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거래’ 이정곤 감독, 청년 세대의 고민과 애환을 담고 싶었다
2023-10-19
글 : 송경원
사진 : 백종헌

고교 야구 입시생들의 성장담을 세밀한 터치로 그려낸 <낫아웃>의 이정곤 감독이 이번엔 한뼘 더 자란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다만 그 방식이 자못 과격하고 기발하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거래>는 우발적으로 친구를 납치한 두 젊은이의 일탈을 따라간다. 납치물의 틀을 빌려왔지만 <거래>는 청소년 이상 어른 미만의 청춘들의 미묘하고 아슬아슬한 관계가 핵심이다. 곤경에 처한 청춘들이 벌이는 납치극은 해프닝을 넘어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그럴수록 긴장과 스릴의 쾌감도 증폭된다. 여기에 한국 사회 청춘들이 마주하는 계급의 벽과 현실의 잔인함을 사실적으로 녹여내 공감대를 높였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인질, 내일의 공범이 되는 휘몰아치는 전개의 무대 뒷이야기를 전한다.

- 동명의 웹툰을 시리즈화했다.

= <낫아웃> 개봉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작사 플레이리스트에서 연락이 왔다. 웹툰 <거래>를 바탕으로 한 시리즈 연출 제안이었는데 당시엔 간단한 트리트먼트 정도였음에도 굉장한 흡인력이 있다고 느꼈다. 갓 성인이 된 청년들이 범죄에 휘말려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는 설정 자체가 호감이 갔다. 아마도 인물들의 나이대가 나와 비슷해서 그런 감성을 잘 표현해주리라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다.

- 짤막한 아이디어와 컨셉이 핵심이었던 원작 웹툰을 8화에 이르는 이야기로 키웠다.

= 쉽지 않았다. 단편에 가까운 아이디어라서 새롭게 추가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어디까지 확장할지에 대한 회의가 이어졌고 약간의 발상의 전환으로 인질이 납치범들과 공범이 되면 재밌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걸 중심 동력 삼아 에피소드와 캐릭터에 살을 붙여나가다보니 준성(유승호), 재효(김동휘), 민우(유수빈) 세명의 친구뿐 아니라 민우의 가족, 옆방의 차수안(이주영) 등 주변까지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확장됐다.

- 납치극 자체는 드문 소재가 아니지만 인질과 납치범이 한편이 된다는 아이디어가 예측 불허의 재미를 더한다.

= 납치극이 뼈대이지만 그 속에 청년 세대의 고민과 애환을 담고 싶었다. 재효의 대사 중 “우리 같은 놈들은 10년이 지나도 절대 이 돈 못 모은다”는 일갈이 있는데 그게 이들의 동기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세 친구는 어릴 적에는 동창이란 관계로 평등해 보이지만 점차 사회로 나갈 수록 철저하게 나뉜 계급을 실감한다. 세 친구의 관계는 납치범과 인질이란 상황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변화한다. 가장 약한 존재처럼 보이던 민우가 실은 관계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는 것에서 오는 아이러니를 강조하고 싶었다. <거래>는 먹이사슬 같은 계급 관계를 끊임없이 전복시키는 이야기다.

- 준성, 재효, 민우 사이의 삼각형의 계급 구도가 끊임없이 역전되면서 은폐된 것들이 드러나는 구성이다.

= 준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순간 피카레스크 장르 (도덕적 결함이 있는 악역이 주인공인 문학 장르)처럼 보인다. 초반에는 시청자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주인공에게 마음을 줄 수 있는 요소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했다. 준성은 납치범이지만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상황에 휩쓸려가는 인물에 가깝다. 점점 악화되는 상황과 주변 인물들이 준성을 끊임없이 흔들지만 그럴수록 준성은 중심을 단단히 잡은 채 결코 어떤 선을 넘지 않는다. 그런 반듯함이 필요했기에 유승호 배우가 적격이었다. 반면 재효는 가장 고민이 많았던 캐릭터다. 사실상 납치 사건의 불꽃을 댕기는 인물이고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입장이다.

도박빚까지 있는 준성이 계급적으로 가장 밑바닥에 있는 흙수저라면 재효는 의대생으로서 계급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아슬아슬한 입장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겉으로는 강한 척 하지만 벼랑 끝까지 내몰린 인물이 어떻게 광기에 휩싸이고 날카롭게 부서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김동휘 배우의 눈빛에서 그런 날카로움을 발견했다.

- 그런 의미에서 계급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부잣집 호구 민우는 극적인 변화가 많다. 빤한 것 같다가도 순식간에 반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 맞다. 우리 작품 속 조커 같은 역할이다. 얼핏 우유부단해 보이지만 실은 설계자처럼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시야를 가지고 있다. 그건 계급의 꼭대기에서 터득한 기질이라고 생각했다. 제일 고민이 많았던 캐스팅인데 의외성을 주고 싶어 유수빈 배우에게 부탁했다. 옆방에 사는 경찰 준비생 수안 역시 겉으로 보면 스테레오타입에 가깝다. 정의롭고 자신의 소신을 밀고 나가는 인물이다. 동시에 불안과 두려움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위치이기도 하다. 복잡하고 강단 있는 면모를 안정감 있게 표현해줄 수 있는 이주영 배우가 함께해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 저예산 독립영화 <낫아웃> 이후 시리즈 연출을 경험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 현장 자체가 크게 다르진 않았다. 결국 관객이나 시청자가 어떻게 하면 재미를 느낄 것인가를 고민한다는 점에서 같은 작업이다. 다만 시리즈는 8부작인 만큼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을 좀더 꼼꼼하게 담아낼 수 있다는 점이 즐거웠다.

- 비슷한 나이대의 배우들과 연출자가 함께 모여 작업한다는 것도 드문 경험이다.

= 행운이었다. <거래>는 빠른 템포로 달려가는 납치 장르물인 동시에 미묘한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냥 액셀을 밟는다고 속도가 빨라지는 게 아니고 완급 조절이 더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이런 표현은 잘 쓰지 않는데, 이번 경험을 통해 성장의 시간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허물없이 형, 동생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작업할 수 있는 시절도 어쩌면 이게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책임감도 생긴다. 작은 욕심을 내자면 나는 물론이고 배우들에게도 이게 연기 인생의 분기점 혹은 대표작 중 하나로 기억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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