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귀공자’, 귀공, 어찌 코미디로 돌아오셨소
2023-06-21
글 : 이우빈

한국인과 필리핀인 사이에서 태어난 마르코(강태주)는 필리핀에 거주 중이다. 돈내기 복싱 시합에 출전해 몸을 혹사하면서까지 병든 어머니를 정성스레 모시고 있다. 무책임한 한국인 아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보냈다는 변호사가 찾아와 마르코에게 한국행을 권한다. 권유라기보다 강제에 가까운 태도인데, 친부가 어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해줄 수 있다는 이야기에 마르코는 어쩔 수 없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한편 이런 마르코의 행적을 ‘귀공자’(김선호)란 이름의 청부업자가 쫓고 있다. 여타 청부업자들을 압도하는 실력자이자 조금의 자비도 주지 않는 냉혈한이다. 그는 마르코를 아버지 집으로 데려가려는 자들을 모두 제거하며 마르코와의 추격전을 계속한다. 마르코를 쫓는 이는 귀공자뿐이 아니다. 마르코의 형이라는 재벌 2세 한 이사(김강우) 역시 마르코를 잡기 위해 혈안이다.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영문을 알 수 없던 마르코는 자신을 구해준 윤주(고아라)에게 자신과 아버지에 얽힌 진실을 듣게 된다.

<신세계>, <마녀> 시리즈를 연출한 박훈정 감독의 신작이다. 박훈정 감독의 특기인 유혈 낭자 액션,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가는 서스펜스, 여기에 소위 ‘낭만’ 넘치는 브로맨스까지 총결합됐다. 영화의 제목처럼 작품의 서사와 스타일을 지휘하는 중추 역할은 김선호가 연기한 귀공자다. 멀끔한 슈트와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여유로운 프로의 면모를 보이다가 어느 순간부터 어리숙하고 허술한 성정을 내비치는 이중적 캐릭터다. 이러한 양면성은 <귀공자>의 전체적인 톤 앤드 매너이기도 하다. 우선 과묵하고 진지한 성격의 마르코가 비극의 중심에 휘말리면서 진중한 누아르 분위기가 극 전반에 흐른다. 그런데 심각해지려는 상황마다 귀공자나 한 이사의 유머와 기행이 틈입하면서 작품의 분위기를 환기한다. <신세계>의 무정함을 사뿐하게 변주한 동시에 <마녀>와 같은 만화적 설정을 차용하며 색다른 균형을 도출한다. 일부 대사나 상황, 액션에 일정의 과잉과 가벼움이 드러나긴 하지만 안정적인 프로덕션과 일관된 캐릭터 코미디의 결이 단점을 보완한다.

마르코가 한국인과 필리핀인 사이의 혼혈인 코피노란 점도 <귀공자>의 주요 설정이다. 코피노에게 가해지는 부조리한 현실을 지적하면서 비인간적인 2차 가해를 범하는 가해자들의 실태를 드러낸다. 물론 여전한 타자의 시선에서 코피노의 정체성을 하나의 성질로 압축하는 성급함이 엿보이며, 차별에의 직설적 언행이 여과 없이 나타나기도 한다. 다만 해당 소재를 캐릭터 설정으로 소비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영화의 주제로까지 확장하려는 시도도 일별할 수 있다. 특히 말수 없는 마르코의 내면과 감정을 단단하게 완성해낸 신인배우 강태주의 얼굴, 표정, 움직임이 캐릭터의 당위성을 확보한다.

내가 누구냐고? 네 친구.

귀공자는 마르코를 비롯한 타깃들에게 본인을 ‘친구’라고 소개한다. 언뜻 보면 별 의미 없고 면구한 농담으로 보이지만, 영화의 후반부에서 ‘친구’의 의미는 외연을 확장하여 여러 여운과 질문을 남긴다.

CHECK POINT

<넘버 3> 감독 송능한, 1997

<귀공자>는 누아르와 코미디 사이에서 줄을 탄다. 어느 순간엔 양자간의 균형이 코미디로 확 쏠리기까지 한다. 이러한 태도에서 코미디의 탈을 쓰고 온갖 활력을 추구하다가 문득문득 비장하고 선득한 감각을 일깨웠던 <넘버 3>의 사례가 떠오른다. 물론 쿨한 낭만파 누아르를 추구하는 <귀공자>와 우격다짐의 한국형 조폭물을 표방한 <넘버 3>의 표면은 다르지만, 폭력을 소재 삼아 그것을 종잡을 수 없는 유동적 스타일로 표출했다는 유사성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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