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조자>를 쓴 소설가 비엣 타인 응우옌은 4살이던 1975년 사이공 함락 즈음 가족 모두가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그곳에서 성장했다. “나는 스파이, 고정간첩, CIA 비밀 요원, 두 얼굴의 남자입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그의 첫 장편소설 <동조자>의 주인공 ‘나’는 남베트남 소속 군인이다. 사이공 함락 직전 상관인 ‘장군’과 함께 베트남을 떠나 미국으로 향한 그는 <지옥의 묵시록>을 연상시키는 <더 햄릿>이라는 영화의 제작에 자문으로 참여하기도 하지만 어느 날 베트남으로 돌아가게 된다. 베트남전쟁을 이중 첩자의 일인칭 시점에서 다시 쓰는 이 소설은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박찬욱 감독이 연출을 맡은 <HBO> 시리즈로 만들어진다.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응우옌을 만나 <동조자>와 후속작인 <헌신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당신은 주인공을 무해한 인물로 그리지 않는다. 심지어 주인공이 죽이거나 죽음에 가담하는 사람들은 모두 결정적인 죄는 짓지 않았다. 소수자 혹은 약자들은 주류의 적대적인 편견을 피하기 위해 가능한 한 온건한 느낌으로 자신을 내보이는 전략을 사용하는 일이 많다. 죄를 지었다고 알려진 주인공은 사실 억울한 누명을 쓴 거라는 전개가 더 익숙한 이유다. 하지만 <동조자>의 주인공은 분노하는 사람이다.
= 공감할 수 있는 주인공을 내세워 목소리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충동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욕망은 약점이자 두려움의 증상일 수 있다. 내가 만들어낸 캐릭터에 들이대는 잣대가 작가에게도 적용될 것 같다는 두려움의 발로. 좋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지만 제약이 많다. 주류에 속한 사람이 주인공인 작품을 보면, 나쁜 짓도 하고 좋은 짓도 하는, 복잡한 심리를 다 가진 캐릭터들이 주인공이다. 작가도 주인공도 주류에 속해 있어서다. 주인공의 특별함 때문에 그가 속한 집단이 매도되지 않으리라는 자신감과 여유가 있는 셈이다. 나도 그런 야망을 품었다. 베트남 사람이 주인공인 그런 스토리를 쓰고 싶었고 그 역시 다른 모든 인간처럼 나쁜 면도 좋은 면도 있는, 복잡한 인간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 <동조자>를 읽으면서, 할리우드영화를 통해 베트남전쟁을 다시 경험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지적하고 있다시피, 압도적인 선전방법인 영화라는 수단을 가진 패자들 편에서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베트남전에 대한 할리우드영화들은 특징적이다. 그런데 책 속 영화 <더 햄릿>의 감독에 대한 설명은 ‘작가주의 영화감독’이다. <람보> 같은 근육질 영웅이 등장하는 뻔한 액션영화가 아니라 작가주의 영화감독, 정확히 <지옥의 묵시록>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 이유는 무엇이었나.
= 성장하면서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하는 할리우드영화는 거의 다 본 것 같다. <람보> 같은 대중적인 영화도 많이 봤지만 천재적인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감독들이 만든 영화들도 봤는데, 그런 유의 감독들을 풍자하는 게 더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할리우드에는 진짜 똑똑하고 재능 있는 감독들이 있는데, 비열한 동시에 탁월하고 인종차별주의자, 여성 혐오주의자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도 있는 식이다. 복잡하고 모순적인 캐릭터를 풍자하는 게 더 흥미롭기도 하고.
- 박찬욱 감독이 연출하는 <동조자> 시리즈의 세트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알고 있다.
= 농담 삼아 작가가 (창작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자기 목숨밖에 없다고 하는데, 영화나 시리즈를 만들려면 최소 1억달러가 든다. 즉 창작물에 가격표가 붙기 때문에 (소설에 비해) 영화나 시리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갖는다. 그런 점 때문에 정치적인 현상에 대해 영화가 제일 늦게 반응한다고 생각한다. 베트남 사람의 입장에서 창작된 작품이 이렇게 큰 비용을 들여서 시리즈로 만들어진다는 것이 반가운 동시에, 내가 소설에서 풍자하려던 장면과 현상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이러니하다고도 생각했다.
- <동조자>를 읽을 때는 분노라는 감정을 느꼈다면 후속작인 <헌신자>에서는 슬픔을 강하게 느꼈다. <헌신자>에서 유령의 목소리가 중요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 그렇다. <동조자>의 지배적인 감정이라면 분노, 억울함, 독선 같은 것일 텐데 결말로 가면서 혁명에 대한 환상과 자신에 대한 환상이 다 깨진다. <헌신자>가 시작될 때 주인공은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심리적으로는 미치기 직전까지 갔던 상황이고, 그 자신도 범죄의 공범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겪는 죄책감이 있다. 과거에서 들리는 유령의 목소리가 주인공에게 더 많이 들릴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을 통해 이미 바닥까지 떨어졌다고 생각한 주인공이 더 깊은 곳까지 추락하는 이야기가 <헌신자>라면 3부작의 마지막이 될 다음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드디어 바닥을 치고 올라오기 시작할 것이다.
- 베트남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와 10대, 20대의 반응이 다를 것 같다.
= 전쟁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동양계이든 아니든 모두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히려 기성세대가 자기만의 정치의식이나 정치 신념을 기반으로 <동조자>에 비판이나 우려를 표출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정치적으로 좌우를 불문하고 <동조자>에서 자기만의 불쾌한 지점을 찾아내서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은 주로 기성세대였다. 왜 이런 식으로 소설을 썼느냐는 사람, 이해를 못하겠다고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동조자>는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는데, 이 소설을 접한 젊은 세대가 정치적인 뉘앙스나 유머를 더 잘 이해한다고 느꼈다. 소설은 독자에게 설교를 하거나 도덕적으로 교훈을 남기려고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의도나 분노를 토대로 소설을 접하기보다 역사에 대해 모르면서도 그저 재미있어서 소설을 읽는 젊은 독자들이 무척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