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보’의 신경계까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인물의 깊은 내면과 공포심을 표현하려 했다.” 6월 29일 부천만화박물관에서 동시대 호러 영화의 기수인 아리 애스터 감독의 마스터클래스가 열렸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제작 과정을 비롯해 감독의 연출론 전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감독은 2011년 단편영화 <보>로 본작의 기획을 출발했던 때부터 미국 개봉 당시의 관객 반응에 대한 소회까지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생애 주기를 꼼꼼히 복기했다. 강연의 진행은 감독의 미국영화연구소(AFI) 시절 멘토이자 올해 부천영화제 NAFF 환상영화학교의 학장인 배리 사바스가 맡았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출발은 감독의 사소한 상상이었다. “갑자기 우리 집 열쇠가 사라지면 어떡하지. 심지어 여행 가기 직전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지”라는 발상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됐다. 이것이 바로 2011년 미국영화연구소에 들어와 만든 단편영화 <보>의 내용이다. 그렇게 <보 이즈 어프레이드>란 장편 시나리오로 발전시켰다. 하지만 “워낙 이상한 이야기”인 만큼 제작비를 확보하기 어려웠고, 각본을 서랍에 수납해 놓은 뒤 <유전>과 <미드소마>를 먼저 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생긴 여유를 틈타 <보>의 각본을 대거 수정했다. “1부에서 보가 사는 도시의 모습은 작업 초기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중후반부의 연극 시퀀스, 엔딩 장면을 새로 추가하며 각본을 완성했다.”
‘보’를 연기한 호아킨 피닉스와의 협업은 그의 철저한 계획이었다. “각본을 쓸 때부터 호아킨 피닉스를 염두에 뒀다.” 처음 출연 제안을 받고 각본을 읽은 호아킨 피닉스의 반응은 “내가 얼마 전에 오스카도 탄 배우인데... 이런 이상한 영화를 찍어도 될까”였다. 당시 상황을 웃으며 회상한 아리 애스터 감독은 호아킨 피닉스에 대한 상찬을 늘어놓았다. “그는 누구보다 철저하게 각본을 분석하고 치열하게 토론한다. 종종 그의 연기가 즉흥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는 배우다.” 이에 감독은 호아킨 피닉스의 자유로운 연기 환경을 보장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촬영 현장에서 사전 동선을 제한하지 않았다.
아리 애스터 감독은 무척이나 철저한 계획주의자다. 그는 세트 제작에 쓰일 상점의 상세한 디자인, 영화 포스터, 광고, 그래피티, 심지어 골목에 붙어있는 공연 포스터의 밴드 이름까지 철저하게 정리한 후 사전 제작에 돌입했다. “내 취향이 워낙 확고하다 보니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은 피오나 크롬비가 많이 고생했다.” <유전> <미드소마>에서 함께한 촬영감독 파벨 포고젤스키와 화면 질감의 방향성을 치열하게 토론한 결과, 파나비전에 아예 새로운 렌즈의 제작을 요청하기도 했다.
아리 애스터 감독은 자타공인 시네필 출신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여느 때처럼 이창동, 봉준호, 박찬욱, 김기영, 유현목 등을 언급하며 한국영화에의 애정을 드러냈다. 그리곤 “이창동 감독의 영화가 지닌 무료한 삶 속의 날카로움과 미스터리, 한국영화 전반의 해학적인 유머”를 설명하며 그 애정의 이유를 말했다. 또 로이 앤더슨의 초현실적 장인정신, 알버트 브룩스가 만든 <영혼의 사랑>의 광대한 롱테이크, <플레이타임>에서 보인 자크 타티의 블랙 코미디 등 여러 감독, 영화에게 받아 온 영감을 나열했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 대한 관객의 호불호가 강하다는 질문에 감독은 자신감 넘치는 답을 내보였다. “이 영화는 순수한 코미디다. 그러니 각자의 취향에 따른 상반된 반응은 이해한다. 그러나 난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며 내가 만든 이 해괴한 세상을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싶다. 앞으로도 내 세계를 꿋꿋이 만들어 가겠다.” 감독의 끝인사 역시 그의 작품처럼 뼈있는 코미디였다. “주변에 입소문 좀 많이 내달라. 영화관에서 꼭 보라고 말이다. 넷플릭스 말고.”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