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1초의 지루함도 허락하지 않는다, ‘비공식작전’ 김성훈 감독
2023-08-03
글 : 이우빈
사진 : 최성열

또 끝까지 간다. 바야흐로 1980년대 한국, 외교부 공무원 민준(하정우)은 레바논으로 떠난다. 2년 전 현지 무장 세력에 납치된 오재석 서기관을 구하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민준은 현지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재외교민 택시 운전사 판수(주지훈)를 만난다. 둘은 내전이 한창인 격전지의 중심에서 자국민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달리고, 또 달린다. 1986년 한국에서 일어난 외교관 납치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영화적인 각색이 대부분이다. 이를 통해 김성훈 감독은 전작 <끝까지 간다>나 <터널>에서 보여줬던 특유의 서사 구조, 서스펜스와 유머가 배합된 본인의 스타일을 영리하게 적용해낸다. 영화 만들기에의 진지한 가치관과 농담이 적절히 배합된 그의 입담에선 <비공식작전>의 향취가 물씬 풍긴다.

- 2019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다. 5년 걸려 시사회까지 마친 소감은.

= 제작진에겐 참 미안하지만, 시사 마친 밤에도 편집하느라 바빴다. (웃음) 시사를 보는데 고쳐야 할 소리가 3개 정도 들리더라. 사실 DCP랑 돌비 애트모스까지 끝낸 상태여서 재편집이 어려웠던 상황이다. 그렇지만 배경음악이 몇초 빠르게 들어간 부분, 또 아랍어 왈라의 내용이 너무 잘 들리는 곳 등이 신경 쓰였던 터라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그래서 밤 9시에 수정을 시작해 결국 열두 군데를 손봤다. (웃음) 제작진이 시사를 보며 각자 마음에 걸렸던 부분을 알아서 말해주더라. 본인들 일만 늘어나는 건데… 눈물 나게 고마웠다.

- 후반작업에 많은 공을 들인 것 같다.

= 내 첫 영화(<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 이하 <애정결핍>)가 대차게 망한 건 다들 아실 테다. (웃음) 그때부터 내가 제작진이나 관계자들에게 누누이 강조하는 말이 있다. 영화를 만들 때 “대세에 지장 없다”란 말만은 절대 안 하겠단 거다. 마트에서 천원짜리 과자를 산다 해도 포장지가 조금만 찢겨 있으면 당연히 반품할 수 있다. 그런데 영화는 과자보다 훨씬 비싸게 만들고 비싸게 판다. 그러니 적어도 영화가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최소한 우리가 눈치챈 흠집만큼은 없애야 하지 않겠느냔 뜻이다. 관객이 알아채기 힘든 사소한 요소일지라도 마찬가지다. 제작진 내부에서 “대세에 지장 없고 관객은 모를 거예요”란 의견이 나오는 순간 영화는 망조로 접어든다고 생각한다.

- VIP 시사회를 앞두고 있다. 보고 나서 또 고칠 계획이 있는지.

= 아이고, 이번에는 정말 꾹 참고 영화만 보려고 한다. (웃음) VIP 시사면 개봉 전에 맞는 최후의 만찬이지 않나. 그냥 손님들 모시고 잔치를 연다는 마음으로 즐겨보려고 한다. 이후에 장렬히 전사할지라도…. 장항준 감독이 “너 잘되나 보자”라면서 구석구석 벼르고 있는 터라 좀 걱정이긴 하다.

여유와 긴장의 완급 조절

- 1986년 일어난 서기관 납치 실화를 소재로 삼았다.

= 처음 영화에 대한 계획을 발표하는 비전 워크숍 같은 게 있었다. 배급사인 쇼박스에서 진행했는데, 거기서 내가 <비공식작전>을 만들어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를 설명했다. 그중 하나가 한 인물이 납치되며 출발하는 서사의 구조다. <터널>이나 <끝까지 간다>처럼 영화가 시작하면 누군지도 밝혀지지 않은 인물이 재난과 같은 삶에 떨어진다. 이 사람이 누군지 안 후에 감정이입을 하는 게 아니다. 사건 후의 과정을 통해 그 인물의 실체를 관객에게 이해시키는 과정이다. 이런 방식에 여전히 재미를 느낀다.

- 나머지 이유 네 가지는 무엇인가.

= 음… 일단 하나는 이전 답변과 비슷한 맥락이다. 평범한 공무원 민준에게 갑자기 전화가 걸려오며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되는 구조가 좋았다.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아 있고, 장차 이 사람을 어떻게 구할지에 관해 충분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머지는 험난한 구출 과정에서 부각되는 서스펜스, 그리고 작품을 너무 무겁게 만들지 않는 인물들의 유머. 이것들의 변주를 통해 쾌감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단 얘기였다. 또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니 사건 진위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를 작품에 자연스레 녹이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가치가 충분하겠다고 느꼈다.

- 서스펜스와 유머. 김성훈 감독의 영화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두 기둥이다. 고유의 서스펜스를 구가하는 비결이 궁금하다.

= 영화과 출신도 아니고 영화로 유학을 다녀오지도 않았다. 다만 서스펜스의 원칙이야 히치콕이 모두 보여주지 않았나. 또 장피에르 멜빌의 방식도 좋아한다. <고독>에서 알랭 들롱이 누워 있다가 일어난 후, 거리로 나가 자동차에 들어가고 수많은 열쇠를 차례차례 꽂을 때의 그 긴장감. 리얼타임의 감각이 가져다주는 그 폭발력이 대단하지 않나. 물론 요즘에 그렇게 영화 찍으면 투자사에서 “감독님은 편집을 안 배우셨어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웃음)

- 히치콕과 멜빌 사이의 어딘가를 택하려는 것인지.

= 그렇다. 급박함과 여유 사이의 긴장감, 그런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 또 내가 워낙 겁이 많은 덕도 있다. 예를 들어 당장 VIP 시사회 때만 돼도 “사람 많이 안 오면 어떡하지? 뒤풀이 싫어하면 어떡하지?”란 걱정에 사로잡히는 성격이다. 기질적으로 타고난 공포심이 많아서 서스펜스를 만드는 데도 잘 사용하는 편이다. 다만 서스펜스만 가지곤 두 시간을 이끌 수 없다. 지루함을 없앨 전체적인 완급 조절을 위해선 유머도 필수다. 가령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볼 땐 작품에의 존경을 감추지 못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저 절박하고 힘든 상황에 조금의 유머가 가미되면 어떨까’란 발상이었는데, 이런 방식이 내 고유의 톤 앤드 매너인 것 같다.

- 전작들과의 유사점 중 하나는 인물들의 전사가 제시되지 않는단 점이다. 플래시백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 인물의 전사를 플롯에 집어넣으면 특정 상황에 부닥친 인물의 감정에 관객이 쉽게 몰입할 순 있다. 이게 정공법에 가깝다. 하지만 영화에선 정공법만이 정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까딱하면 이야기가 상투적으로 변질될 수 있고, 관객을 설득하려는 모양새가 나올 수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훌륭한 작품도 많지만 별다른 뜻 없이 안전하게만 가는 건 그릇된 유혹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사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더라도 인물이 나아가는 과정만을 통해 관객의 동의를 구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관객의 이목을 끌고, 관객이 스스로 인물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영화의 속도감을 키우는 데엔 도움이 된다.

- <비공식작전> 속 판수는 이른 나이부터 해외를 떠돌았다. 하지만 미지에 싸인 판수의 전사 역시 과감히 생략됐다.

= 사실 판수의 과거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더 있었다. 그런데 영화 보는 선수들은 척하면 알지 않나. 인물의 과거가 느닷없이 영화에 개입하면 ‘아, 여기서 대놓고 판수한테 감정이입하라는 거구나’라고 느낄 법하다. 그래서 그런 과거 장면이 편집 단계에서 꽤 많이 소거됐다.

- <터널>은 정수(하정우)와 대경(오달수), <끝까지 간다>는 건수(이선균)와 창민(조진웅), 데뷔작도 아버지와 아들이 주인공인 일종의 듀오 무비다. <비공식작전> 역시 민준과 판수의 버디 무비다.

= 두명의 이야기를 온전히 펼치기에도 두 시간은 짧다. 그러니 한두명의 인물이 장애물과 위기를 극복하는 걸 제대로 파보자는 생각이다. 물론 인물은 꼭 두명이 나와야 한다거나, 이들이 서로 속고 속이는 관계라거나 하는 무조건적 공식까진 없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직 더 많은 수의 인물을 펼쳤을 때 내가 그 이야기를 제대로 다룰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 물리적인 인물의 수는 두명을 넘지 않되 이야기의 크기는 점차 커지고 있다. <애정결핍>은 집안의 부자 관계, <끝까지 간다>는 동종 직장인들의 결투, <터널>은 개인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그린다. 따지자면 <킹덤>과 <킹덤: 아신전>도 인간 군상으로 범위를 넓혔고 이어서 <비공식작전>은 역사와 국제 정세를 그린다.

= 어… 진짜 그러네? 질문을 받아 적다 보니 나도 지금 깨달았다. (웃음) 멋진 해석이다. 앞으로 어디 가면 이렇게 얘기하고 다녀야겠다. 음… 이제 그럼 다음 영화에선 우주나 뭐 멀티버스로 가야 할 것 같은데. (웃음) 이런 흐름을 완전히 의도하진 않았다. 다만 <비공식작전>이 영화로는 4편, 시리즈물 포함하면 7번째 작품인데 10번째 작품쯤 가면 내가 걸어온 궤를 정리하고 싶다는 마음은 늘 있다. 나도 그때의 내가 궁금한데 그 단서를 얻은 것 같다. 고맙다. 다만 다음으로 나아가려면 몇년이 걸릴지 모르겠고, 투자받을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비공식작전>에 많은 게 걸려 있다. (웃음)

- <비공식작전>은 군사정권 시절의 8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하며 당시의 시대상이 명백하게 반영돼 있다.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이유는.

= 오재석 서기관(실존 인물 도재승 서기관)이 당했던 고충이 단지 한국이라는 국가, 당시 한국의 시대 상황만으로 일어난 사건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복잡했던 중동 지역의 내전 상황, 범죄 집단의 개입이 직접적인 동기다. 그러나 그분의 상황을 더 힘들게 만든 요인은 당시 한국의 폭력성과 어둠이다. 어설프게 공리적인 판단들, 전체주의적인 발상을 위해 까짓것 하나의 생명쯤은 존중하지 않는 시선이 상황을 악화한 것이다. 이런 부분을 영화에서도 잘 조명해보려 했다.

꿈을 좇아간 그곳엔

- 민준과 판수의 최종 지향점은 미국이다. 이 역시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듯하다.

= 지금이야 아메리칸드림 같은 건 없지 않나. 최소한 한국에선 말이다. 팍스 아메리카나도 이제는 없어진 판국이니까. 반면 80년대엔 누구나 아메리칸드림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실재했었는지조차 분명하진 않다. 헛된 꿈이었을 수도 있다. 이들이 좇는 그 꿈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도 중요하게 다뤄보고 싶었다.

- 편집의 간결함이 돋보인다. 예를 들어 민준과 판수가 대낮의 평야 위에서 싸우는 구체적 액션을 과감히 생략하고, 곧바로 자동차에 탄 둘의 모습으로 전환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 콘티 때부터 단 1초의 지루함도 두지 않겠단 가치관을 전제했다. 물론 관객에 따라선 10분을 지루하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 (웃음) 질문에서 언급한 점프컷처럼 제아무리 그사이의 서사가 많이 간추려졌더라도 인물들의 감정이 충분히 연결된다면 무리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끝까지 간다>의 컷수가 2322컷이었고 <비공식작전>은 2836컷일 거다. 이중 단 하나의 연결도 허투루 하지 말자는 신념으로 임했다.

- 민준과 판수의 감정을 이어가기 위해선 배우들의 호연을 믿어야 했겠다.

= 글보다 위대한 배우의 얼굴이 있다. <비공식작전>을 찍으면서 하정우, 주지훈 배우의 연기를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더라. 족히 시나리오 2장 분량 정도는 표정 한번으로 대체할 만한 능력을 느꼈다. 그래서 나도 예상치 못한 감정을 포착하기 위해 콘티에 없던 컷을 현장에서 급히 찍을 때도 있었다. 영화 끝부분에 민준이 판수를 바라보는 장면을 찍던 중엔 감탄하며 하정우 배우에게 연기 비결을 물었다. 영업 비밀이라면서 안 알려주더라. (웃음)

- 모로코 현지에서 70회차 이상을 촬영했다. 가장 험난했던 기억은 무엇인가.

= 보통 모로코를 떠올리면 어마어마하게 아름답고 뜨거운 태양이 생각날 거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더라. (웃음) 하필 우기였던 터라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햇빛을 기다리는 게 우리의 일상이었다. 조명감독이 온종일 구름을 보면서 “스탠바이 1초 전!”을 외치면 전 제작진, 연기자가 급히 촬영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다들 진이 빠질 법했다. 그런데 현지 인심의 덕을 많이 봤다. 워낙 현지 헌팅과 촬영이 많았던 터라 동네 주민들과도 친밀해졌는데, 촬영 마지막 날엔 마을 잔치까지 열어주더라. 제작진은 거기서 모두 부둥켜안고 울고불고…. 요즘 겪기 드문, 정말 정 넘치는 촬영 현장이었다.

모로코의 골목 사이를 누빈 카 체이싱

21회차. 김성훈 감독이 5분40초 분량의 특정 카 체이싱 장면을 찍기 위해 할애한 시간이다. 촬영은 모로코의 탕헤르, 카사블랑카, 마라케시를 돌아다니면서 진행됐다. 전체적인 지향점은 성룡의 코미디 액션처럼 좁은 지형지물을 이용한, 아기자기한 액션이었다. “<분노의 질주>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카 체이싱을 보고 온 관객에게 <비공식작전>만의 미덕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에 시나리오 단계부터 차들이 골목에서 갇히고 끼고 쫓기는 구도가 설정됐다. “도심의 골목 안에선 50km/s로 달려도 충분히 급박한 추격전을 만들 수 있고, 이야기의 절박함을 영리하게 살릴 수 있다. 반면에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속의 드넓은 황야에서 차들이 50km/s로 달리면 얼마나 어이없겠나. 영화적인 관점에서 속도의 상대성을 상황에 맞게 잘 써야 한다.”

사진제공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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