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춤>은 이누도 잇신 감독의 첫 다큐멘터리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메종 드 히미코> 등 국내에서도 호평받은 극영화를 연출해온 그가 뒤늦게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건 친애하는 동료 다나카 민의 춤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다. 배우이자 농부이자 댄서인 다나카 민은 1966년 솔로 활동을 시작해 1978년 파리 데뷔 이후 전세계 아티스트와 다수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해왔다. ‘장소의 춤’이라고 불러 마땅한 다나카 민의 작업은 포르투갈, 파리, 도쿄, 후쿠시마, 히로시마 등 여러 장소에서 유일무이한 형태로 피어난다. 한 예술가의 육체의 궤적을 성실히 담은 이누도 잇신 감독의 카메라에서 점점 희미해져 가는 기록의 가치, 영화의 본질을 발견한다.
- 처음으로 다큐멘터리에 도전했다.
= 실은 다큐멘터리를 찍으려 던 건 아니고 다나카 민을 카메라에 담으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가 됐다. 솔직히 이걸 다큐멘터리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 차라리 다나카 민의 춤의 궤적을 따라간 기록에 가깝다. 아니면 ‘이름 없는 춤’이라는 이름의 영상 공연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 다나카 민과는 언제부터 인연을 맺었나.
=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를 처음 보고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당시 그는 전문 배우가 아니었고 단 한편의 영화에 짧게 출연했는데 동작 하나, 손짓 하나까지 누구보다 존재감이 있었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따로 만났다. 스스로 댄서라고 소개하며 야마나 시현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도 했다. 이후에 <메종 드 히미코> 때 출연을 간청해서 함께할 수 있었다.
- 다나카 민은 농부이자 댄서이자 배우지만 결국 댄서라는 정체성이 핵심인 듯 보인다.
= 자기를 소개할 때 늘 춤추는 사람이라고 하니까. 그에게 춤이 어떤 의미인지 물은 적이 있는 데, ‘내가 그 장소에 존재하는 방식’이라고 답했다. 처음 들었을 땐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메종 드 히미코>를 촬영하면서 알 수 있었다. 복도에서 방으로 들어가는 아무것도 아닌 장면이었는데 무언가 굉장한 컷이 완성됐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다시 찍어도 절대로 재현할 수 없는 에너지랄까. 연출의 통제 바깥에 존재하는 순간이 있다. 말 그대로 다나카 민이 라고 불리는 존재의 육체가 복도 위에 유일한 형태로 새겨진 것이다. 이후로 그의 춤에 매료되어 오랫동안 관객으로서 함께했다.
- 다큐멘터리로 담아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 다나카 민은 포르투갈을 자주 오가면서 공연했다. 그의 권유로 함께 포르투갈을 간 적이 있는데 이왕 거기까지 간 거 그의 춤을 화면에 남기고 싶어졌다. 재현되지 않는 순간들의 기록이기 때문에 더 끌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2017년 포르투갈 산타크루스 해변에서 시작된 춤의 여정을 약 2년간 함께하며 담았다.
- 다나카 민의 춤은 골목길, 해변, 극장, 책방, 갤러리 등 다양한 곳에서 펼쳐지면서도 반복되지 않는다.
= 맞다. 마치 시간에, 공간 위에 존재하는 방식과 닮았다. 다나카 민은 자신의 몸이 농업을 통해 만들어진 몸이라고 말한다. 40살 이후 밭을 일구면서 생긴 근육으로 춤을 춘다는 게 중요하다. 그의 육체에는 그가 지나온 오랜 시간이 깃들어 있고 장소마다 유일한 형태로 펼쳐지는 것이다. <이름 없는 춤>은 육체에 깃든 시간과 공간의 대화에 대한 기록이다. 이걸 꼭 춤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다. 몸짓, 형태, 궤적, 어떤 표현도 가능할 것이다. 내가 담고 싶었던 건 그 시간과 공간의 대화였다.
- ‘이름 없는 춤’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 실제로 그들의 춤에는 이름이 없다. 다나카 민이 좋아하는 프랑스의 철학자가 있었는데 그분에게 자신의 춤을 보여주고 싶어 직접 파리까지 찾아가서 그의 앞에서 춤을 추었다. 그때 그 철학자가 한 말이라고 한다. 정확히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춤을 당신이 계속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다나카 민은 지금도 그의 당부를 지키고 있는 중이다. 요즘엔 세상을 너무 쉽게 설명하고 정의 내리는 것 같다. 정말 중요한 걸 설명하고 전달하는 데는 시간과 과정, 경험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 영화 중간 다나카 민의 내레이션과 어린 시절을 재현한 애니메이션이 들어간다. 이것 역시 다큐멘터리 양식에 얽매이지 않은 연출이다.
= 내레이션은 다나카 민이 쓴 자전적 에세이에 나오는 문구들이다. 그 책에서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많이 서술하고 있는데 자신의 추억을 마치 제3자의 이야기처럼 대상화하고 있는 게 흥미로웠다. 그런 거리감의 연장에서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았다.
- 다큐멘터리는 찍히는 사람만큼 찍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다. 첫 번째 다큐멘터리 이후 당신의 연출 속에서 달라진 것들이 있을까.
= 일단 <이름 없는 춤>은 다나카 민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그가 추는 ‘이름 없는 춤’ 의 110분짜리 공연 영상이라고 생각한다. 짧게는 10분, 길게는 30분까지 춤을 추는데 공간마다 그가 남긴 궤적들이 이어져 또 하나의 춤으로 승화되길 바랐다. 다나카 민의 춤을 찍고 싶었던 거였지만 찍다 보니 다큐멘터리에 흥미가 생겼다. (웃음) 이미 TV다큐멘터리를 세번 정도 찍어 제작 중이다. 그중 하나가 야마다 요지 감독에 대한 다큐멘터리인데 과거 스튜디오 제작 방식에 대한 영화가 될 것 같다.
- 다큐멘터리의 매력은 무엇인가.
= 배우가 없다는 거? (웃음) 물론 나는 배우들과 함께하는 작업도 사랑한다. 훌륭한 배우들과 완벽한 장면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희열,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반면 다큐멘터리는 정해진 것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 좋다.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고 다음 장면이 어떻게 이어질지 모른다는 점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마치 인생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