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케이팝 파티]
[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서른이 넘기 전에 결혼은 할는지
2023-06-29
글 : 복길 (칼럼니스트)

사는 게 힘들 때마다 온갖 신통한 말들을 찾아다니지만 삶은 결국 늘 유행가 가사 한줄에 관통당하고 만다. ‘서른이 넘기 전에 결혼은 할는지’라는 충격적인 도입부를 떠올려보라. 서른도 안된 여자가 실연 좀 당했다고 부모에게 잔소리로 들을 법한 말을 자학처럼 뱉는다. 그런데 딱 10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되었나? 그 가사는 역대 최고 수치라는 한국의 30대 미혼율을 예언하고 만다….

내 이성의 심의에 따르면 그 가사는 여러모로 옳지 않았다. 청소년이 듣기에도(조혼을 장려함), 서른이 듣기에도(불안을 조장함), 노인이 듣기에도(가소로움), 페미니즘적으로도(말할 것도 없음). 씨스타가 누구인가? 여름 평균 기온이 상승한 것은 그들의 해체 때문일 거라는 음모론도 수긍하게 만들었던 한국 최고의 걸그룹…! 재앙의 위기에서도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폭발적인 가창력과 퍼포먼스를 지닌 아이돌…! 그런데 그들의 노랫말은 나쁜 남자들만 만나다가 서른 넘어서까지 결혼도 못하는 노처녀가 되면 어쩌나 고민하는 내용이라니…! 그것도 <물랭루즈>에서 착안한 쇼걸 복장을 하고, 지팡이와 커다란 모자를 든 채 마술을 하면서…. 가수의 강인한 이미지, 처연한 노랫말, 난해한 무대 구성. 세 가지 요소가 한없이 겉돌지만 그러나 바로 그 부조화가 이 노래의 핵심임을 말해야 한다. ‘결혼을 못해 고통스럽다면 마술쇼로 그 슬픔을 달래자.’ 허무맹랑하다 싶지만 삶이란 것이 언제나 뜻있고 조화로울 수만은 없으니까….

카카오톡으로 대학 동창 A의 청첩장을 받았다. 살갑고 정 많은 A는 결혼식을 광주에서 올리게 되어 미안하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그게 뭐가 미안한 일이냐, 하고 답장을 적다가 지웠다. 젊은 나이에 서울에 살지 않는 사람이 느끼는 복잡한 심정이 미안하다는 한마디로 치환될 수 있다면 오히려 다행이었다. 인천 송도에 직장을 구한 B와 함께 A의 결혼식에 가기로 했다. 그러나 결혼식 당일 새벽, B가 용산역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예매한 열차는 이미 떠난 후였다. B는 미안하다고, 늦게라도 가겠다고 했고 나는 정말 괜찮다고 했다.

A의 결혼식은 성대했다. 예식장에서 가장 큰 홀을 썼는데도 화환 놓을 자리가 부족했다. 분주하게 옮겨지는 화환에는 세상의 중요한 사람들의 이름이란 이름은 모조리 쓰여 있는 것 같았다. 한국의 경조사는 부모의 세를 확인하는 자리임을 새삼스레 깨달으며 결혼하지 않을 핑계 하나를 또 늘렸다. 자리에 앉았더니 눈에 익은 얼굴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졸업한 지 10년이 지났는데 전공 교수는 물론이고 학과 조교와 얼굴만 아는 높은 학번 선배, 편입한 후배들까지 있었다. 동기인 C와 D가 테이블에 앉으며 아는 척을 했다. 우리가 동기라니? 이런 아저씨들이? 늘 술자리를 만들던 남자 둘이었다. D가 대뜸 나를 보며 결혼은 했냐고 물었고, C가 D를 팔로 툭 쳤다. 당황한 D가 급히 화제를 돌렸다. 우리는 식이 시작될 때까지 학점도 좋고 인기도 많은데 학교에 잘 안 나오는 애들까지 두루 챙기던 A의 대학 시절에 관해 이야기했다. 우리의 테이블엔 ‘학교에 잘 안 나오는 애’였던 Y가 있었는데 C와 D에게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동기들끼리 단체 사진을 찍고 나오는데 전공 교수가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건강하시죠?” 했더니 교수는 “넌 만나는 사람 없니? 나이를 보면 올해가 마지노선이다” 했다. 이런 말이 상대를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괴롭힘을 즐기듯 무작정 밀고 들어오는 태도. 불쾌한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그의 곁에 서서 웃음으로 무마해주는 사람들. 그래 이런 게 대학 시절 내내 보던 것이었지. 아주 익숙한 외로움이었다. 교수의 선택적 덕담을 흘려 들으며 나는 슬그머니 그곳을 떠나는 Y의 뒷모습을 보기 위해 대열을 벗어났다. 서울로 가는 열차 안에서 나는 B에게 “이제는 대학 동창 결혼식엔 못 가겠다” 했다. B는 웃으면서 “더 결혼할 애도 없지 않냐”고 했고, 나는 “입을 옷도 없고. 잘사는 척도 힘들다” 했다. 우리는 기차에서 금세 잠에 곯아떨어졌다.

A의 결혼식이 끝나고 2주가 지난 어느 저녁, B에게서 연락이 왔다. B는 흥분하고, 화를 냈다. 10년 전, 동기 Y가 미성년자 때 낙태했다는 내용의 소문을 누가 퍼트렸는지 알게 됐다는 얘기였다. 결혼식 이후 동기들끼리 모여 뒤풀이를 가졌는데 C가 술에 취해 자리에 없는 Y를 입에 올리며 고해성사를 했다는 것이다. 나는 흥분한 B를 진정시켰지만, B는 ‘이거 완전 <올드보이> 내용’이라며 혀 한번 잘못 놀린 오대수가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라는 둥 C는 평생 군만두만 먹기도 아까운 놈이라는 둥 소리쳤다. 그 소문에 들러붙은 저질스러운 말들로 Y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집 밖을 나오지 못했는지 얘기하면서.

씨스타의 메인 보컬 효린은 <Give It to Me>에서 ‘아무리 원하고 애원해도 눈물로 채워진 빈자리만’이라는 가사를 특유의 갈라지는 목소리로 시원하게 내지른다. 고통의 감정으로 시작하지만 그 괴로움을 어딘가로 날려보내는 듯한 마무리는 ‘결혼을 일찍 못해 걱정하는 여자’치고는 지나치게 홀가분하기에 나는 그 격차에서 오는 통쾌함을 즐긴다. 통속적인 삶의 고뇌를 아무렇지 않게 해결해버리는 그 가창이 더없이 위안이 된다. 나는 그 노래 속 여자 같을 수 있다면 좋을 거라 생각했다. 청첩장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평탄한 일상과 창창한 미래를 확인하고 안도하는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다 ‘너네 다 재미없으니까 다시는 나 찾지 마’ 하고 사라질 수 있는 그런 여자가 되고 싶었다. 모든 것이 조화롭게 보이는 결혼식장에서 나는 숨이 막혔다. ‘나는 절대 결혼 안 해.’ 다시 한번 결심을 하는데 ‘못하는 게 아니라?’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결혼을 간절히 하고 싶어도 법이 허용하지 않아 좌절하는 세상인데 내 비혼 결심이 얼마나 덧없는 인정투쟁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학교를 잘 나오지 않던 Y’는 나였다. 같이 입학했지만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는 못한 낯선 동기들. 나는 그들과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B가 통화 중 내게 보여준 분노는 고마웠다. 교수가 멋대로 정한 마지노선은 내게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정상이라는 궤도가 있다면 나는 한참이나 이탈했고 그것이 부끄럽다는 감각도 잊은 지 꽤 되었다. 나는 계속 겉돌고 그렇게 겉돌다 우연히 나와 같은 이들을 만나면 잠깐 쉬면서 살았다. 그들은 대부분 <Give It to Me>의 도입부 가사를 듣고 헛웃음을 짓거나, ‘사랑을 달란 말야, 그거면 된단 말야’를 따라 부르며 웃고, 시대상을 반영해 ‘마흔이 넘기 전에’로 고쳐야 되는 게 아니냐며 박장대소했다. 서른다섯. 지금의 나는 정말로 그거면 된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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