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갈 수만 있다면 (중략) 엄마가 아빠를, 나를, 사랑하지 않게 만들 거예요.” <백 투 더 퓨처>에서 과거로 간 마티(마이클 J. 폭스)가 부모를 엮어주며 자신이 사라질 위기에서 벗어난다면, KBS2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자신의 소멸을 전제로 엄마가 갖지 못한 시간과 기회를 되찾아주려는 딸의 결심으로 출발한다.
1987년 우정리 연쇄살인 사건을 추적하던 윤해준(김동욱)의 타임머신 자동차에 치여 과거로 간 백윤영(진기주)은 19살 엄마 순애(서지혜)의 절친이 되고, 아빠 희섭(이원정)과 결혼을 막을 작정이다. 엄마의 꿈과 고민을 가까이하며 알지 못했던 가족사에 다가가는 윤영은 전교 1등을 해도 딸은 대학에 보내지 않는 것이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닌’ 시절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흔하다고 비극이 아닌 건 아니죠.” 우정리 사건의 진범을 추적하며 다수의 용의자를 세우는 메인 미스터리와 엮이는 윤영과 해준의 가족사는 이를테면 ‘흔했던 비극’에 속한다. 외갓집 식구 중 윤영이 첫눈에 알아보지 못한 사람. 몸이 약해서 병으로 일찍 떠났다던 이모 경애(홍나현)처럼, 있는지도 몰랐던 친족의 존재를 뒤늦게 알게 되는 일이 드라마 밖에도 드물지 않다. 어떤 곡절로 죽었는지,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쉬쉬하는 죽음들. “세상 널린 게 비극”이라는 말에 순응하지 않고 그 삶을 조명하는 이야기를 윤영의 말을 빌려 다시 풀어본다. ‘흔하다고 미스터리가 될 수 없는 건 아니죠.’
죽음이 예정된 이들을 구하던 해준은 “안다는 건 바꿀 수 있다는 뜻이고 그건 꽤, 무거운 희망”이라고 담담하게 말하고, 돌이켜지지 않는 운명 앞에서 윤영은 “몰랐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니면, 그게 어디든 원점은 아닌 거”라 했다. 해준과 윤영이 왜 동반 시간 여행을 하게 되었는지 아직 안개가 걷히진 않았지만, 앎에 무기력하지 않으려 애쓰는 두 사람의 미스터리는 사람의 온기를 잃지 않는다.
CHECK POINT
“그냥 잠깐 안아줄까요? 우리.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잖아요. 오늘. 그러니까 그냥.” 고개를 살짝 기울여 까딱이며 의사를 묻는 해준에게 윤영은 거리를 좁혀 다가가 안는다. 비슷한 정서가 백소연 작가와 강수연 PD가 만났던 2017년 <드라마 스페셜-우리가 못 자는 이유>(사진)에도 있다. 진 빠지는 날에도 보라색 저녁 하늘은 속절없이 아름답고, 마음이 갈수록 서로 누추한 형편을 재확인하게 되지만 서로 고됨을 알아봐주는 사이의 위로는 답이 없어도 그저 오늘 푹 잘 수 있어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