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이스는 트위터의 실시간 음성 대화 기능입니다. ‘배동미·남선우의 TGV’는 개봉을 앞둔 신작 영화의 창작자들과 함께 작품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스페이스는 실시간 방송이 끝난 뒤에도 다시 듣기가 가능합니다.
주인공이자 관객, 문재인 전 대통령
개봉 사흘째인 5월12일 낮,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극장을 찾아 다큐멘터리영화 <문재인입니다>를 관람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그로부터 며칠 뒤 씨네21 스페이스를 찾은 이창재 감독은 트위터리안들에게 주인공이자 관객인 문 대통령의 감상에 대해 귀띔했다. “공개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저한테 직접 전화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분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들었는데요. 균형을 잘 맞췄다며 작품을 좋게 보셨고, 김 여사님은 작품이 아주 좋았다고 따로 이야기를 주셨다고 하더라고요.” 이창재 감독은 어떤 관객보다도 당사자인 문 전 대통령의 반응이 가장 궁금했다는데, 그 응답은 주인공의 타고난 성정인지 잔잔하게 감독에게 전해졌다.
단면을 깊게 바라보기
<문재인입니다> 제작진이 평산마을에서 보낸 촬영 기간은 2022년 7월부터 그해 12월까지, 약 6개월이었다. 촬영에 최소 1년을 쓰면서 작업해온 이창재 감독으로서는 다소 짧은 촬영 기간이었는데, 퇴임 후 막 해방감을 느끼고 있는 주인공에게 “촬영이라고 해서 개인의 최소한의 욕망까지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여기는 연출자의 윤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평산마을 주민이 된 문 전 대통령의 생활이 간결하고 담백했던 이유도 있다. 촬영을 더 이어간다고 해서 또 다른 국면이 펼쳐지리라 기대하기 어려울 만큼 주인공의 생활은 한결같았다. “아침 일찍 산책하고 그다음 농사를 짓고 시간이 되면 집으로 들어가 책을 보셨는데, 이 생활이 한번도 변화 없이 똑같더라고요.” 얼마나 소박했던지 촬영이 이뤄진 2022년 여름 내내 문 전 대통령은 셔츠 세벌로 한 계절을 보냈다고 한다.
가을날 햇살같이
보통의 다큐멘터리 속 인터뷰 신은 배경을 어둡게 하고, 피사체에 조명을 비춰 인물이 도드라지게 표현한다. 그러나 <문재인입니다>의 화법은 반대다. 문 전 대통령의 등 뒤로 가을날의 햇살처럼 따스한 빛이 쏟아지고 피사체는 그보다 어둡게 조명을 쳤는데, 문 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느낀 “환대하고 보듬어 안는 느낌”을 다큐에 옮겨오고 싶어 이창재 감독이 고안한 방법이다. 촬영 전 이창재 감독이 문 전 대통령에게 거의 1시간 동안 다큐의 의도에 대해 늘어놓은 적 있는데, 당시 문 전 대통령은 제지하지 않고 그저 웃고만 있었다고 한다. 그 모습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은 이창재 감독은 이같은 조명술이 주인공의 인생을 요약하는 은유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주어가 되기보다도 늘 따뜻한 배경으로 있고 싶어 했던 문 대통령의 인생이 표현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50여명의 인터뷰이, 1500쪽의 프리뷰 노트
문 전 대통령을 빼고도 <문재인입니다>에 출연한 인터뷰이는 50여명에 달한다. 문재인 정부의 참모, 대선 후보 시절 함께한 인사, 변호사 시절 함께 일한 동료 등 여러 층위로 나뉜 인터뷰이들이 카메라 앞에 섰고, 이들의 말을 옮긴 프리뷰 노트만 해도 1500페이지에 달했다. 이창재 감독은 한 가지 원칙을 세우고 작업을 이어갔다. ‘직접 관찰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크로스 체크한다.’ 그는 이렇게 예를 들었다. “대변인 한분의 이야기로서는 한계가 있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대변인 3명을 인터뷰하고 체크하는 게 최소한의 중립성이라고 생각했고요. 주인공과의 거리와 크로스 체크가 주안점이었습니다.” 여러 인사들을 만나 인터뷰했지만 다 담을 수는 없었다. “이 자리에서 밝히지만 총리 두분을 인터뷰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안 나오는 게 총리와 대통령 사이에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터뷰했으나 들어가지 못한 것이지 어떤 편에 치우친 선택을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그건 30년 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는 선택할 수 없는 일이죠.”
6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
이날 방송에서 이창재 감독은 여러 번 스스로를 ‘굼벵이’라고 표현했다. 2~3년이면 작품 한편을 내놓았던 그의 속도와 달리 <문재인입니다>는 처음 떠올리고 그 결과물을 내기까지 6년이란 세월이 걸렸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6년 동안 굼벵이로서 이 작품에 매달렸던 걸까 생각할 때 ‘대통령의 진면목이 뭘까’라는 질문이 떠올랐거든요. 그 질문에 답하는 영화를 내게도 보여주고 대통령께도 보였을 때 서로가 약간이라도 동의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여러 변수를 정리했을 때야 비로소 편집의 길도 보이고 마침표도 보이고 시작점도 보였습니다.” 퇴임 이후 1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다큐멘터리스트 이창재가 바라본 그는 매일 한결같이 농사를 짓고 야생화를 사랑하며 책을 가까이하고 반려동물을 돌보는 이웃이자 자연인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