나.
= 같은 장소에 있더라도 모두가 다른 삶을 살며 다른 욕망이 있다는 대비의 뉘앙스를 주고 싶었다. 앞서 말한 장소성의 대비와도 유사한 맥락이다. 문화적 틀이라는 외부적 경계뿐 아니라 그 내부에서도 일어나는 차이까지 드러내고 싶었다. 실제 어린 수도승들이 대학에 갈지, 계속 종교에 몸을 담을지 고민하는 동시에 수도승이 아닌 주인공 소년은 랩 음악에 빠져 뮤지션을 꿈꾼다. 이처럼 한 장소의 사람들이 각기 고민하는 다양한 삶의 갈래가 흥미로웠다.
- 앞서 전작들과의 차이를 묻던 맥락에서. <삼사라>는 이전 작품들보다 더 극적인 요소가 많다고 볼 수도 있다. 이후엔 더 서사 중심적인 내러티브 영화를 만들기도 할 생각인가.
= 두 길을 모두 걷고 싶다. 한쪽은 이전처럼 형식적이고 이미지 중심인 컨셉츄얼 필름, 한쪽은 이야기가 명확하고 감정이 녹아 있는 휴머니즘 필름이다. 얼마 전 포르투갈에서 촬영한 작품 하나는 전작 <시코락스>의 연장이며 이야기 중심의 내러티브 영화다. 지금껏 내 영화 중에서 배우의 연기, 유머를 가장 중시하는 작품이다. 일정 문제로 인해 <시코락스>의 공동 연출자였던 마티아스 피녜이로 감독은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 반면 지난 11월에서 일본의 한 묘지에서 촬영한 영화는 장소의 이미지에 집중했다. 지금 한창 편집 작업 중에 있다. 결론을 내자면 영화 만들기에 있어서 스스로 어떤 제한을 두고 싶진 않다. 새로운 도전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