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어파이어’, 고립될 수밖에 없는 재난의 상황을 어떤 태도로 맞이할 것인가
2023-09-13
글 : 조현나

레온(토마스 슈베르트)은 자신의 두 번째 소설을, 펠릭스(랭스턴 위벨)는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기 위해 함께 펠릭스의 별장으로 향한다. 그곳엔 또 다른 손님 나디아(파울라 베어)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머문 흔적이나 벽 너머의 소음 외에 실재하는 나디아가 등장한 건 한참 뒤의 일이다. 글에만 몰두하던 레온에게 바다를 즐기는 펠릭스, 애인과 시끄럽게 사랑을 나누는 나디아의 행동은 시간 낭비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출판사 사장이 레오의 글보다 펠릭스의 사진 작업을 마음에 들어 하고, 식사 자리에서 나디아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레오의 관념은 완전히 뒤바뀐다.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어파이어>는 레온과 펠릭스, 나디아 등 별장에 머무르던 인물들이 산불에 휩싸이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역사 3부작’으로 일컬어진 <바바라> <피닉스> <트랜짓>에 이어 페촐트 감독은 <운디네>로 시작된 ‘원소 3부작’을 <어파이어>를 통해 확장하는 모양새다. 레온과 나디아는 여러 면에서 대척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디아와 달리 레온은 본인의 글에 갇혀 좀체 외부로 시야를 틀지 못하고 그로 인해 주변의 유머와 사랑, 재난, 심지어 죽음조차도 온전히 감지하지 못한다. 고립될 수밖에 없는 재난의 상황을 어떤 태도로 맞이할 것인가. 레온의 인식이 깨어지는 순간 <어파이어>는 한여름의 성장영화가 된다.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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