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m 단거리 육상을 소재로 한 <스프린터>는 국가대표 선발전에 놓인 세 선수의 사연을 파고든다. 우선, ‘아직도’ 달리는 사람인 현수(박성일). 10살 넘게 차이나는 선수들 틈에서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인 그는 한때 국내 최고 주자였지만 이제는 죽어라 뛰어도 줄곧 4위에 머문다. 아내 지현(공민정)은 홀로 동네를 전전하며 훈련하는 현수에게 마땅한 위로를 전할 수 없어 갑갑하기만 하다. 그는 과연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다음으로 고등학교 3학년이자 이 종목의 유망주인 준서(임지호)가 있다. 앞길이 창창하지만 학교는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육상부를 해체하려 한다. 육상부의 존폐 위기가 계약직 코치인 지완(전신환)의 정규직 전환 가능성과 대치되면서 양쪽 모두에게 원만한 해피 엔딩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쓸쓸함 또한 감돌게 된다. 늘 1위를 거머쥐어온 젊은 선수 정호(송덕호)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후배들이 그의 뒤를 바짝 쫓아오며 견제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를 향한 의심까지 증폭되면서 그는 운동선수로서 치명적인 유혹에 빠진다. 그는 가장 빠르지만 누구보다 큰 위험을 안고 있다.
각 인물의 개별적인 에피소드들은 유연하게 겹치고 연결된다. 최승연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스프린터>는 자기와의 싸움이자 타인과의 경쟁인 스포츠의 양가적인 속성을 끌고 온다. 모두는 각자에게 주어진 좁은 레인에 서 있을 따름이지만 같은 트랙을 달려야 한다. 쉽게 보면 자리를 빼앗아야 하는 사람과 지켜야 하는 사람으로 나뉘겠지만 영화는 그게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신중하게 설명한다. 특히 <스프린터>의 미덕은 특정 인물에게 무게를 두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달리 말해 세 선수 다 주인공이고, 심지어 그들과 연관된 인물들도 꽤 선명하게 설정되어 있다. 이 서사에서 선발전의 순위는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개인의 최선과 열정만 응원할 만큼 납작하게 순수한 길을 걷지도 않는다. 등수는 분명 당락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지만, 영화는 순위의 문제가 ‘기능’하기 전에 문을 닫으면서 인물들의 미래를 공평하게 상상할 여지를 마련한다. 모범적이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다. 제47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