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클로즈’와 벨기에영화의 신성 루카스 돈트
2023-05-05
글 : 이보라 (영화평론가)

제75회 칸영화제에서 클레르 드니의 <스타즈 앳 눈>과 공동으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루카스 돈트의 <클로즈>가 개봉한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도 오르면서, 샹탈 아커만과 다르덴 형제 등으로 대표되던 벨기에영화계에 새로운 기대를 안기기도 했다. 루카스 돈트는 이미 5년 전, 데뷔작 <걸>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과 퀴어종려상을 거머쥐며 열렬히 환대받은 젊은 연출자다. 전작에서 발레리나를 꿈꾸는 트랜스젠더 소녀의 이야기를 다뤘던 그가 이번에 동행한 이들은 13살 소년들. 영화는 매일 붙어다니고, 머리를 맞대고, 같은 침대에 눕는 게 자연스럽던 두 친구의 사춘기로 접속한다.

어두운 아지트에서 두 소년이 바깥을 살핀다. “소리 내지 마.” 무엇 때문에 이들은 속닥거리는 걸까? 대화를 듣고 있자니 80명쯤 되는 군대가 돌진해오고 있는 것 같다. 지붕을 에워싸는 병사들을 피하기 위해 두 소년이 택한 방법은 셋을 센 뒤 힘껏 달리기. 물론 이 상황은 가짜다. 레오(에덴 담브린)와 레미(구스타브 드 와엘)는 레오의 부모가 운영하는 화원의 만개한 꽃들 틈으로 장난스럽게 달음박질친다. <클로즈> 도입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은 영화가 가벼운 거짓말로 시작한다는 것과 그 거짓말을 거뜬히 믿고 응수하는 관계가 여기 있다는 것이다. 군대의 갑옷 소리는 오로지 둘에게만 들린다.

둘의 사이가 멀어지는 과정

소년들의 상상은 계속된다. 밤에 쉽게 잠들지 못하는 레미를 위해 옆에 누운 레오는 상냥한 비유를 들어 친구를 달랜다. “넌 아기 오리야”로 운을 떼는 그의 동화는 마치 어린 날 선잠에 듣던 자장가 같다. 그러고 보니 영화에서 이토록 ‘순수’하게 가까운 사이를 본 것은 꽤 오랜만이다. <클로즈>는 분노나 슬픔 없이 서로에게 무결한 관계를 그리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신화가 금방 깨지는 것은 이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하면서다. 중학교에서의 첫 학기가 시작되자 동급생들은 늘 함께하는 둘을 연인으로 의심한다.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레오와 달리 내향적인 레미는 의견을 좀체 드러내지 않는다. ‘내 몸이 곧 네 몸’ 같던 시간은 점차 균열을 맞는다.

영화는 항상 붙어 있던 두 소년이 서로에게 거리를 두는 과정을 담는 데 집중한다. 오프닝에 등장했던 아지트에서 레미가 “너는 안 들려? 발소리 들리잖아”라며 둘만의 놀이를 다시금 반복할 때, 레오는 무심하게도 “집에 돌아갈까?”라고 대답한다. 이 단순한 거절은 둘의 세계가 와해되는 징조다. 레오와 레미 사이에는 이전에 없던 거리감이 묵직하게 자리한다. 영화는 중반부에 주요 인물이 퇴장하면서 느슨하게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클로즈>는 전작인 <걸>을 환기하면서도 조금 다르게 방향을 튼다.

<걸>이 성전환 수술을 앞둔 MTF 트랜스젠더를 주인공으로 삼아 퀴어 정체성을 전면적으로 부각한다면, <클로즈>는 본격적인 정체화를 겪지 않은 13살 소년들을 통해 이들의 우정 혹은 사랑이 어떤 자리에 위태롭게 놓이는지 관찰한다. 쉽게 압축하자면 <걸>은 주체가 자신을 이루는 구성물을 이미 자각한 뒤 후행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클로즈>는 자연으로 여겨지던 환경이 급진적으로 붕괴(당)하며 맞이하는 일차적 혼란에 무게를 싣는 편이다. 시작의 위치부터 다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클로즈>는 <걸>보다 더 수동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많은 작품에서 퀴어함을 터부시하거나 억압하는 부모/어른의 이미지는 익숙한데, 돈트의 작품 속 부모들은 이상적일 정도로 바람직한 편이다. <걸>에서 라라(빅토르 폴스테르)의 아버지는 그녀의 선택에 협조적이고, <클로즈>의 양쪽 부모 또한 온정적인 어른들이다. 다만 레오와 레미의 문제가 부모들에게 보였는지 아닌지는 묘하게 가려져 있다. 이는 가정과 학교라는 양분된 체계가 서로 다른 자연으로 이뤄져 있음을 강조하는 설정이다. 두 소년에게 ‘각성’의 빌미를 제공하는 첫 장면은 바로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이뤄진다. 여자아이들이 레오와 레미를 향해 “너희 사귀니?”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인물들 옆에 강박적이리만치 붙어 있는 카메라가 유난스럽게도 멀어지는 순간이 한번 있는데, 이는 새 학기 아침 두 소년이 교정에 막 입장할 때다. 전작부터 유사하게 이어지며 확인되는 돈트의 뚜렷한 스타일은 (<걸>에서 디스포리아의 곤란함을 체현하기 위해 라라의 신체 곳곳을 포착하는 근접숏을 열거했듯) 거의 모든 숏이 클로즈업으로 이뤄져 매번 인물들이 가슴팍 위에서부터 담긴다는 것인데, 이 첫 학교 장면에서 카메라는 예외적으로 롱숏을 시도한다. 두 사람에게서부터 점차 뒤로 멀어지는 카메라는 공놀이를 하거나 책가방을 멘 채 수다를 떠는 학생들의 부산스러운 광경을 넓게 담는다. 달리 말해 <클로즈>가 마스터숏을 할애하는 유일한 장소가 학교로, 이곳에서만 이례적인 (비)규칙이 허용된다. 학교라는 커뮤니티가 부과하는 이질적인 시스템이 곧 시작될 테니 말이다.

친밀함의 선

<클로즈>는 많은 퀴어영화에서 성장기 인물을 다룰 때 전제하는 성정체성에 관한 내적 갈등을 요체로 삼진 않는다. 대신 (이 이상할 정도로 평화로운 두 가정의) 친밀함이 지니는 모호한 틈을 주목한다. 두 소년은 지나치게 가까워서 ‘문제’가 된 것인데, 이 친밀함을 수용하는 가장 강력한 두 갈래의 반응은 실은 보편적인 율법 아래 상충하는 관점이다. 하나가 인물들의 퀴어함을 긍정하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인물들의 근친성을 옹호하는 것이다. 여자아이들의 질문에 레오는 “너무 어릴 적부터 친구라 형제 같아서 그래”라고 말한다. 어떻게 형제는 퀴어를 부정하는 타당한 근거가 되는 것일까? <클로즈>는 여자아이들이 으레 하듯 손을 잡고 어깨에 기대더라도 더 이상하게 받아들여지는 남자아이들 사이의 친밀함을 어떻게 규정할지를 과제로 삼는다.

이 지점에서 2부로 넘어가며 레오의 형인 샤를리의 비중이 꽤 높아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2부의 주된 시점이 레미의 엄마 소피(에밀리 드켄)에게 당도한다는 사실을 차치하면, 다수의 프레임에서 샤를리가 레오와 동행한다. 레오와 레미가 학교 광장에서 크게 몸싸움을 벌일 때 형 샤를리는 대체 어디서부터 달려왔는지 모를 사이에 도착해 레오를 보호한다. 둘은 함께 스쿠터를 타고 등교하고, 같이 부모의 화원에서 장난을 치거나 트럭에 앉아 몸을 맞댄다. 이전에 매일 레미와 자던 레오는 이제 형 옆에 눕는다. <클로즈>의 2부는 혈연관계의 친밀함을 증대시키며 이 위화감 없이 허용되는 접촉이 레오와 레미 사이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질문하게 만든다. <클로즈>에 새겨진 가족의 그늘은 이토록 끈끈하고 확고하여 모종의 은밀함이 깃들어 있다.

<클로즈>는 중의적 뜻을 지닌 제목을 표상하듯 ‘닫다’와 ‘가깝다’라는 양극의 운동을 난사하고 있지만, 사실 (창)문 등을 통해 인물들의 이격을 주요한 정동으로 제시한 사례나 접촉의 문제를 민감하게 형상화한 사례는 많았다. 차라리 퀴어함의 조건에 형제의 테두리를 겹쳐 쓰는 지점을 거슬러 독해하는 시도는 어떨까? 이는 형제 관계에 은닉된 섹슈얼리티를 바라보려는 시도라기보다는, 1부의 상실 이후에도 혈연의 안정성과 정형성이 관객에게 무리 없이 유지되는지 시험할 여지가 생겨난다는 뜻이다. 가족의 자연스러운 친밀함과 친구의 자연스러운 친밀함은 어떻게 다른가? 그리하여 우리는 퀴어를 어디부터 어디까지 정할 수 있는가? A와 B는 서로 겹칠 수 없는가? A의 우세가 B의 성질을 완벽히 방어할 수 있는가?

여러 물음에도 <클로즈>는 안전한 결말로 수렴한다. 특히 2부에서 레오가 응시하는 대상인 소피의 직업이 조산사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이 엄마의 형상은 무염시태한 성모처럼 자애롭게 묘사된다. 소피로 분한 에밀리 드켄의 이미지는 그녀가 배우로 살아온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이 유사 모자 관계의 서사를 따라 로제타의 얼굴을, 그리하여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환기하는 구석이 있다. 때문에 <클로즈>의 2부는 일견 <아들>이나 <자전거 탄 소년>의 변주처럼 보이기도 한다. 신예라는 위치를 감안하더라도, 돈트는 그 비교군(혹은 참조점)이 많은 연출자다.

<가디언>을 비롯해 유수의 지면들이 <클로즈>와의 연관성을 주장하며 언급한 영화들만 해도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보이후드>, 배리 젠킨스의 <문라이트>가 있다(물론 소년의 성장기라는 협소한 공통점에 치중한 자의적 목록에 가깝다). 마치 오르페우스 신화를 소년의 관점에서 변용한 듯한 지점은 셀린 시아마를 함께 거론해도 이상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렇게 <클로즈>는 영화 속 퀴어(혹은 퀴어 아닌 것)의 콘텍스트를 다시금 모색하는 한편, 선배들에게서 받은 영향을 따라 안전한 서사로 귀착하는 일을 동시에 벌인다. 대단한 열망과 엉뚱한 재능을 품은 이 연출자가 만들 세 번째 영화는 어떤 모양이 될지, 아직 단언하기가 어렵다.

레오와 레미

<클로즈>에서 아무래도 제일 놀라운 것은 레오와 레미를 연기한 두 배우다. 잘 어울린다는 말 이상으로 조화로울 뿐 아니라 각자 맡은 인물에 확 흡수된 듯한 두 친구는 어떻게 <클로즈>에 합류했을까. 루카스 돈트는 레오와 레미의 나이대에 적합한 캐스팅을 위해 초등학교의 마지막 학년 또는 중학교의 첫 학년을 보내고 있는 소년들을 위주로 찾아다녔다. 총 580명에 달하는 아이들을 만났는데, 레오를 연기한 에덴 담브린(위)에 관한 일화는 독특하다. 기차에 타고 있던 루카스 돈트가 우연히 옆에서 친구들과 대화 중인 담브린을 보게 된 것. 때마침 막스 리히터의 음악을 들으며 감격에 젖어 있던 그는 담브린의 눈에 “숨겨진 세계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오디션을 제안했다. 캐스팅 단계에서는 각 20명으로 이뤄진 소년들의 그룹을 초대했고, 공교롭게도 담브린과 구스타브 드 와엘(맨 위)이 같은 그룹에 속해 있었다. 둘의 조화가 마음에 들었던 돈트는 이들을 레오와 레미로 낙점했다.

루카스 돈트라는 새 가능성

벨기에 출신의 1991년생 루카스 돈트는 여러 단편영화를 작업하다 2018년, 발레리나 노라 몽세쿠흐의 실화에서 영감을 받아 연출한 첫 장편 <걸>을 통해 화려한 데뷔를 치렀다. 칸에서의 스포트라이트는 그로 하여금 단번에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했다. 2019년에는 <포브스>가 선정한 ‘유럽의 영향력 있는 30살 이하 30인’(30 Under 30 Europe) 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영화 경력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는 예술학교에서 패션을 가르쳤던 어머니. 돈트는 12살 때 어머니에게 선물받은 카메라로 일상의 이모저모를 찍기 시작했고, 2014년부터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의상 보조 역할을 맡아 영화와 시리즈 촬영 현장을 넘나들었다. 안락한 가정환경에서 차곡차곡 꿈을 키워왔지만, 사실 10대 시절의 그는 아무 데도 속하지 못해 괴로웠다고 회고한다. 특히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자주 놀림감이 되었다. 그 불안했던 시간은 자연스럽게 <클로즈>의 이야기와 맞닿게 되었다. 그사이 30대가 된 돈트는 어느덧 벨기에영화계의 새로운 얼굴이 되었다. 그는 현재 <도주왕> <호수의 이방인> 등 알랭 기로디와 오랫동안 작업해온 각본가 로랑 뤼네타와 협업하여 세 번째 장편영화를 준비 중이다.

사진제공 찬란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