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이주현 편집장] 스크롤 내리거나, 스크린 향하거나
2023-08-11
글 : 이주현

디즈니+의 대작 시리즈 <무빙>이 8월9일 공개됐다. 시리즈를 미리 본 기자들은 하나같이 재미를 보장했다. 뒤늦게 강풀 작가의 원작 웹툰을 찾아봤다. 역시, 괜히 누적 조회수가 2억뷰에 이르는 메가 히트작이 아니었다. 초반부, 아기 봉석에게 공중부양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부모 미현과 두식(영화에선 한효주와 조인성이 연기하는 인물들)이 방에 그물을 쳐놓고 아기를 재우는 컷에서부터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수면 중 아기가 천장에 부딪힐까 싶어 젊은 부모는 방 안에 그물을 쳤고, 그물에 걸린 아기는 곤히 잠든 엄마와 아빠를 공중에서 행복하게 내려다본다. 초능력 아기의 시선 아래, 비범한 사랑을 품은 보통의 존재들이 잠들어 있다. 아기의 공중 시점으로 색다른 앵글을 만들어낸 것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의 너르고 따스한 시선 덕에 마음이 덩달아 두둥실 떠오르는 듯했다. 특별한 신체능력을 지닌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히어로물이니 분명 폭력을 동반한 갈등의 서사가 이어지겠지만, 사려 깊은 마음과 관계를 다루는 작품일 거라는 믿음이 샘솟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스크롤을 내렸다.

<씨네21> 1419호 특집은 영화 및 시리즈 감독과 원작 웹툰 작가의 대담으로 꾸렸다. <무빙>의 박인제 감독과 원작자이자 시리즈 각본가로 참여한 강풀 작가,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엄태화 감독과 원작 웹툰의 김숭늉 작가가 만났다. <무빙>과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각각 초능력과 재난이라는 소재를 끌어와 가족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무빙>이 인간의 선한 본성에 집중한다면,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인간의 이기적 본성과 인간성 상실을 보여준다.

<무빙>의 강풀 작가는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결국 나와 가족이라고 하는 작은 우주를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막연하게 착한 사람들이 이기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전부다. 과정이 힘겨워도 끝내 더 나아지는 세상이 보고 싶다.” <무빙>은 소중한 것을 지키는 과정에서 “괴물이 아닌 히어로”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반면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영웅이 되려다 괴물이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숭늉 작가와 엄태화 감독은 ‘가짜 희망’을 경계한다. 엄태화 감독은 말한다. “(대재난의 상황에 처한) 여러 인물을 떠올리다 보니 선과 악의 경계가 점차 흐릿해졌다.” “재난영화에 나오는 정의롭고 이타적인 캐릭터는 너무 답답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막연한 희망을 주입하는 대신 “실현 가능한 희망”을 얘기하는 것으로 디스토피아의 기적을 이야기한다.

각자 나름의 콘텐츠 취향이 있겠지만, 돌아오는 주말엔 <무빙>과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원작과 영화/시리즈를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다. 대담에 참여해준 강풀, 김숭늉 작가에게 지면을 빌려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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