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국제영화제(이하 베를린영화제) 조직이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지난 7월 섹션 두개를 폐지하고 출품 영화 수도 축소한다는 구조조정 발표에 이어 집행위원장 공석 소식이 들려온다. 예술부문 책임자로 베를린영화제를 이끌고 있는 카를로 카트리안이 사임 의사를 밝혔다. 지난 9월2일 베를린영화제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2024년 이후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독일 문화부가 향후 집행위원장 2인 체제가 아닌 1인 체제로의 전환을 공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카트리안은 1인 체제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을 수 없을 거라고 보았다. 운영 부문 책임을 맡은 공동집행위원장 마리에테 리센벡은 은퇴 연령을 맞아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이미 밝힌 상태다.
카트리안의 사임 소식에 대한 반향은 거세다. 마틴 스코세이지가 폴 슈레이더, 크리스티안 페촐트, 라드 주데, 클레르 드니 등 저명 영화인 400여명의 서명을 담은 공개 서한을 독일 문화부 장관 클라우디아 로트에게 보낸 것이다. 서신은 카트리안을 사임하게 만든 독일 문화부의 처사가 비도덕적이고 적절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담고 있다.
이탈리아 출신 카를로 카트리안은 로카르노국제영화제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베를린영화제 예술부문 집행위원장으로 위촉되었다. 그는 과묵하고 내성적이며 영화를 고르는 뛰어난 감각을 지녔다고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잘 넘기고 영화제의 양적 측면보다 질적 측면에 방점을 두고 지난 3년간 베를린 영화제를 이끈 이들에게 돌아온 평가는 뜨뜻미지근했다. 그리고 다시 1인 체제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는 소식에, 새로운 구조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보겠다고 했던 카트리안이 결국 사임 의사를 밝힌 것은 독일 문화부와의 협상이 실패로 돌아간 것을 시사한다.
할리우드 스타의 방문에 치중하여 영화제 내실이 부족했다는 자체 평가 이후 2019년부터 베를린영화제는 쇄신을 위해 예술 부문과 나머지 행정, 운영 부문을 나누는 시도를 했다. 그런데 겨우 3년 후 독일 문화부는 집행위원장 1인 체제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2인 체제가 서로 화합하지 못했다는 평가 때문이다. 독일 문화부는 경제적 협상, 운영, 영화에 대한 뛰어난 식견을 모두 갖춘 이를 찾아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독일 문화부는 올해 말까지 베를린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찾겠다고 발표했다. 일간 <쥐트도 이체 차이퉁>은 “베를린영화제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머리기사로 물음표를 던졌고 일간 <디벨트>는 칼럼에서 독일 문화부에 “베를린영화제를 구하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