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즉흥성과 변주로 빼곡한 새로움을!, 세종문화회관 ‘백현진 쑈: 공개방송’ 백현진 연출가
2023-08-24
글 : 이유채
사진 : 백종헌

백현진은 만나면 일단 호칭 정리부터 하게 되는 종합예술가다. 음악가이자 현대미술가이자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의 자기소개대로라면 “연남동 사는 72년생 쥐띠 아저씨”이자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에 관계된 일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이번엔 쇼를 만들었다. <백현진 쑈: 공개방송>(이하 <백현진 쑈>)은 동시대 예술가의 실험적 무대를 선보이는 세종문화회관 여름 시즌 프로그램 ‘싱크 넥스트(Sync Next) 23’의 12개 공연 중 하나다. 9월1일부터 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열리며 백현진이 쇼의 연출, 드라마터그, 미술, 음악 등 거의 모든 것을 맡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싱크 넥스트에 참여한 그는 이번 공연이 “지금껏 듣지도 보지도 못한 쇼”가 될 거라고 장담했다.

- 어떤 장르의 쇼인가.

= 알 수 없다. 장르라는 건 레퍼런스가 있다는 뜻인데 원래 레퍼런스 없이 일하기 때문이다. 세종측으로부터 지난해 공연(<은미와 영규와 현진>) 때와 달리 올해는 극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는데, 극은 좀 부담스러워 쇼를 해보겠다고 했다. 그저 내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걸 만들 요량으로 시작했다. 내가 믿는 스탭들과 무용수, 배우, 음악가, 코미디언 등의 퍼포머들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나 메타포 같은 것도 없다. 그런 게 없어야 관객이 자기 마음대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구조적으로 전반 80분은 짧으면 2분, 길면 7~8분짜리 유튜브 쇼츠 20개가 돌아간다고 보면 되고 후반 20분은 내가 보컬로 있는 프로젝트 밴드 ‘벡현진씨(Bek Hyunjin C, 기타 이태훈, 드럼 김다빈, 색소폰 김오키, 콘트라베이스 전제곤, 키보드·신시사이저 진수영, 트럼펫 브라이언 신)’의 연주로 채워진다.

- 전반부 퍼포머로 배우 김고은, 김선영, 문상훈, 한예리, 뮤지션 장기하와 Y2K92가 참여한다.

= 다하면 20명이 좀 넘는다. 직접 전화 돌리고 누굴 통하기도 하면서 지금 같은 팀이 꾸려졌다. 김고은씨와는 내가 <은교>에 카메오로 출연하고 <변산>에서 고은씨의 테마곡을 쓰고 부르면서 연이 생겼다. 한예리씨와는 독립영화하는 사람들과 한창 어울리던 2010년쯤부터, 김선영씨와는 2004년 단편 <열애기>에서 부부로 나오면서 알고 지냈다. 같은 동네 사람 장기하씨와는 이번 기회에 같이 일해보고 싶었다. Y2K92에게는 그분들의 클럽 공연이 좋아서, 문상훈씨에게는 그분이 날 재밌어 한다는 얘길 들었고 나도 상훈씨에게 코미디언으로서 호감이 있어 연락드렸다. 김고은씨는 꽤 긴 독백을, 김선영씨는 무언의 퍼포먼스를, 한예리씨는 립싱크 공연을, 문상훈씨는 나와 토크쇼를, 장기하씨와 Y2K92는 내가 만든 노래를 한다. 기본적으로는 이분들을 무대 위에서 걷게 할 거다. 동선만 정해주고 혼자 때로는 함께 말이다. 공연마다 누구는 빨리 뛰고, 누구는 배가 아파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즉흥성과 변주로 빼곡한 쇼가 될 거다.

- <백현진 쑈>의 정체성은 오히려 공개방송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번 공연은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원 작가로 함께 선정됐던 박경근 미디어 아티스트가 촬영해 기록으로 남는다.

= 공개방송에 가본 분들은 아실 거다. 카메라맨이 무대 안으로 들어가고 스탭들이 중간중간 소품을 나르고 하는 모습 말이다. <백현진 쑈>는 그런 현장 풍경을 다 안고 간다. 무대 자체는 많이 비어 있을 거다. 바로 이어질 무대를 위해 치워진 상태처럼 말이다. 관객에 따라 ‘미니멀하다 혹은 낯설다’라고 반응할 수 있다. 박경근 작가 섭외는 내가 경근씨의 영상 다루는 솜씨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직접 부탁해 이뤄졌다. 언제라도 이 작품에 관심이 생긴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도록 추후 플랫폼에 올릴 계획도 있다.

- 백현진은 어떤 상태처럼 느껴진다. 현대미술가인 상태에서 음악가인 상태로 또 배우라는 상태로 이동하는 것 같다. 이런 이동이 어떠한 예열도 없이 즉각적으로 이뤄지나.

= 완전히 그렇다. 거의 실시간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그저께도 김고은씨 독백을 쓰다가 그 자리에서 필요한 음악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조명 디자인 시뮬레이션도 하고, 무대미술도 만들고 한다. 다만 무리는 하지 않는다. 무리하면 즐겁지 않다. 내겐 즐거움이 최우선 가치고, 작업을 오래도록 건강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누굴 만나 조율하는 과정 없이 모든 걸 혼자 운용하는 작업 방식이 속도와 효율성 측면에서 내게 유리하다는 생각이 이번에 선명해졌다. 대신 내가 못 다루는 영역의 경우 그 분야 전문가들에게 일을 전적으로 믿고 맡기는 편이다.

- 앞으로 내놓을 작업물이 많다. 벡현진씨 정규 앨범 《서울식》(Seoul Manner)이 가을쯤, 솔로 프로젝트 ‘Csimplex’ 시리즈의 새 앨범 《오늘의 말》 LP가 연말에 발매될 예정이고, 단편영화 <디 엔드>(2009), <영원한 농담>(2011)과 함께 ‘끝 3부작’으로 묶일 <하루 끝의 끝>은 올해 촬영에 들어가는 걸로 알고 있다.

= 《서울식》과 《오늘의 말》은 예정대로 나올 거다. <하루 끝의 끝>은 생각이 바뀌었다. 최근 한달 사이에 굳이 이걸 3부작으로 엮어서 끝내지 않아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다른 8분짜리 원테이크 동영상을 찍을 거다. 한예리 배우가 나오고 로케이션도 정해졌다. 예리씨 혼자 걷고 뛰고 하는 모습을 자연광을 대단히 잘 찍는 홍경표 촬영감독이 담아줄 거다. 영상은 이번 쇼에서도 틀고 뮤직비디오로도 사용할 예정이다.

- 시집도 나온다. 지난 1월에 한경록 베이시스트, 고아성 배우와 ‘프리티 젠더’라는 밴드를 결성했다는 소식을 알려 활동을 기대하고 있다.

= 자수하자면 시집은 올해 내기로 했다가 한권이 될 만큼의 분량을 다 쓰지 못해 보류 상태다. 공연 끝나고 시간 여유가 생기면 내년쯤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프리티 젠더는… 농담이다, 농담.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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