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BIAF #2호 [인터뷰] '켄즈케 왕국' 닐 보일 감독, 언어를 넘어선 교감
2023-10-21
글 : 조현나
사진 : 백종헌

가족들과 바다를 여행할 계획을 세운 마이클(에런 맥그리거)은 부모님의 충고를 귀담아듣지 않고 몰래 반려견 스텔라를 배에 태운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 스텔라를 구하려던 마이클은 파도에 휩쓸려 조난당하고 만다. 외딴 섬에서 눈을 뜬 마이클 앞에 수십 년 간 섬에서 홀로 생활해온 켄즈케(와타나베 켄)가 나타난다. <켄즈케 왕국>은 영화 <워 호스>의 원작자로 알려진 작가 마이클 모퍼고의 동명 소설에서 출발한 애니메이션이다. 지난 6월 열린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먼저 상영된 뒤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아시아 프리미어로 관객들을 만난다. 닐 보일 감독은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1990) 제작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애니메이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CF, 뮤직비디오 등의 분야에서도 활발히 활동했으나 애정을 간직한 채 36년간 꾸준히 그림을 그려왔다. 오랫동안 협업해온 커크 핸드리 감독과 함께 그는 8년 반이라는 시간을 들여 <켄즈케 왕국>을 완성했다.

- 원작의 어떤 부분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던가.

= <켄즈케 왕국>은 정말 모든 연령대가 좋아하는 유명한 모험담이다. 동시에 환경에 관한 시의성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기도 해서 공동 연출가인 커크 핸드리 감독과 나 모두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 영상화 과정에서 각색된 부분이 있다. 가령 소설에서는 일본어만 할 줄 알던 켄즈케가 마이클에게 영어를 배우는데, 영화에서는 마지막까지 서로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 원작자인 마이클 모퍼고는 작품의 메시지만 명확히 전달된다면 다른 것은 자유롭게 각색해도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커크 핸드리 감독과 나는 <켄즈케 왕국>의 중심 내용을 잘 전하고 싶어서 신중하게 작업했다. 켄즈케가 결국 끝까지 영어를 할 줄 모르는 것으로 연출한 건 일정 부분 의도가 있다. 극중 등장하는 동물들도 인간과 대화가 불가능하지 않나.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떻게, 어디까지 교감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고민의 답으로 옛날 무성영화처럼 이미지나 몸짓으로 끝까지 이야기를 끌어가보고 싶었다.

- 말은 통하지 않지만 켄즈케와 마이클이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나가는 과정이 집중적으로 그려진다.

= 원래 마이클은 남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 아이였다. 결국 그로 인해 스텔라와 조난당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지혜로워진다. 말하자면 타인을 존중하고 배우려는 태도를 갖게 된 것이다. 켄즈케는 가족을 포함해 자신의 모든 것을 잃는 비극을 경험했고 그래서 사람을 싫어하고 동물과 지내는 걸 선호한다. 하지만 그도 실제로는 타인과의 교류가 필요한 사람이다.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를 필요로 하고 환경, 동물과도 긴밀히 연결되어있음을 켄즈케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 켄즈케가 머무는 트리하우스의 미장센이 무척 섬세하다. 수십 년간 혼자 섬에서 어떻게 삶을 꾸려왔는지 느껴졌다.

= 사실 초반에 스케치를 하고 아티스트들이 스토리보드 작업을 할 때만 하더라도 트리하우스에 관해 구체적으로 정해진 게 없었다. 프로덕션 디자인도 아직 다 구성되지 않은 상태여서 아주 러프한 아이디어 정도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마이클이 집 안으로 들어오면 켄즈케의 그림들이 보이고, 그 다음에 발코니가 드러나는 식의 동선을 그렸고 그걸 기초로 공간을 유기적으로 구성해나갔다.

- 셀리 호킨스, 킬리언 머피, 와타나베 켄, 그리고 래피 캐시디 등 성우진이 화려하다.

= 운 좋게도 다들 <켄즈케 왕국>을 읽었거나 자신의 아이들에게 읽어준 기억이 있어서 이 작품에 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더라. 덕분에 1순위로 고려하던 캐스팅이 전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마이클 역의 에런 맥그리거는 오디션을 통해 만났다. 당시 11살의 어린 소년이었는데도 녹음이 시작되면 완벽히 몰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주저할 것 없이 캐스팅했다. 녹음이 시작됐을 땐 코로나19 락다운이 시작된 시점이었다. 킬리언 머피는 아일랜드에, 와타나베켄은 일본에서 비디오 링크를 통해 녹음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마이클이 물에 빠진 채 대사를 읊는 장면이 있었는데 현실감을 위해 사운드 엔지니어가 에런의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에런의 얼굴에 계속 물을 뿌렸다. 덕분에 에런은 ‘어푸, 어푸’하며 실감나게 연기할 수 있었다. 에런의 아버지 역을 맡은 킬리언 머피는 비스킷을 먹으며 촬영해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계속 비스킷을 먹고 싶어서 일부러 여러 차례 촬영을 거듭하곤 했다. (웃음)

- 밀렵꾼이 섬에 들이닥치면서 극의 분위기가 반전된다. 정체를 파악하기 어렵도록 부츠, 총 등을 클로즈업할 때마다 위압감이 상당했다.

= 마이클이 섬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행복해하고 평온함을 느끼는 모습 이후에 의도적으로 밀렵꾼들을 등장시켰다. 밀렵꾼의 얼굴은 거의 실루엣으로만 보이게 하고 이미 지나간 발자국 같은 것들을 보여주면서 어떤 동기로 이곳에 왔는지를 모호하게 하려고 했다. 작곡가 스튜어트 핸콕과 상의한 끝에 드럼 비트가 많이 쓰인 웅장한 8분짜리 O.S.T를 넣어 더욱 드라마틱하게 연출했다.

- 영화의 또 다른 드라마틱한 장면은 켄즈케가 오랑우탄 가족과 마주하는 장면이다. 허밍과 함께 이들을 맞이하는 모습이 판타지처럼 느껴졌다.

= 각색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등장인물 각자의 언어가 전부 다르다는 점이었다. 후에 켄즈케가 마이클에게 오랑우탄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하는데, 그 소통 방법으로 음악이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켄즈케와 마이클이 서로 노래로 합을 맞추기에도 자연스러울 테니 말이다. 스튜어트 핸콕은 감정을 응집력 있게 표현하는 데에 특화된 작곡가다. 그가 만든 허밍 곡이 상황을 더욱 아름답게 연출해줬다.

-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을 통해 처음으로 내한했다. 언어가 다른 한국 관객들에게 <켄즈케 왕국>을 선보이는 것 또한 감독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듯하다.

= 아직 한국의 관객들을 많이 만나진 못했지만 다행히 들려오는 반응이 나쁘지 않더라. 언어가 달라도 얼마든지 소통이 가능하며 서로 다른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지구와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여러 메시지가 영화에 담겨있다. 앞으로 <켄즈케 왕국>을 관람할 한국의 관객들에게 그 의도가 잘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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