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지쳐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을 때 불현듯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인생의 등대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지난 10여년 영화주간지 기자 일을 하면서 길을 잃은 것처럼 느껴질 때마다 장면 하나, 대사 하나가 머릿속에 자동 재생되어 등을 다독여주었다. 소년의 성장을 12년 동안 촬영한 <보이후드>(2014)의 마지막, 어느덧 성인이 된 메이슨 주니어(엘라 콜트레인)가 대학 진학을 위해 집을 떠난다. 자식들이 다 떠나고 다시 혼자 살게 된 엄마 올리비아(퍼트리샤 아켓)는 속없이 즐거워하는 아들이 못마땅하다. 올리비아는 급기야 복받친 감정을 이기지 못해 흐느끼며 나지막이 되뇐다. “난 그냥,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허망함으로 쪼개진 심장 사이 스며나온 진득한 감정은 아직도 내 마음속 얼룩으로 남아 있다.
얼룩이란 게 참 희한한 것이 관점에 따라 상상하지 못했던 모양으로 보이기도 한다. “결국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 거야”라며 울음을 터트리던 올리비아의 한탄은 도리어 내게 위안으로 다가왔다. 그 슬픔에 한 시절의 끝에 대한 아쉬움은 있어도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는 묻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엄마의 끝을 거름 삼아 아들의 시작으로 열리는 것이 아니다. 그저 순간이 우리를 붙잡은 끝에 각자의 오늘이 계속될 따름이다. 뭔가 더 있으리란 기대는 오늘을 버티고 내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막연한 미래에 책임을 맡겨버리는 핑계로 변질되기 십상이다. 인생의 단계가 끝날 때마다 혹은 새로운 단계가 시작될 때마다 번번이 뭔가 더 있으리라 기대하고 실망하는 건 적잖이 피곤한 일이다. 기본적으로 비관주의자인 나는 막연한 내일을 기대하며 버티느니 오늘에 집중하여 의미를 찾는 편이 익숙하다. 후회도 기쁨도 아쉬움도 불안도 곱씹는 건 딱 오늘까지만. 그게 힘겨운 오늘에게도 덜 미안하니까.
이번 호부터 <씨네21> 편집장을 맡았다. 운 좋게 회사에서 잘리지 않는다면 언젠가 책임을 맡을 수도 있겠다 막연히 상상해본 적은 있지만 그게 지금, 이런 방식으로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변화는 언제나 불청객처럼 뜻밖의 순간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문을 두드리는 법이다. 편집장이 되면 뭔가 더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처음 부모가 되던 날도 그랬다. 저절로 되는 건 없다. 레벨업하듯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편리한 설정 따윈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가 되어가는 중이고, 매일매일의 선택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비록 그 과정이 괴로움과 아쉬움으로 점철되어 있더라도, 아니 그래서 그 아쉬운 마음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오늘 데스크 책상에 앉아 <씨네21>의 지난 28년을 돌아보며 독자로서, 평론가로서, 기자로서 함께했던 강렬한 의지들을 마주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영화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 중이다. 늘 견고하게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던 영화는 생존을 위한 치열한 답을 내놓고 있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영화잡지의 쓸모와 필요를 증명해야 하는 건 <씨네21>도 마찬가지다. 매번 정답을 내놓을 수도 없고 최고의 선택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쉽게 타협하지 않고 지금 영화계에 필요한 글을 쓰겠다는 의지만큼은 놓지 않으려 한다. 오늘, 끝을 먼저 상상하며 편집장을 시작한다. 언젠가 부디 이렇게 중얼거리며 데스크에서 내려올 수 있길. “역시, 뭔가 더 있을 줄 알았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