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플라스틱 스카이>는 <소일렌트 그린>(1973) <블레이드 러너>(1982)풍의 디스토피아미래를 그린다. 생태 파괴로 인해 2123년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의 삶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다. 플라스틱 돔 아래에서 살아가는 인류는 생후 50년이 되면 나무가 되어 자신의 신체를 시(市)에 귀속해야 한다. 다수의 인간은 어떻게든 생의 연한을 이어가려 노력하는데, 아이를 잃고 삶의 방향을 상실한 여인 노라는 30세의 나이에 일찍 인간의 생을 종결하고 나무가 되려 한다. 노라의 남편 스테판은 이미 마음을 굳힌 후 수술에 들어간 아내를 살리려 백방으로 뛰어 다닌다. 폐허가 된 지구에서 벌어지는 절절한 멜로는, 헝가리의 부부 감독 티보르 바노츠키(이하 바노츠키)와 서롤터 서보(이하 서보)에 의해 쓰이고 만들어졌다. 올해 <화이트 플라스틱 스카이>로 베를린영화제 인카운터 부문과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콩트르샹 부문을 거쳐 부천에 온 두 감독을 만났다.
- <화이트 플라스틱 스카이>는 로토스코핑(움직이는 대상을 실사로 촬영하여 그 필름을 베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방식)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 이번 영화에 로토스코핑 기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로토스코핑이 지니는 매력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바노츠키 로토스코핑을 활용하면 주인공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화이트 플라스틱 스카이>는 결국 하이브리드를 이야기하는 영화다. 인간과 식물을 오가고,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진 이들이 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영화의 내러티브와 로토스코핑은 닮은 구석이 있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섞고, 2D와 3D의 중간 지점을 찾아가는 로토스코핑이 곧 하이브리드이지 않나. 로토스코핑은 진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가치가 폄훼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로토스코핑을 사용하면서도 디지털 펜을 활용해 모든 그림을 대부분 다시 그렸다.
- 아포칼립스에 사는 인류가 50세가 되면 나무로 변해 도시 에너지원으로 귀속된다는 설정은 어떻게 구상했나. 사랑하는 여인이 나무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본다는 설정은 언뜻 그리스 신화 중 <아폴론과 다프네>를 연상시킨다.
바노츠키 언급한 <아폴론과 다프네>를 포함해 그리스 신화에서 전반적인 이야기의 영감을 받았다. 보다 직접적인 레퍼런스는 그리스 신화 속 <필레몬과 바우키스>로부터 왔다. 제우스에게 한날한시에 같이 세상을 떠나게 해달라고 간청한 후 함께 나무가 되어 세상을 떠난 노부부의 설화 말이다. 나무 변신 모티프가 자칫 이상해 보일 순 있어도 우리에겐 상당히 아름답고 시적으로 다가왔다.
-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을 포함해 부감 숏이 자주 등장한다.
서보 모든 생명이 멸종한 세계도 우리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 속에서 생존한 인간이 디스토피아의 면면을 탐험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부감 숏을 선택했다. 애니메이션은 세상의 다양한 풍경을 보여줄 수 있어 실사 영화만큼의 제한이 없다.
- 자연광이나 조명 등 영화 내부에서 빛을 사용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클럽 내부에서 두 남자가 대화를 나눌 때나, 새벽녘 창가로 햇빛이 스미는 장면 등이 아름답게 그려졌다.
바노츠키 우선 작품의 주요 소재인 나무에게 일조량이 중요하기 때문에 햇빛을 묘사하는데 특히 신경을 썼다. (웃음) 작품에서 빛을 그릴 때, 빛이 내포하는 내러티브가 있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했다. 조명이든 자연광이든 빛의 움직임만으로 관객에게 언어화할 수 없는 감정이 전달되길 바랐다.
- 노라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캐릭터다. 하지만 남편 스테판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생명을 회복한 후엔 전과 달리 삶을 지속하고자 한다. 어떤 점이 노라의 생존 의지를 불 지폈다고 보나.
서보 스테판과 노라의 사랑을 지켜보는 일은 곧 두 남녀의 관계 및 감정선 변화를 관람하는 일이다. 스테판만 하더라도 영화 초반엔 굉장한 통제광으로 묘사된다. 노라의 선택 의지는 묵살한 채 공격적으로 노라를 살리려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라와의 여정을 통해 파괴됐던 부부관계를 회복하고, 양자간 균형을 맞추는 삶에 관해 고민하는 등 진보한 모습을 보인다. 그런 식의 변화가 노라의 생존 의지를 부추기지 않았을까.
바노츠키 우리 영화엔 수많은 밀고 당기기가 존재한다. 스테판은 노라를 구원하고자 하지만 노라는 구원을 거부한다. 또한 노라는 생의 의지를 단념하지만 사실 노라가 선택한 연명 중단 과정은 죽음이 아닌 또 다른 삶의 시간을 맞이하는 일이다. 이런 식의 줄다리기는 러닝 타임 끝까지 지속된다.
사보 그래서 우리 영화의 결말이 ‘논쟁적인’ 해피엔딩이길 바랐다. 실제 우리의 의도와 부합하게 관객들에게 결말에 관해 물어보면 반응이 정확히 양분됐다.
- 스테판과 노라는 타인에게 통성명할 때 같은 성씨를 사용하지 않는다. 기혼 여성의 자유권을 침범하는 서양의 부부동성(夫婦同姓) 문화가 100년이 지나 사라진 것인가, 아니면 헝가리는 이미 이 관습을 철폐한 것인가.
서보 현대 헝가리 사회에선 여성 배우자가 남성 배우자의 성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당장 나만 해도 남편인 티보르 감독과 다른 성씨를 사용한다.
- 노라를 구하려다 변을 당한 닥터 마두는 노을을 바라보며 스테판에게 이 풍경을 노라에게 보여달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당신들에게도 절체절명의 순간에 마주하고 싶은 특정 풍경이 있는지 궁금하다.
바노츠키 그런 순간이라면 일몰도 좋고 일출도 좋다. (웃음) 삶의 끝자락에 보고 싶은 풍경을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행운일 것이다. 헝가리엔 바다가 없다. 그래서 해변가에서 일몰이든 일출이든 보고 싶다.
- <화이트 플라스틱 스카이>는 100년 뒤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생태 위기는 지금도 지구를 좀먹게 한다는 점에서 시의적이다. 이번 작품이 2023년의 관객 마음속에 어떻게 남길 바라나.
바노츠키 이 영화가 정답을 제시하는 서사는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관객들이 많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가 됐으면 한다. 지금 세계는 여러 방면에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영화가 세상을 바꾸진 못하겠지만 관객들이 계속해 세상에 의문을 가진다면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것 같다.
서보 영화 속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각기 다른 윤리와 신념을 가진 채 살아간다. 이들이 펼치는 스펙트럼 속에서 결정하는 각기 다른 삶의 태도가 관객에게 생각할 기회와 대화의 여지를 만들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