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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드라마톡] ‘힙하게’
2023-09-08
글 : 유선주 (칼럼니스트)

검사, 변호사 판이던 드라마에 초능력자들이 출몰하는 요즈음이다. 생업과 악귀 소탕을 겸하는 tvN <경이로운 소문>이 새 시즌으로 돌아왔고, 디즈니+ <무빙>은 음지의 공무원으로 일하던 능력자들이 다음 세대를 지키려 골목의 자영업자로 살아간다. tvN <소용없어 거짓말>에서 거짓을 판독하는 주인공의 능력은 뱃속 아이에게 먹고 살 재주를 내려주시되 돈 많이 드는 예체능 계열은 피하게 해달라는 엄마의 기원으로 인한 것이었다. 특수한 능력을 지닌 주인공과 접점을 만드는 데 생계의 구체화는 유용하고 JTBC <힙하게> 역시 그렇다. 아파트가 들어서면 반려 동물 진료가 늘어나리라 기대했던 수의사 봉예분(한지민)은 개발은 소문뿐인 충청도 무진에서 ‘소, 돼지 전문’ 전단지를 돌리고 광어양식장으로 출장도 간다. 예분의 능력은 출산을 앞둔 소금실이의 엉덩이를 살피다 축사에 유성우가 떨어지며 생겨났다. 예분은 손으로 엉덩이를 만지면 대상의 기억을 볼 수 있다. 방영 중인 다른 초능력 드라마들과 비교하면 예분의 능력은 황당하고 얄궂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극 초반에 가장 진지하게 논리를 펴는 지점도 예분의 능력이며, 코미디가 발생하는 지점도 ‘손과 엉덩이가 접촉해야 한다’는 명제를 반복 실험을 거쳐 전제와 조건을 검증하는 과정에 있다. 고양이와 강아지, 동네 닭 등을 테스트하며 ‘엉덩이’ 부위를 만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참에 동네 어민이 잡아 온 우럭을 엉겁결에 받아든 예분에게 우럭의 기억이 재생되면, 우리는 예분의 손이 미끄러져 닿은 거기가 우럭의 엉덩이라고, 우럭이 엉덩이가 있다고 추론하게 된다. 무진으로 좌천돼 서울 복귀를 갈망하는 강력계 형사 문장열(이민기)이 예분의 능력을 수사에 이용하면서 그의 눈에 엉덩이는 ‘살아 있는 블랙박스’가 되니, 동네 잡다한 사건부터 연쇄살인까지 폭넓은 공조가 펼쳐진다. 촘촘한 웃음과 함께.

CHECK POINT

엉덩이를 짚어 기억을 읽은 내용이 아랍어라 도움이 안되겠다는 예분에게 장열은 당장 아랍어를 배우라 요구한다. 아랍어 과외까지 받으며 간신히 들리는 대로 한글로 옮기는 수준에 이른 예분은 다급한 상황에서 귀가 트이고 말문이 열리자 기뻐한다. 초능력이 있어도, 간절한 복수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 최근의 한국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복수의 절차는 교원 자격증을 따고 바둑을 배우는 것이었고 <마스크걸>에서 아들이 죽고 원념으로 불타오르는 김경자(염혜란)도 복수의 막바지에서 깨알 글씨의 캠코더 사용법을 익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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