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에(아이나 디 엔드)는 길거리 버스킹 가수다. 노래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이는 그이지만, 일상에선 거의 말을 꺼내지 못하는 상태다. 이유는 과거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재난으로 가족을 잃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아온 키리에는 타인과의 관계, 삶의 안정성, 현실적인 경제력 면에서 모두 문제를 겪고 있다. 그렇게 길에서 노래를 부르던 키리에 앞에 잇코(히로세 스즈)가 나타나 그의 매니저를 자처한다. 잇코는 가정에서 받은 상처 때문인지 홀로 살아가며 위태위태한 범죄를 일삼고 있다. 키리에와 잇코는 고등학생 때부터 알던 사이다. 잇코의 입시 과외 선생이었던 나츠히코(마쓰무라 호쿠토)가 키리에 언니의 약혼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재해로 약혼자를 잃은 나츠히코 역시 안정적이었던 삶의 환경을 뒤로 한 채 방황 중이다. 그렇게 영화는 동일본 대지진 후 약 10년이 흐른 지금, 재난 이후 현실에 부유하듯 살아오던 세 젊은이의 시간을 반추한다.
<러브레터> <릴리 슈슈의 모든 것> <하나와 앨리스> 등으로 국내에 큰 인지도를 쌓은 이와이 슌지 감독의 신작이다. <키리에의 노래> 곳곳에도 그의 인장이 박혀 있다. 당장이라도 깨질 듯한 젊은이의 불안, 끊길 듯 끊기지 않는 인연의 실, 자유분방한 카메라의 움직임과 이미지를 이길 만큼 강렬한 음악까지 모두 다 담겨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요소를 여러 시간대의 축으로 꿰는 방식 역시 한결같다. 키리에가 아이였던 동일본 대지진 당시, 어린 키리에가 가족을 잃고 떠돌며 나츠히코를 만난 시점, 그로부터 몇년 뒤 키리에의 고등학생 시절, 그리고 키리에와 잇코가 재회한 현재의 시간이 계속 교차하면서 인물의 과거를 들춘다. 가족을 잃은 아이, 약혼녀를 잃은 남자, 가족과 갈라진 청소년의 기억 등 이제 바꿀 수 없는 과거의 슬픔이 여러 애상을 가져온다. 그러나 줄곧 터져나오는 키리에의 힘찬 노래가 이 애상을 뒤덮고, 이내 영화를 희망의 단계로 데려간다. 키리에를 연기한 밴드 BiSH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아이나 디 엔드의 음악적 역량이 영화의 큰 축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감독판보다 60분가량 줄어든 버전으로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