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출장은 유독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커피를 들이부어도 금세 의식이 넘어가 꾸벅꾸벅대다가 그대로 꼬꾸라질 것만 같았다. 걷고 있는 내 발에 닿는 것이 땅인지 매트리스인지 모를 감각으로 무대 인사를 하러 시네테카에 갔다. 행사까지 시간이 떠서 다른 팀원들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고 나는 혼자 극장 앞 벤치에 앉아 눈을 감았다. 강렬한 햇볕에 눈을 감아도 여전히 눈이 부셨다. 선선한 바람에 머리카락이 자꾸 얼굴을 간지럽혔다. 그렇게 졸다 보니 시간이 다 되었다. 조용한 관객들은 이 선선한 바람처럼 극장에 흘러들어갔나.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기에 분명 아주 적은 관객이 들었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적은 관객이지만 깊은 인사를 나누자 마음을 다잡았다. 프로그래머와도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상영관에 들어섰는데 이런. 단 한명의 관객도 있지 않았다. 텅 비어 있는 극장에 당황스러운 기시감이 들었다. 아주 오래도록 꾸었던 악몽의 실물을 이렇게 마주하다니. 에이, 아닐 거야. 애석하게도 시계는 정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장거리 비행의 수고에 대한 억울함보다 애써 상영 기회를 준 극장측에 대한 부끄러움과 미안함에 아찔해져 눈을 질끈 감았다. 하하하 이거 꿈인가요? 현실이 맞나요? 넋 나간 너스레를 떨고 있자 코디네이터님께서 나를 안심시켰다. 이곳 멕시코는 원래 이렇다고. 제시간에 오지 않는다고. 상영관 밖으로 나가자 정말 다행스럽게도 조금씩 관객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그렇게 상영시간 30분 뒤에야 영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약속과 시간에 대한 개념이 전무하여 학창 시절부터 ‘자.영’, 즉 자유로운 영혼이라 불리던 친언니 김세영에게 멕시코로의 이주를 기필코 추천하리라 다짐했다.
멕시코시티에서 몬테레이로 이동했다. 멕시코시티에서 이미 멕시코 사람들의 성정을 파악했기에 다섯시 상영을 여덟시 상영으로 착각한 프로그램팀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상영 전 감독과 영화를 소개하기로 한 프로그래머가 행사를 깜빡 잊고 극장에 나타나지 않았을 때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스크린의 양쪽 벽면에 스테인드글라스가 줄지어 배치되어 있는 것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에는 후반부 암전 장면이 있기에 반드시 빛이 차단된 공간에서 관람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앞뒤 극장 문을 열고 상영이 진행되어 외부와 내부의 사운드가 섞인 상태로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나에게 아주 웃기고 즐겁고 이상하게 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 또한 어느 순간 아랑곳하지 않고 영화의 사운드와 벌레 소리를 들으며 복도에서 보통의 말소리로 주재원 직원분과 멕시코 생활에 대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상영하는 내내 활짝 열린 극장 문을 통해 영화가 극장 밖으로, 일상이 극장 안으로 흐르고 있었다. 지금 이곳 관객들의 기억 속에 이 영화는 색색으로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 극장 밖의 한국말들, 풀벌레 소리와 함께 남겠지.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까지도 모든 것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그 순탄하지 않음이 오히려 너그러움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너그러운 관람의 상태를 잃은 지 오래되었다는 자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영화를 볼 때도 영화를 제공할 때도 관객이 영화와 청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환경에 굉장히 집착하게 되었다. 많은 영화감독들이 그렇겠지만 영화제에서 영화를 상영하면서 반드시 사운드와 스크린 기술 체크를 해왔다. 소수의 스크린을 조정하면 끝인 영화제 때는 얼추 기준점을 맞출 수 있었지만 영화가 개봉하면서는 다른 차원으로 들어섰다. 전국의 수많은 극장에 맞춰 모든 사운드와 영화의 색을 조정할 수 없기 때문에 발만 동동 구르며 스트레스만 잔뜩 받곤 했다. 멕시코에서 이렇게 상영 내내 열린 극장 문을 바라보다 보니 뭘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았나 싶었다.
초등학생 때는 찜질방 영화관에서 영화를 자주 봤다. 당시 찜질방은 전국적인 붐이었고 나와 친구들은 찜질방을 주 놀이터로 삼았다. 심지어 찜질방 노래자랑에 나가서 상으로 크레파스도 받았었다. 찜질방 내의 여러 코스 중 우리가 선호한 것은 찜질보다는 다른 것들이었다. 바로 찜질방 책장에서 19세 딱지가 붙은 야한 만화책 몰래 꺼내 보기와 찜질방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찜질방 영화관에서 틀어주는 영화들은 <아이덴티티>, <큐브> 시리즈, <발렌타인>, <드라큐라2>, <데드캠프>, <반헬싱> 등 왜인지 몰라도 공포호러 장르의 B급 무비들이 대다수였다. 찜질 후 달궈진 몸으로 매트를 질질 끌고 영화관에 들어가 식혜와 계란을 먹으며 영화를 보곤 했는데 급속도로 싸늘해지는 몸의 온도가 영화의 공포를 더욱 효과적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말이 영화관이지 상영 환경은 말이 되지 않았다. 왔다 갔다 벌컥벌컥 열리던 문은 종종 그대로 열린 상태가 되기도 했는데 덕분에 홀의 텔레비전 소리와 괴성들이 섞여 들어왔다. 코 고는 사람, 떠드는 사람, 큰 소리로 지인을 찾는 사람 등 영화관 내부의 소음도 뒤지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나는 영화를 보는 데 그 모든 것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 지금은 영화관에서 복도쪽으로 앉게 되는 날이면 계단 비상등이 신경 쓰여 영화에 집중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예민해졌다. 그사이 직업 영화인이 되었기 때문에 영화 관람 태도의 변화는 물론 어느 정도 당연하기는 하지만 멕시코와 찜질방 영화관에서의 너그러움을 떠올리다 보니 스스로 영화를 보는 것, 그리고 영화 자체에 대해 너무 강박적인 것이 아닐까 걱정되었다.
내가 아주 오랜 시간 갖고 있는 고민 중 하나는 쓰는 시나리오들이 자연스럽지가 않고 딱딱하고 경직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영화뿐만이 아니고 삶에 대해서도 스스로 통제력을 가하고 있기 때문에 그로부터 밴 성격인 것 같다. 삶과 영화에 대해 내가 어떤 너그러움의 상태를 유지하려 했다면 혹은 너그러운 환경에 놓여왔다면 내가 쓰는 글은 아주 다른 빛을 띠었을 수도 있었겠다고 열린 극장 문을 통해 헝가리무곡 리코더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그러다가 아 이런 곳에서 자라왔다면 난 분명 글을 쓰지 않고 길에서 춤을 추고 묘기를 부렸을 거라고 결론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