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BIAF 2호 [인터뷰] ‘마크로스’ 카와모리 쇼지 감독, 정밀한 취재가 낳은 카타르시스
2023-10-21
글 : 정재현
사진 : 백종헌
‘BIAF 2023 특별전 마크로스- 노래, 사랑, 메카의 복합예술’ 카와모리 쇼지 감독

“로봇 애니메이션의 혁명.” <마크로스> 시리즈의 시작인 <초시공요새 마크로스>(1982)가 받았던 평가다. <마크로스> 시리즈는 40년 넘게 일본 리얼로봇 SF 애니메이션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디테일이 남다른 전투기 디자인과 창공을 가르며 펼쳐지는 전투기 액션은 물론, 매 시리즈마다 여성 주인공의 감미로운 노래와 삼각관계 로맨스를 넘치지 않게 탑재한 <마크로스> 시리즈는 여전히 신규 팬들을 유입하며 비상 중이다. 이 시리즈가 지금껏 사랑받을 수 있는 데엔 총감독 카와모리 쇼지의 영향이 지대하다. 작품 속 등장하는 항공기체의 디자인부터 액션 시퀀스 및 라이브 콘서트 시퀀스의 연출 그리고 애타는 멜로 플롯까지, <마크로스> 시리즈엔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2023년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은 그를 마스터 클래스의 연사로 초빙했다. 올해 BIAF는 ‘마크로스 – 노래, 사랑, 메카의 복합예술’ 섹션을 만들어 시리즈의 극장판 중 <마크로스 플러스 –MOVIE EDITION->(이하 <마크로스 플러스>), <극장판 마크로스 프론티어: 거짓의 가희>, <극장판 마크로스 프론티어: 이별의 날개>(이하 <마크로스 프론티어>) 세 편을 상영한다.

- <탑 건: 매버릭>(2022)의 엄청난 흥행과 이로부터 출발한 <탑 건>(1986)의 재열풍이 한차례 한국을 강타했던 시점에 <마크로스 플러스>를 보니 기분이 남다르다. 실사 영화에 비해 2D 애니메이션만이 구현할 수 있는 움직임 혹은 역동성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나.

= 실사 영화의 경우 CG를 활용한다고 해도 비행기체를 촬영할 때 카메라 워킹의 제한이 있다. 최근에야 드론을 활용하는 기법이 등장했다지만, <마크로스> 시리즈를 처음 만든 1980년대만 해도 그런 기법이 어디 있었나. <마크로스> 시리즈의 경우 여러 앵글의 카메라를 활용해 기체를 찍거나 과장된 앵글을 사용하는 방식 등을 활용해 애니메이션만의 역동성을 만들어갔다.

- 당신은 오래전부터 정밀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만이 구현할 수 있는 리얼리즘에 사활을 걸어온 것으로 안다.

= <초시공요새 마크로스>를 만들 때는 실제 전투기를 타고 도쿄의 상공을 날기도, 조종석에 앉아 직접 전투기를 몰아 보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은 픽션이다. 따라서 100%의 리얼리티를 구현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마크로스>에 자주 등장하는 도그파이트만 해도 현실의 공중전에선 발생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런 장면이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수 있다. 내가 할 일은 항공기의 역학을 분석하는 등 정밀한 취재를 바탕으로 매력적인 그림을 그려 시청자들에게 짜릿함을 선사하는 일이다.

- <마크로스 플러스>의 이사무도, <마크로스 프론티어>의 사오토메도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습관이 있다. 이 점 또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파일럿의 습성인가.

= 정확히 말하면 전투 비행이 아닌 아크로바틱 비행을 하는 파일럿의 습관이다. 파일럿들도 평면으로 그린 그림은 잘 와닿지 않는다.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360도 회전을 선보인다) 따라서 비행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본인이 직접 자기 신체를 활용해 비행할 궤도를 몸소 구현해 봐야 한다. 캐릭터들이 손을 뻗을 때도 의미없이 손을 뻗기 보단 분명한 특징이 있어야 한다. 가령 이사무가 뻗는 손의 형태는 날개가 앞쪽에 위치한 그의 항공기 디자인과 연관이 있다.

- 여전히 레고를 통해 기초 디자인을 확립한 후 본격적인 디자인에 착수하는 작업 방식을 유지 중인가.

= 지금도 쓴다. 처음 <초시공요새 마크로스>를 만들 땐 나무를 활용하거나 종이를 접어 기초 디자인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 시(始)제작을 하면 중간 수정이 상당히 힘들다. 그러다 중학생 시절 자주 조립하며 놀던 레고를 떠올렸다. 레고는 떼고 붙이는 수정이 손쉽고 사이즈 계측이 용이하다.

- 메카닉 디자인 못지않게 라이브 콘서트의 작화 또한 생생함이 남다르다. <마크로스 프론티어> 속 셰릴의 콘서트 시퀀스가 특히 그렇다.

=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이다. 라이브 신 연출엔 두가지 맹점이 존재한다. 실제 라이브 무대에선 볼 수 없는, 즉 애니메이션만 할 수 있는 장면을 연출해야 한다. 동시에 객석의 관객이 무대 위 디바가 내게로 가까이 다가왔으면 하는 설렘도 선사해야 한다. 이 둘을 잘 조절하기 위한 컷 분할을 신경 쓴다.

- 올해 BIAF에 초청된 두 작품을 포함해, <마크로스> 시리즈 전체에서 ‘음악’이 서사의 핵심으로 기능한다.

= 이 이야기를 위해선 <마크로스> 시리즈의 태초부터 꺼내야 한다. 일러스트레이터 미키모토 하루히토가 어느날 중국 음식점에서 훗날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속 민메이의 단초가 되는 캐릭터 시안을 보여줬다. 그 그림에서부터 민메이는 마이크를 쥔 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가수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 거의 없었고, 가수가 등장하는 전투 로봇물은 더욱 없었다. 그날이 노래와 영상이 결합된 <마크로스>만의 시그니처가 시작된 날이었다. 우리 작품엔 호전적인 젠트라디 족이 등장한다. 이들에겐 문화가 존재하지 않았으나 민메이의 노래를 듣고 문화적 충격을 받아 종전을 선언한다. 제 2차 세계 대전 전선 상황에서도 릴리 마를렌의 노래는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사랑받았다고 하지 않나. 이처럼 음악엔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사실 <마크로스> 시리즈 방영 초기만 해도 많은 관계자들이 음악으로 종전이 가능하다는 설정에 반대했다. 하지만 우리(창작자)가 곧 제작자였기 때문에, 권력을 남용해 그 설정을 집어넣게 되었다. (웃음) 노래로 인해 전쟁이 끝나고 노래를 통해 갈등을 해결한다는 설정이라면, 기존에 존재하던 <스타워즈> 등의 스페이스 오페라와 우리 작품은 궤를 달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당신의 연출 스타일은 <마크로스 플러스> 속 이사무, 갈드, 뮨 중 누구에 가깝나.

= 세 인물이 1/3씩 내 안에 들어있지 않을까. 질문과 맥락은 좀 다르지만, 이사무 특유의 거친 행위엔 <마크로스> 시리즈의 애니메이터 이타노 이치로씨와의 에피소드가 일부 반영됐다. <마크로스 플러스>에서 이사무의 오토바이가 승합차와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장면은 내가 실제로 이타노가 운전하는 자동차에 탔을 때 겪었던 일이다.

- <마크로스 프론티어>의 브레라가 셰릴의 몸을 스캔하며 상대의 동의 없이 개인 정보를 전산으로 수집하는 설정이나, 난민 선단이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한 채 우주를 배회하는 이야기 등은 2020년대의 이슈들과 비견해 보아도 다를 바 없다.

= <마크로스 프론티어>를 만들 때도 생태 위기는 심각했다. ‘프론티어’라는 이름은 중의성을 내포한다. 신천지란 뜻 그대로 꿈과 희망을 담은 이름을 통해 발전하는 인류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반면 프론티어를 찾아 나선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을 수탈하고 식민 지배했다. 낭만과 침략, 두 이율배반적인 상징을 아우르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작품 속 바주라족과 인류의 갈등을 그리고 싶었다.

- 당신이 속한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 사테라이트(SATELIGHT)의 E는 엔터테인먼트의 약자라 들었다. 애니메이션이 선사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 애니메이션의 어원인 애니메이트는 생명을 부여한다는 의미의 동사다. 또한 자연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은 일본에 만연한 사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애니메이션은 인간에서 출발해 보다 넓고 근원적인 생명에 가닿는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매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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