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소녀 파울라(알린 헬란 부동)는 학교에선 문제아로 낙인 찍혔고, 친구는 동갑내기 소년 아실밖에 없다. 파울라의 엄마는 한국에 살러 가서 가끔씩 영상통화를 할 뿐이고, 생물학자인 아빠 조셉(피네건 올드필드)은 알 수 없는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다. 여름이 시작되기 직전, 학교에서 보낸 경고장 때문에 시무룩해진 파울라를 위해 조셉이 서프라이즈를 준비한다. 외딴 숲속, 호수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알록달록 그림 같은 집에서 단둘이 여름방학을 보낼 프로젝트를 준비한 것. 그런데 도착한 날 저녁, 조셉은 호수에서 보트를 타고 집 주변을 맴도는 의문의 남자 빌(오세안)을 발견한다. 빌은 누가 봐도 험악한 인상에 가수 밥 말리 뺨치는 거대한 드레드록스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한 외모의 소유자다. 뭐 이쯤 되면 행복한 여름휴가를 꿈꾸며 떠난 병약한 아빠와 딸이 힘을 합쳐 숲속 기인과 맞서는 대결 구도가 완성된다. 어린 소녀, 신비한 숲, 외딴집, 그리고 그 주변을 맴도는 변장한 짐승/마녀는 <빨간 모자> <헨젤과 그레텔> <백설공주> 등 웬만큼 알려진 동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아니던가.
하지만 ‘내부의 적이 외부의 적보다 무섭다’라는 말이 있다. 안젤라 오토바흐 감독은 이 다분히 우화적인 인물과 이야기 구조를 역이용해 우리에게 익숙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들의 이면에 숨어 있는 잔혹성과 위험성을 파헤친다. 젊고, 잘생기고, 똑똑하고, 유머러스하고, 이해심 많아 보이는 조셉은 숲속 집에 도착한 이후로 전과 다름없는 다정한 얼굴과 말투로 파울라가 좋아하는 것들, 그러니까 그녀의 절친, 그녀의 토끼, 수면, 설탕, 유제품, 스마트폰, 궁극적으로는 외부와의 모든 접촉을 서서히 끊어내면서 딸에게 자연주의적 삶을 강요한다. 조셉에게 설탕은 뇌 흥분제일 뿐이요, 우유는 송아지를 위한 것이며, 절제된 식사와 수면은 건강한 삶을 위한 기본 요소기 때문이다. 딸을 위해 힘들지만 실행해야만 하는 이 일련의 프로그램은 사춘기를 겪는 여자아이의 사생활을 속속들이 침범하면서 아동학대를 넘어 근친상간의 어두운 영역으로 슬쩍 미끄러져 들어간다. 방학이 끝났지만 이 친절한 변태는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사회 복지사(소피 마리 라루리)가 찾아와 홈스쿨링 상황을 체크하지만 그녀도 조셉의 외모와 유창한 언술에 속아 넘어간다. 그리고 숲속 기인 빌은, 조셉이 파울라를 학대하고 있다는 걸 알고도 자기의 신변 안전을 위해 눈감아버린다. 파울라의 이 특별한 여름은 어떻게 끝날까. 안젤라 오토바흐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파울라>는 약간은 서툴지만 <샤이닝>(1980)의 극한의 공포를 생각나게 하는 작품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B급 공포영화가 장악하고 있는 여름 극장가를 특별하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