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이윽고 바다에 닿다’, 남겨진 이들이 저장해둔 각자의 그리움을 꺼내다
2023-06-07
글 : 김성찬 (영화평론가)

의도치 않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과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을 향한 그리움의 무게는 다를까. 어쩌면 남겨진 이들에게 지금 곁에 없는 사람이 부재한 원인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테다. 그보다 부재한 이가 남긴 빈자리를 어떻게 용해야 하는지가 더 큰 문제가 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홀 서빙을 담당하는 마나(기시이 유키노)는 점장의 갑작스러운 자살 소식을 듣는다. 점장은 평소 남다른 취향으로 실내 음악을 손수 틀어주던 성실함뿐 아니라 직원들에게 과도할 만큼의 다정함도 보였던 터라 충격은 더 컸다. 하지만 그의 죽음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마치 별일 없었던 것처럼 그의 빈자리가 금방 채워진 일이다. 금세 새로운 점장이 부임하고, 직원들도 생각보다 그다지 동요하지 않는다. 이 일은 그가 지금껏 놓아주지 못한 친구 스미레(하마베 미나미)의 사정과 연결된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근처를 홀로 여행하던 스미레는 행방불명이 되었다. 시간이 꽤 흘렀어도 마나는 좀체 그를 잊을 수가 없다. 오히려 스미레의 엄마와 연인 토노(스기노 요스케)가 스미레의 부재를 받아들인 듯해 내심 서운하다. 마나에게 스미레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내향적인 마나가 대학 생활을 시작할 무렵 활발한 모습으로 나타나 친구가 되어준 스미레는 같이 여행도 가고 내밀한 대화도 나눈 둘도 없는 존재였다. 마나에게 스미레가 그랬던 만큼 소중했을 사람의 부재를 다른 사람들은 너무 쉽게 잊는 듯하다.

청춘물처럼 보이던 작품은 마나가 스미레가 행방불명됐다고 짐작한 장소에서 만난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결을 달리한다. 알고 보니 그들은 대부분 지진해일로 가족을 잃은 처지다. 그들 중 한명은 죽은 남편의 취미를 반복한다면서 캠코더로 지진해일이 밀려올 당시 죽은 가족을 반추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촬영한다. 이들은 쉽게 떠난 사람을 잊지 않고 어떻게든 기억해내려 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마나들이다. 그러고 보면 캠코더 촬영은 스미레의 취미이기도 했다. 스미레의 엄마도 연인 토노도 주저하는 마음에 캠코더를 열어보지 못하고 마나에게 떠넘긴다. 알다시피 카메라는 단순히 피사체를 찍는 일뿐 아니라 결과물을 저장하기도 한다. 또 우리가 촬영된 장면을 관람하는 행위는 휘발하지 않고 저장된 각자의 시선을 꺼내 시선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영화 후반부 스미레가 촬영한 장면을 보고, 또 직접 캠코더를 들고 촬영하는 행위의 연속에서, 마나는 시간차를 두고 발생한 시선들 속 스미레를 느끼고 스미레도 상상이라는 영화적 전능을 바탕으로 마나와 교감하는 건 영화가 보여주는 위령의 방식이라 할 만하다. 작품에 드러난 것처럼 현실과 극의 경계를 오가듯 생의 순환을 그리는 영화는 인물을 위로하면서도 남겨진 이들이 떠난 사람들에게 보여야 할 예의도 알려준다.

가까이 있어도 멀게 느껴지는 아이.

마나와 달리 다른 사람들이 스미레에게 느꼈던 마음의 표현으로 마나로서는 극구 저항하고픈 말이다.

CHECK POINT

<애프터썬> 감독 샬롯 웰스, 2023

시선의 저장장치로서 카메라의 존재감이 드러났던 최근 사례다. 아버지 캘럼이 죽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딸 소피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는 과거를 향한 심리적 부검과 변형된 추모를 거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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