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물꽃의 전설’ 고희영 감독, 채지애 해녀, 우리가 지켜야 할 제주 바다
2023-08-31
글 : 이우빈
사진 : 최성열

<물숨>(2016)으로 제주도 우도의 해녀들을 살폈던 고희영 감독이 이번엔 제주도 삼달리의 해녀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주인공은 87년 해녀 경력을 지닌 90대의 현순직씨, 서울에서 귀향해 막내 해녀 노릇 중인 40대의 채지애씨다. 세대를 초월해 깊은 유대를 지닌 두 해녀는 전설 속 ‘물꽃’의 광경을 찾아 나서지만, 외려 제주 바다의 황폐화를 마주하게 된다. 고희영 감독은 제주도의 문화와 자연이 소멸하는 과정을 몇십년 넘게 직시해오며 6년여 동안 <물꽃의 전설>을 제작했다. 쉽지 않은 여건 속에서 한국영상위원회 2021년 ‘지역영화 기획개발 및 제작지원’ 사업 제작지원 부문 장편으로 선정돼 창작의 현실적 기반을 보완했다. 막역한 친구가 된 고희영 감독과 채지애씨를 만나 제주 바다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청했다.

- 두분의 첫 만남이 궁금하다.

채지애 내가 일방적으로 접근했다. (웃음) 해녀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고충이나 고민을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 동료 해녀들과는 거의 30, 40년의 나이 차가 나고, 어머니도 해녀 일을 반대했던 터라 의지할 곳이 없었다. 아예 외부에서 해녀에 대한 지식을 찾아보던 중 감독님이 쓰신 책 <물숨>을 읽게 됐다. 마음에 너무 와닿았고 엄마가 왜 해녀 일을 반대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겠더라. 그래서 생전 하지도 않던 SNS를 깔아 감독님께 프러포즈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고희영 지애씨가 날마다 삼달리 바다 풍경이나 잡은 물건(제주 해녀들이 해산물을 칭하는 용어)들, 심지어 아이들 사진까지 보내줬다. <물숨>을 7년 동안 찍었지만 거의 우도에만 상주했기에 성산일출봉쪽에 있는 삼달리 바다는 잘 몰랐다. 지애씨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엄마는 해녀입니다>란 그림책까지 냈다. 제주도에 가면 늘 지애씨를 찍었고, 자연스럽게 <물꽃의 전설>을 만들게 됐다.

- <물숨>이 우도 해녀들의 전반적인 모습을 다룬다면 <물꽃의 전설>은 현순직, 채지애 해녀의 투톱 주연물에 가깝다.

고희영 지애씨가 “물질은 게임 중독 같다. 일을 안 나가면 눈에 막 바다가 아른거린다”라며 눈을 반짝이는 장면이 있다. 너무 신선하고 재밌더라. 몇십년 동안 해녀 일을 한 분들의 완숙함과 달리 이제 막 물에 들어간 해녀의 생생함이 느껴졌다. 그러다 지애씨와 함께 물질을 하는 현순직 해녀를 만나게 됐고, 그분의 방대한 기억과 역사, 세계를 알게 되면서 주인공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채지애 제주도엔 4·3 사건의 여파로 혼자 사시는 할머니들이 많다. 제주 말로 ‘내무린다’ 라고 하는데, 이런 분들은 대개 사회가 자신들을 홀대한다고 느낀다. 그래서 내 애정 표현에 더 마음을 여신 것 같다.

- <물꽃의 전설>은 해녀뿐 아니라 방언 등 제주도 문화 전반을 아우른다.

고희영 <물꽃의 전설>은 세 가지의 소멸을 다룬다. 해녀, 제주 바다, 그리고 제주어다. 현순직 해녀의 말씨는 거의 100% 제주 고어라고 보면 된다. 제주도 출신인 나조차 대략 80%만 제대로 알아들을 정도다. 제주어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4급 소멸 위기 언어’다. 5단계 중에 ‘아주 심각한 위기’에 해당한다. 이처럼 제주도의 문화나 자연이 점차 사라진다는 안타까움이 <물꽃의 전설>의 저변에 깔려 있다.

- 제주 바다의 오염 상황은 어떻게 체감하나.

최지애 2016년쯤만 해도 하루에 100kg씩 물건을 잡아오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2~3일에 30kg을 수확하는 정도다. 요즘은 내년에 수확하기 위해 성게를 미리 먹잇감 있는 바다에 풀어놓는 ‘비성게’ 작업까지 하고 있다. ‘물마중’ 이라고 해서 다 함께 해녀 동료들의 물건을 끌어주는 풍습이 있다. 그런데 물건이 적어지다 보니 이런 문화도 희미해지고, 상·중·하군으로 나뉘었던 질서도 사라지고 있다.

- 바닷속에서 자취를 감춘 ‘물꽃’을 영화의 주요 소재로 다뤘다.

고희영 현순직 해녀 집에서 잠을 잔 적이 있는데, 순직 삼춘(성별에 무관하게 웃어른을 지칭하는 제주 방언.-편집자)이 우두커니 앉아 먼 바깥을 보면서 “저쪽에 가면 내가 늘 가는 바다가 있는데 거기 있는 물꽃이 그렇게 아름답다”란 말씀을 하시는 거다. 해양생물도감을 뒤지고 한국해양수산연구원의 연구원에게 도움을 구하면서 물꽃이 ‘밤수지맨드라미’라는 멸종위기의 생물임을 알게 됐다.

채지애 바다 지도는 며느리나 딸에게도 쉽게 안 가르쳐주는 엄청난 지식이지만, 순직 삼춘에게 물꽃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아주 예쁜 물꽃이 있고 그걸 기록해야겠다는 생각까진 못했다. 물꽃이 있다는 ‘들물여’에 가면 이만한(하박을 가리키며) 전복이 있고 물건도 엄청 많다는 얘기에만 홀렸는데⋯ 역시 감독님은 생각이 다르시더라.

- 영화는 이제 들물여에도 해산물이 많지 않은 상황을 보여준다.

채지애 솔직히 화가 났다. 너무 가보고 싶었고, 꿈꾸던 곳이었는데 막상 가보니 아무것도 없으니까 지금의 현실이 더 갑갑하더라.

고희영 그러니 <물꽃의 전설>을 단순히 제주 해녀들의 이야기나 그들을 예찬하는 이야기로 국한하고 싶지 않다. 제주 바다의 황폐화에 다같이 경각심을 지니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계기로 삼고 싶다. 우리나라 사람 중 제주도 바다, 그 물 한 방울의 은혜를 입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본다.

- 영화의 첫숏이 생각난다. 현순직 해녀가 화면 전경에서 말하고 있는데 카메라의 초점은 후경의 바다에 맞춰져 있다.

고희영 첫 장면부터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제주 바다이고, 이 바다를 연결 고리 삼아 사람들이 어떠한 경계나 세대 차이 없이 물벗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 제주에서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기 위한 현실적인 기반은 어떻게 마련했나

고희영 사실 제작비라는 문제 앞에선 창작자로서 맘속에 세웠던 날도 뭉툭해지기 일쑤다. 외지인이 제주 지역의 고유성과 정서에 접근하긴 힘들기에 제작이 더 어렵기도 하다. 다행히 한국영상위원회 2021년 ‘지역영화 기획개발 및 제작지원’ 사업 제작지원 부문 장편, 제주영상 문화산업진흥원의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된 것은 양 날개를 단 느낌이었다. 예산 문제로 삭제했던 시나리오나 촬영 계획을 되살렸고 현순직, 채지애 해녀가 물꽃을 찾아 떠나는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도 찍을 수 있었다. 차기작으로 준비 중인 <사월, 초사흘>은 제주 4·3 사건의 여성 희생자들을 만나는 이야기다. 이 작품 역시 한국영상위원회 2022년 ‘지역영화 기획개발 및 제작지원’ 사업 제작지원 부문 장편으로 선정되면서 큰 동기 부여를 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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