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은 소박하지만 행복한 신혼생활 중이다. 아직 단역 배우인 현수는 임신한 몸으로 직장에 다니며 생계까지 책임지는 수진이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 부부의 유일한 걱정은 현수가 어느 날부터 몽유병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거다. 두 사람은 수면 클리닉을 다니며 치료에 전념해보지만 차도가 없다. 아기가 태어난 후에도 현수의 몽유병이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 수진의 불안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처럼 점차 속도를 더해간다. 극도로 예민해진 수진은 평소 믿지 않았던 무당까지 불러보지만 상황은 악화될 뿐이다.
집과 잠, 가장 편안해야 할 순간이 무너진다. <잠>은 몽유병을 소재로 기이하고 불안한 상황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영화다. 3부 구성으로 이뤄진 영화는 각 파트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색깔로 관객을 혼란에 빠트린다. “누가 들어왔어”라는 잠꼬대로 시작되는 영화는 전형적인 호러 스릴러의 길을 갈 것처럼 보이지만 이내 방향을 튼다. 수면 장애로 곤란을 겪는 초반 신혼부부의 사연은 “둘이 함께하면 극복 못할 문제는 없다”는 문구처럼 호러라기보다는 차라리 알콩달콩한 로맨스 드라마에 무게가 실려 있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면서 분위기는 일변하는데, 칼날처럼 예민해지고 점차 무너져내리는 아내의 모습을 통해 삶이 악몽으로 변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잠>이 진정한 본색을 드러내는 건 3부부터다. 3부에선 앞서 깔아둔 복선을 차분히 회수하며 반전을 시도하는데 충격적인 상상력이 예상치 못한 형태로 관객을 덮친다. 심리 드라마, 컬트 스릴러, 밀실 공포물 등 기시감이 드는 여러 장르의 패턴을 반복하는 와중에 조금씩 자신만의 개성을 확장해나간다. 특히 한국형 오컬트의 색을 더해 독특한 지점까지 몰고 가는 의외의 저력을 발휘하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평가가 갈릴 수 있다. 개성을 잃지 않은 상상력이 돋보이는 가운데 전반적으론 다소 엉성하고 헐거운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배우들의 안정되고 흡인력 있는 연기는 종종 구멍이 난 전개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극에 몰입할 수 있는 또 다른 동력이 된다. 유재선 감독의 장편 데뷔 영화로 제76회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