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노래가 있는 곳으로 내가 갈게.” 노래와 얽힌 네명의 청춘의 방황과 여정을 그린 <키리에의 노래>는 이와이 슌지의 감성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이야기 속에 인물들을 밀어넣는 대신 그들이 각자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적절한 무대를 마련한다.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처럼 자연스러운 <키리에의 노래> 속 음악 여정에는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1996)의 어두운 감성,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의 잊을 수 없는 멜로디, <하나와 앨리스>(2004)의 애틋한 관계까지 이와이 슌지 감독이 걸어온 길이 묻어 있다. 한결 홀가분한 표정으로 진심을 전해온 이와이 슌지 감독의 이야기를 전한다.
- 네 남녀의 13년에 걸친 이야기다.
= 계기는 전작 <라스트 레터>에 나오는 소설이었다. 여자아이가 찍은 8mm 영상이 나오는데 그게 이번 영화의 원형이었다. 시골에서 도쿄로 상경한 뮤지션 소녀가 있고 그녀의 매니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이 짧은 로그라인으로 간단한 영상을 만들어보려 했다.
- 키리에 역에 BiSH 멤버였던 아이나 디 엔드를 캐스팅했다. 아이나 디 엔드는 직접 작사, 작곡한 6곡을 불렀다.
= 우연히 아이나 디 엔드의 라이브 영상을 만든 적이 있는데 그즈음 나도 <키리에의 노래>를 기획하고 있었다. 직관적으로 키리에와 아이나가 매칭이 된다고 느꼈고 그때부터 그녀의 노래를 찾아보았다. 싱어송라이터로서 굉장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아이나의 노래를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확장해나갔다.
- 노래가 먼저 나오고 거기에 맞춰 이야기가 나온 건가. 아니면 이야기에 맞춰 노래를 만든 건가.
= 둘 다 동시에 이뤄졌다. 어느 한 방향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감독이 직업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은 정말 어렵다. (웃음) 좋은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는 시간이 굉장히 길었는데, 최근엔 고민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해내야지 하는 강박 없이 시작하자는 생각을 했고 나로서는 실험적인 도전의 결과가 이번 작품이다.
- 히로세 스즈가 연기한 잇코, 마쓰무라 호쿠토가 연기한 나츠히코는 어떤 캐릭터인가.
= 잇코는 본래 고등학생 시절의 인물과 현재의 인물이 전혀 다른 두명의 캐릭터였다. 히로세 스즈에게 고등학생 캐릭터를 맡기려 했는데 캐스팅 후 그녀라면 두명의 다른 인물을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로 표현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 히로세 스즈가 아니었다면 잇코라는 캐릭터는 없었을 것이다. 나츠히코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이듬해 어떤 노래의 작업을 함께한 적이 있는데 그때 시작된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가 이번 영화에 녹아들어가면서 지금의 형태가 됐다.
- 동일본 대지진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연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지진 후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는데, 지금 다시 이 소재를 꺼낸 이유는.
= 동일본 대지진을 말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아이나 디 엔드라는 뮤지션의 내면을 그려나가는 경로에 그와 같은 비극적인 배경이 있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거다. 사실 이 영화는 아이나 디 엔드가 노래하는 세계를 그린 이야기다. 때로는 음악이 곧 이야기가 된다.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나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만들 때도 무의식 중에 음악을 넣었다. 이번에는 음악이 영화의 한가운데 있으니 의외로 이야기가 간단히 성립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런 만큼 깊이가 더 필요했다. 음악은 우리를 치유해주기도 하고 사회나 인간관계의 어둠, 고통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전작들을 살펴보면 상처받은 소녀들의 이야기는 감독의 중요한 테마처럼 보인다.
= 의식한 적은 없다. 이런 질문을 받으니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아무래도 나의 어린 시절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혼자 집으로 귀가한 적도 많다. 돌이켜보면 젊은 시절엔 즐겁고 평화로운 순간보다 궁지에 몰려 괴로워한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이제야 말할 수 있지만 어쩌면 그런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 세계를 즐길 수 있다고 믿는다.
- <립반윙클의 신부>의 배우 구로키 하루,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의 배우 오키나 메구미 등 이전 영화에 함께했던 배우들을 세월이 흐른 시점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마치 동창회 같다.
= 오랫동안 작업을 하다보니 만날 수 있는 신기한 인연이다. 일단 한번 작업한 배우는 또다시 만나고 싶다. 작품을 함께한 동료들은 늘 보고 싶다. 다만 적절한 타이밍과 배역이 필요할 뿐이다. 아직 한번밖에 만나지 못한 배우들은 언젠가 꼭 자연스럽게 다시 만나고 싶다.
- 독특한 앵글이나 촬영이 꽤 많다. 스마트폰이 연상 되는 화면이나 광각렌즈를 자주 써서 왜곡이 종종 일어나는데.
= 일부러 아날로그 카메라 렌즈 느낌을 살리려고 고민해서 찍은 장면도 많다. 음악의 정서, 멜로디의 감각을 화면에 잘 옮겨 담고 싶었다.
- 3시간 버전과 2시간 버전이 있는데 개봉은 대체로 2시간 버전으로 한다.
= 현실적인 부분이 있었다. 분량을 줄여야 한다면 빠져야 할 건 음악이 아니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몇몇 인물의 에피소드가 삭제됐지만 전체적인 흐름에는 큰 지장이 없으리라 본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사연이 더해진 일종의 라이브 콘서트 같은 영화다. 내가 가수가 된 것처럼 한곡 한곡 다 소중하지만 유독 마음에 남은 건 영화의 시작과 끝에 나오는 <사요나라>라는 곡이다. 내가 고3 때 유행한 노래인데, 개인적인 추억과 영화 속 에피소드가 섞이며 특별하게 다가왔다. 한국 관객들도 <키리에의 노래>를 하나의 콘서트를 즐기는 감각으로 봐주시면 좋겠다. 기왕이면 콘서트처럼 여러 번.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