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칠중주: 홍콩 이야기’,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그리움
2023-05-10
글 : 김수영

홍금보, 허안화, 담가명, 원화평, 두기봉, 임영동, 서극. 홍콩영화의 일곱 거장이 모였다. 홍콩의 찬란한 시기를 경험했던 감독들은 1950년대부터 10년 단위로 시간을 나누어 그 시절 홍콩에 대한 10분 내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스타일과 이야기는 제각각이지만 35mm로 촬영된 영화들은 하나같이 따뜻하고 애잔한 감성을 더한다. 홍금보 감독은 참새 공중제비, 호랑이 점프, 좌우 날아치기를 수련하던 자전적 이야기(<수련>)로, 허안화 감독은 사려 깊은 선생님들의 추억담(<교장선생님>)으로 홍콩의 과거를 회상한다. <수련>의 마지막 장면에 출연한 홍금보는 “과거는 그저 추억”이라고 말하지만 영화 속에 담긴 과거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홍콩의 역사를 끊임없이 소환한다.

담가명의 <밤은 부드러워라>는 미래를 위해 영국으로 유학 가는 여자와 홍콩을 떠날 수 없는 남자의 이별 풍경을 담았다. 서로에게 다시 없을 첫사랑임을 직감하면서도 헤어질 수밖에 없는 연인의 하룻밤에는 1997년 영국이 홍콩을 중국으로 반환할 당시, 홍콩을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의 사무친 마음이 담겼다. 원화평 감독의 <귀향>에서도 자식들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다. 예나 지금이나 쿵후에 빠져 있는 할아버지(원화)는 만두보다 햄버거를 더 좋아하게 된 손녀와 세대 차를 느낀다. 2019년 송환법 반대시위와 2020년 홍콩보안법 통과 이후 홍콩을 떠나는 이민자들이 늘었고, 올해까지 3년째 홍콩의 인구수가 점차 줄고 있다는 뉴스를 떠올리면 <밤은 부드러워라>와 <귀향>에 담긴 정서에는 시차가 없다. 영국에서 중국으로 주권이 반환된 이후 홍콩의 풍경은 임영동 감독의 유작 <길을 잃다>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예전 지명으로는 목적지에 닿을 수 없는 남자(임달화)의 얼굴에는 추억의 시간과 공간을 통째로 상실한 허망감이 가득하다. 임영동은 남자를 통해 우리가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도 현재에 남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칠중주: 홍콩 이야기>의 총제작자이기도 한 두기봉 감독은 유행에 편승해 한몫 벌어보려는 세 청년의 모습으로 2000년대 초반의 홍콩을 그렸다. <노다지> 속에는 당시 홍콩에 불어닥친 ‘닷컴’ 거품과 사스 전염병 등 홍콩 사회가 풍자적으로 담겼다. 한국 사회를 휩쓴 ‘영끌’ 열풍과 코로나19 팬데믹이 자연스럽게 겹쳐 보인다. 유일하게 과거가 아닌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서극의 <심오한 대화>는 허안화, 장만옥, 두기봉, 오우삼 등 홍콩 영화인들의 이름을 재치 있게 소환하며 홍콩의 거장들이 합심한 <칠중주: 홍콩 이야기> 프로젝트의 의의를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으로 오늘날 홍콩의 안부를 묻는 <칠중주: 홍콩 이야기>는 2020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공개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스러져가는 것들을 챙길 새 없이 나아가고 있는 오늘날 한국 관객에게도 충분히 울림을 준다.

기억해. 행복하게 사는 건 어렵지 않아.

임영동 감독의 유작 <길을 잃다>에서 아버지가 자신에게 가르쳐준 것을 되새기는 아들에게 엄마가 하는 말.

CHECK POINT

<10년>(감독 곽진, 황비붕, 구문걸, 주관위, 오가량, 2015)

거장들이 그리움으로 과거를 추억했다면 홍콩의 젊은 영화인 5명은 디스토피아가 된 홍콩의 미래를 상상했다. 홍콩 사회의 불안과 절망을 고스란히 담아낸 저예산 옴니버스영화 <10년>은 당시 흥행과 더불어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16년 금상장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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