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쿠마 토시로(사카구치 타쿠)는 독보적인 액션 배우다. 세상도 그걸 인정한다. 그러나 10년이 흐른 현재, 실력은 여전해도 세상은 그를 잊었다. 다시 한번 리얼한 액션극으로 재기를 노리고자 유일무이한 제자 아키라(후쿠야마 코헤이)와 함께 촬영에 돌입한 어느 날, 그는 실제로 싸워야 하는 상황과 맞닥뜨린다. 유다이 야마구치 감독의 6년 만의 신작 <원 퍼센터>는 독창적인 액션 세트피스의 향연으로 숨을 훅 들이마시게 하다가도 리얼 액션 배우에 대한 신념으로 버티는 주인공의 직업의식에 깊게 탄식하게 한다. 올해로 벌써 4번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은 유다이 야마구치 감독을 만나 <원 퍼센터>의 놀라운 주연 사카구치 타구 배우와 잊을 수 없는 명장면들에 관해 물었다.
- 첫 장편 연출작 <지옥 갑자원>(2003)의 주연을 맡아 우정을 이어온 사카구치 타쿠 배우가 <원 퍼센터>에서도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극 중 전설의 액션 스타인 토시로처럼 사카구치 타쿠도 베테랑 액션 배우인데, 혹시 그로부터 출발한 이야기인가.
= 그런 셈이다. 사카구치는 45만 명 정도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이기도 한데, 채널 콘텐츠 중 그의 출연작 <무사: 400 vs 1>을 짧게 편집한 영상이 코로나19 시기에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이후 그의 유튜브 프로듀서로부터 이 영상을 장편 영화로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액션 배우라고 자기 정체성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사람의 내면은 어떨지 탐구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 수락한 뒤 각본 작업에 돌입했고 2년 전 여름에 촬영했다.
- <원 퍼센터>를 보러온 관객이라면 영화가 끝나자마자 사카구치 타쿠란 이름을 검색해 보지 않을까 싶다. ‘홍콩에 주성치가 있다면 일본엔 사카구치 타쿠가 있다’라는 소개 글을 읽기도 했는데, 어마어마한 액션과 깊은 감정 연기를 동시에 소화해내는 그가 궁금하다.
= 쉽게 말하면 브루스 리, 이소룡 같은 사람이다. 언급했듯 유튜버이자 나와 같은 필름 메이커이기도 하고 격투가이자 무도인, 액션영화 코디네이터이기도 하다.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작업하기 쉽고 좋은 파트너이기도 하고. 그렇다 보니 무술 감독이 있었음에도 주로 그와 아이디어를 주고받았고, 비디오 콘티를 함께 보며 전체적인 템포와 밸런스를 맞춰 나갔다.
- 두 개의 하이라이트 액션 시퀀스에 관해 묻고 싶다. 첫째는 손전등을 활용한 일 대 다 액션 시퀀스다. 수많은 플래시가 움직이며 만들어 내는 그림이 비주얼적으로 근사하기도 하지만 드뷔시의 <달빛>의 부드러운 선율과 거친 타격 소리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 플래시 사용은 사카구치의 아이디어였다. 많은 불빛으로 혼돈의 느낌을 내면 좋겠다고 제안해 줬다. 토시로가 손전등을 마치 무사가 허리춤에서 장검을 꺼내듯 빼내는, 내가 정말 감탄한 퍼포먼스 역시 그가 만들었다. <달빛>은 곡이 주는 분위기가 영화의 드라마적인 부분과 잘 어울려서 애초부터 메인 테마곡처럼 쓰겠다고 결정한 곡이었다. 처음에는 더 많은 장면에 쓰였는데 반복되면 관객에게 피로감을 줄 것 같아 최종적으로 곡의 효과가 극대화될 몇 개의 신에서만 사용했다.
- 둘째는 토시로와 최종 보스의 일대일 맨몸 액션 시퀀스다. 두 인물이 주먹이나 발을 뻗을 때 나는 소리와 몸끼리 맞부딪힐 때 나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 사운드 디자이너에게 현장에서 따온 소리와 최대한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한 게 효과가 있었나 보다. 최종 보스를 맡은 배우도 절권도의 대가라 사카구치와 같이 어딜 맞으면 어떤 소리가 나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서 그들에게 자문받은 점도 작업에 반영했다. 영화를 보름 동안 찍었는데 이 시퀀스만 3일간 찍었다. 일본영화에서는 보통 액션영화를 찍더라도 드라마 부분이 길어지면 액션 신을 줄이거나 없애는 경우도 다반사인데, 나는 도무지 액션을 양보할 수가 없더라. 액션 파트는 공들여서 제대로 찍는다는 게 감독으로서 내가 고수한 원칙이었다. 시네마스코프 비율에 트릭 하나 쓰지 않고 <스트리트 파이터>의 게임 구도로 정직하게 찍은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원칙을 하나 더 말하자면 영화를 2시간 이상의 긴 호흡으로 가져가지 않는 거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는 데에 러닝타임 90분 정도면 충분하다는 주의다. 그래서 <원 퍼센트>도 러닝타임을 85분에 맞췄다.
- 토시로는 누구인지에 관한 인터뷰 신으로 시작해 취조 신으로 수미상관을 이룬다. 인터뷰 형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 토시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위치에 서 있는 배우인지 정체성을 규정하고 싶었는데 인터뷰 형식이 그걸 드러내기에 적당할 것 같았다. 토시로 본인과 동료들에게 직접 그에 관한 질문들을 던질 수 있으니까. 토시로가 인터뷰하는 모습이 ‘유튜버 사카구치 타쿠’가 자기 채널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연결돼 재미있을 것도 같았다.
- 제자 아키라의 존재는 후반부에 이르면 뭉클함과 함께 토시로의 삶을 적극적으로 응원하게 한다. 아키라가 극에 꼭 필요했던 이유는.
=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는 특이하다. 두 사람이 같이 다니면 제자는 없는 사람 취급을 받곤 하잖나. 그런 보이지 않는 존재를 통해서 스승에 관한 독특한 시각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둘의 관계를 <파이트 클럽>처럼 복잡하게 가지 않아도 간단하고 자연스럽게 풀 수 있을 거란 판단도 있었다.
- 2006년 <미트볼머신>으로 가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CG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아날로그 작업 방식이 좋다”라고 말했다. 17년이 흐른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나 역시도 마블 영화를 재밌게 보는 관객이지만 내 영화를 만들 때는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선호한다. 한 번 딱 찍고 CG 쓰면 될 장면도 현장에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계속 찍어보고 기어이 내가 원하는 조합을 만들어 냈을 때의 성취감이 여전히 좋다.
- 내내 자신이 어떤 액션 배우인지, 만들고 싶은 영화는 무엇인지 말하는 토시로를 따라가다 보니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당신은 어떤 영화감독이고,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가.
= 트렌드에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되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감독을 지향한다. 내가 만드는 영화들은 유형화할 수 없는, 이를테면 누구도 ‘야마구치 감독의 영화는 이런 스타일이야’라고 말할 수 없는 천차만별한 작품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