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에 성격장애 진단명은 치즈 토핑처럼 흔해졌고, 성향이 다른 인물들이 팀으로 공조하는 이야기는 여간해선 물리지 않는 단짠의 공식이 되었다. 소시오패스 사기꾼 이로움(천우희)과 과공감 증후군인 변호사 한무영(김동욱)이 함께 복수와 사기를 기획하는 tvN <이로운 사기>는 이를테면 아는 맛에 속하는데도 같은 재료를 유독 잘 다루는 맛집이라 눈이 번쩍 뜨인다.
남을 수단과 도구로 이용하는 데 도가 튼 로움에겐 동조 성향이 강한 무영은 손쉬운 ‘먹잇감’이 될 법하다. 먹이사슬로는 그렇다. 쉽게 공감할수록 슬픔의 당사자가 아닌 나와 타인간의 겹칠 수 없는 거리를 재확인하던 무영이 자신의 쓸모를 확인받고 인정을 구하는 행위는 다분히 자기 파괴적으로 흐를 수 있다. 하지만 남의 고통과 슬픔에 쉽게 휩쓸리는 증상을 오래 견뎌온 이라면 내가 나일 수 있는 요소를 파고들어 붙들기 마련이고 치밀하고 질긴 그것이 성품이 된다. 해서, 도무지 삼킬 수 없고 뱉을 수도 없는 무영에게 뒤통수를 맞은 로움은 아연할 수밖에 없다. 진단명 아래의 사람을 가리키는 극본은 포식자인 로움만큼 주도면밀하게 계책을 꾸리는 먹잇감으로 먹이사슬을 풀어버렸다.
변호사 커리어를 희생하며 올곧게 의뢰인의 뒤통수를 치는 무영을 가리켜 로움과 그의 보호관찰관 고요한(윤박)은 “미친놈이네, 또라이네”라고 했다. 상대방이 시야에, 관심의 범주에 들어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로를 얕잡아보지 못하는 역학관계를 구축하는 방편으로 상호 관찰의 긴장을 활용하는 <이로운 사기>는 또 하나의 시선을 연결한다. 존속살해 혐의로 10년을 감옥에서 살다 나온 로움에 대한 호기심이 한껏 고조되었을 때, 로움은 제4의 벽 너머 시청자에게 눈을 맞추고 말을 건다. 화면 바깥의 당신이 나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알리는 것도 일종의 트릭이지만, 알면서 엮이는 이 사기가 짜릿하게 좋다.
CHECK POINT
무영은 로움에게 공감을 배우게 하겠다고 했고, 요한은 사람의 갱생을 믿는단다. 무엇이 사람을 만들고 변화하게 하는지 이 드라마에 묻는다면, 적어도 학습, 경험, 반복의 무게를 가벼이 다루지는 않겠다 싶다. 감옥에서 10년을 보낸 로움이 밤 아홉시 반에 불려나와 교도소 취침시간에 관해 얘기하고, 아침에 이부자리부터 정리하고 덩실덩실 새천년건강체조를 하는 장면이 있다. 로움에게 쌓인 시간은 그보다 이전, 적목재단의 도구로 살던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테고 변화는 간단치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