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역 건너편 골목에 있는 교동시장은 1960년대생인 우리 엄마가 젊은 시절 친구들과 함께 놀던, 지역 최고의 번화가였다. 그러나 90년대, 도시의 중심이 한일극장이 있는 동성로 2가로 완전히 옮겨가자 교동시장 부근은 영업을 중단한 단관 극장과 오래된 금은방, 철거하지 못한 백화점만 남았고, 이내 그곳은 외국인 노동자들과 노인들만 거니는 동네의 외진 그림자가 되었다.
도시의 모습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한국인이라면 모두 안다. 위와 같은 히스토리를 가진 골목들이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70년대와 80년대의 흔적이 적당한 낭만으로 남아 있으면서, 90년대와 2000년대에 받은 외면으로 자릿세가 낮은 모든 골목들. 교동시장 골목 역시 2010년대를 거치며 ‘O리단길’ 혹은 ‘제2의 성수동’ 같은 장소가 되고 말았다. 단관 극장, 금은방, 백화점이 있던 오래된 골목에 어느새 에스프레소에 레몬을 넣어주는 카페, 레코드판과 향초를 함께 파는 잡화점, 머리에 포마드를 발라주는 바버숍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고, 그 상점들이 내뿜는 ‘쿨’한 공기는 모기향처럼 대구의 젊은 힙스터들과 관광객들을 수시로 끌어들였다.
2023년 7월. 나는 지금 교동을 걷고 있다. 골목 어귀에서부터 느껴지는 젊음의 기운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어떤 가게는 간판이 없고, 어떤 가게는 문이 없는데 사람들은 줄을 길게 섰다. 나는 걸으며 줄 선 사람들을 바라본다. 여자들은 모두 뉴진스처럼 옷을 입었고, 남자들은 모두 유승준 스타일을 하고 있다. 2020년대와 90년대가 공존하는 ‘MZ존’인 것이다. 에스프레소를 연거푸 세잔을 마셔서인지 심장이 미친 듯이 빨리 뛴다. 걷고 또 걸으니 ‘무궁화 백화점’과 ‘경상감영공원’이 보인다. 여기서부턴 ‘실버존’이다. 성인 카바레 앞, 팔에 장미 문신을 한 할아버지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고, 공원 어귀 벤치엔 키스하는 노인 커플과 그들을 바라보며 <퀴사스, 퀴사스, 퀴사스>를 부르는 할아버지가 있다. 이 좁고 긴 골목을 지날 때 나는 마치 한 ‘인싸’의 일생을 통과하는 느낌을 받고 말았다. 힙스터의 찬란한 생애에 잘못 방류된 불순물의 모습으로….
그렇게 지친 몸과 마음으로 골목을 벗어나려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한 비트의 음악이 내 심장을 움켜쥐었다.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펴보니 음악이 나오는 곳은 배달 오토바이의 스피커다. 사이렌 소리로 시끄러운 전주가 멎자 곧장 날카로운 목소리가 “모두 ‘쩨정신’이 아니야” 하며 귀를 찌른다. 골목을 탈출하던 밀레니얼 ‘아싸’는 순간 ‘이정현’이라는 텔레포트를 만나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정현은 누구인가? 아니, 이정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밀레니얼의 또 다른 이름이자, 세기말의 절망을 광기로 제패한 Y2K의 수호신, 21세기에 대한 불안과 기대를 굿판으로 털어내던 테크노 무당. 베를린 클럽에 가도 영혼이 울리지 않는 이유는 나의 테크노가 이정현이기 때문이요, 세상을 타도하는 트랩 뮤직을 들어도 피가 끓지 않는 이유는 나의 전사는 오직 이정현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느 누가 마이크를 새끼손가락에 꽂고 세상을 향해 저주를 퍼붓겠는가, 어느 누가 부채에 그려진 눈으로 세상을 노려보려 하겠는가, 어느 누가 ‘저그족’의 익룡 날개를 달고 세상에 침을 뱉겠는가, 어느 누가 클레오파트라의 금붙이를 입고 세상에 제를 지내듯 춤을 추겠는가!
‘사실이 아니길 믿고 싶었’지만, 시대는 야속하게 저물었다. ‘이제 남은 건 눈물과 절망’뿐이라며 푸념을 하고 있는데 한바탕 살풀이를 하고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내게 와 줘!’를 외친다. 외계 행성에서 왔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 <와호장룡>을 연상케 하는 동양풍 의상과 헤어스타일, 꺾고 멈추기를 반복하는 다소 기괴한 춤, 떠나간 연인에게 저주를 퍼붓는 무서운 노랫말…. 그의 데뷔곡 <와>는 시대가 바뀌며 발생하는 혼란을 연쇄적인 충격요법을 통해 수습했고, 나는 그의 춤과 노래를 통해 비로소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종말이 올 거라는 예언보다 내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걸리는 게 더 두려웠던 1999년의 불안은 이정현의 등장과 함께 ‘새천년’을 향한 기대감으로 완전히 상쇄된 것이다.
모든 사람에겐 자신만의 음악 역사가 있을 것이다. 첫 번째로 구입한 앨범, 처음으로 반한 가수, 처음으로 외운 노래 가사…. 내게 <와>는 CD를 구매하게 하고, 이정현의 브로마이드를 방에 붙이게 한 나의 ‘첫 K팝’이다. 미련이 무엇인지, 한은 또 무엇인지 모르던 나와 내 친구들은 어깨보다 넓은 비녀를 꽂은 여자의 독기와 광기에 매료되어 새끼손가락에 쥐가 날 때까지 춤을 추고, ‘이제 남은 건 절망뿐’이라 함께 외치며 즐거워했다. ‘MZ존’과 ‘실버존’이 마주 보는 ‘인싸의 길’ 위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며 홀로 착각에 빠진다. 그렇다. 나는 절망을 즐길 수 있는 ‘아싸’로 길러졌으며, 이 도시의 낭만은 나의 고독으로 인해 완성된다. ‘젊은 인싸’와 ‘늙은 인싸’ 모두 자중하며 살라. 당신들의 빛은 나의 어둠에서 탄생한 것이니….
<와>를 귀에 꽂은 나는 당당한 ‘인싸’의 걸음으로 골목을 관광했다. 매일 부수고 다시 짓기를 반복하는 동네. 여긴 10년 뒤엔 또 어떤 모습일까? 이런 도시의 순환을 즐길 수 있어야 진정한 ‘인싸’인데…. 그렇게 2절이 시작되고 외관이 세련된 신상 카페에서 ‘MZ 인싸’들이 우르르 나오며 무겁게 속삭인다. “자리 개불편해. 빨리 집에 가고 싶음.” 아, 그들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너무나 처절해서 오히려 희망적으로 들리는 이 미친 노래를! 이제야 공공장소에서 이어폰을 쓰지 않고 큰 소리로 트로트를 듣는 노인들이 이해된다. 그것은 ‘인싸’, ‘아싸’ 구분 없이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소외감의 표현, ‘다 같이 놀자’라는 구조의 신호. 30년 후 ‘O리단길’에서 ‘인켈효도라디오’로 <와>를 듣는 노인을 발견한다면 새끼손가락을 입에 대고 화음을 넣어주세요. 당신이 ‘인싸’든, ‘아싸’든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흥을 나누는 것만으로 저는 위로를 받을 거예요. 도시라는 공사판에서 서로를 보호하려면 그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