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이주현 편집장] 전주를 기억하게 하는 사람들
2023-05-05
글 : 이주현

10년 전, 수행이 필요했던 저연차 기자 시절. 백흥암에서 수행 중인 비구니들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를 감명 깊게 보고 이창재 감독을 인터뷰했다. 이후로도 감독의 차기작에 늘 관심은 기울이고 있었지만 대면할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그러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에서 10년 만에 그를 다시 만났다. 다큐멘터리 <문재인입니다>를 들고 전주를 찾은 그는 미소를 머금은 편안한 얼굴로 고생담을 술술 들려주기 시작했다. 최소 1박2일은 들어야 전말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 이번주 특집 ‘전주에서 만난 사람들’ 인터뷰 기사에서도 그 고생담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는데, 여기선 기사에서도 빠진 뒷이야기 일부를 전하려 한다. 기사에선 이창재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동안 이가 하나 빠졌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2.5개의 이가 빠졌을 만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섭외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대통령을 직접 만나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전공과 무관한 국가 기념식 연출을 두번이나 맡았다. ‘제안서 한번만 확인해주십시오.’ 이 한마디를 하고 싶었는데 웬걸, 악수만 하고 끝났다. 그러다 2022년 7월, 최종적으로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니까 이 답변 속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연 단위의 사연이 뭉텅이로 생략되어 있다.

첫 번째 국가 기념식 연출을 맡았을 때 문 전 대통령과 악수만 하고 ‘제안서’의 ‘제’자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감독은 두 번째로 국가 기념식 연출을 맡으며 절호의 기회를 노리지만 두 번째 기념식엔 대통령이 아닌 국무총리가 참석하는 바람에 준비한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식이었다고. 최종적으로 장문의 손편지를 전달해 촬영 허락이 떨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감독은 최대한 압축해 들려주려 노력했는데(이 이야기를 또다시 압축해 기사로 정리한 이자연 기자도 만만치 않은 압축의 기술을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나는 다음 약속이 있어 이 흥미진진한 인터뷰를 끝까지 듣지 못하고 어렵게 엉덩이를 떼야 했다. 그러자 새삼 영화를 보고 궁금한 것들을 창작자에게 직접 질문할 수 있는 자리가 귀하게 여겨졌다. <토리와 로키타>로 처음 한국을 방문한 다르덴 형제 감독과의 인터뷰는 물론,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씨네21>이 만난 영화인들과의 풍성한 대화가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부디 생생히 전달되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 올해 전주에선 예정에 없던 반가운 만남으로 빼곡한 시간을 보냈다. 5년 전 <씨네21> 객원기자로 활동하다 지금은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아카데미 담당 직원이 된 친구를 만났고, 역시나 10년 전 인터뷰한 또 다른 감독을 만나 “10년 만이네요”라는 인사를 나눴다. 어쩐지 10년 동안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길 위에서 이어진 우연한 만남들로 2023년의 전주는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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