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길 위의 연인들’ 론 니스워너 작가, 못다 한 이야기
2023-11-09
글 : 김소미

“30년 전, 동성애자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할리우드영화는 없었다. 그러나 조너선 드미(감독)와 나는 눈먼 파리처럼 용감하게 달려들었다.” 에이즈를 이유로 자신을 해고한 회사를 상대로 소송에 나선 게이 변호사의 투쟁기인 <필라델피아>(1994)는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는 에이즈의 시대였던 1980년대이고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성소수자의 삶”이라고 말하는 작가 론 니스워너의 손끝에서 태어났다. 30년 후, 작가는 파라마운트+의 8부작 시리즈 <길 위의 연인들>(10월28일 티빙 공개)에서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를 가로지르며 <필라델피아>의 시대보다 더욱 엄혹했던 미국 역사의 환란기로 사랑하는 두 남자를 데려간다. 영화 <더 노멀 하트>로 2015년 제72회 골든글로브 TV미니시리즈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맷 보머가 야망 강한 워싱턴의 정치 공작원 호킨스를, <브리저튼>의 조너선 베일리가 종교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이상주의자 팀을 연기한다. 협상이 극적 타결되어 미국작가조합(WGA) 파업이 끝난 직후, <길 위의 연인들>의 작가이자 쇼 러너인 론 니스워너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 2007년에 토머스 맬런이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토대로 시리즈를 기획한 지 10년 이상 된 것으로 안다. 어떤 점에서 영상화를 결심했고, 이토록 긴 시간이 걸린 이유는 무엇인가.

= 무려 11년이었으니 참 긴 여정이었다. 두 남자 호킨스와 팀이 각자의 정치적 야망이나 종교적 신념 때문에 서로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관계라는 점에 주목했다. 반대 방향으로 서로 튕겨져나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사랑은 매혹적이다. 곧바로 기획에 착수했지만 얼마 뒤 <홈랜드>(2010~20)와 <레 이 도 노 반>(2013~20)- 긴 시간 함께한 훌륭한 두개의 미국 TV시리즈!- 에서 일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기 때문에 그 일에만 매진해야 했다. 하지만 바쁜 동안에도 언젠가 내가 <길 위의 연인들>로 돌아가야한다는 생각은 변함없었다. 마침내 3~4년 전쯤 부터 그것이 가능해졌고 지금에 이르렀다.

- 매카시즘 광풍이 불었던 1950년대 적색 공포의 시대(Red Scare Era)와 에이즈의 위기가 찾아온 1980년대까지 미국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통과 한다.

= 나는 에이즈의 위기와 차별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이야기하는 영화 <필라델피아>를 제작할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바꿔 말하자면 이제는 <길 위의 연인들> 덕분에 더 과거로 돌아가 1950년대 라벤더 공포(정부 차원에서 성소수자를 탄압·색출했고 특히 공직에 있는 성소수자의 대규모 해고로 이어졌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 같다. 그 두개의 시간대를 엮으며 60년대와 70년대가 퀴어의 사랑에 반영된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공들인 점은 이러한 긴 시간의 흐름을 연대기적으로 나열하지 않고 마치 뒤섞인 기억처럼 제시한 것이다.

- <길 위의 연인들>에 담긴 역사적 과오는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작가로서 시대극의 현재성을 고려할 때 어떤 것을 중시하나.

= <길 위의 연인들>이 여전히 현대적인 이야기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길 위의 연인들>이 자칫 수정주의 역사극이 되어선 안된다는 점에 더 신경 썼다. 작가실의 모든 공동 작업자들과 함께 엄격히 선언했다. 2021~23년(집필 시기)의 마음을 가지고 1950~1980년대 등장인물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지 규정하지 말자고. 동시대 관객을 안심시키기 위해 시대극 속 등장인물의 윤리를 보수하는 것은 자칫 나쁜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1950년대 분량을 쓸 때 자주 논의했던 것 중 하나가 여러 캐릭터들이 각자 얼마나 어떻게 게이다운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느냐는 점이었다. 그리고 나는 애초에 ‘그런 건 없다’고 말하고 싶다. 성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나 센터 따윈 존재하지 않았고, 영화와 텔레비전에서 재현조차 제대로 되지 않던 시절이었으므로, 우선 비밀스럽게나마 자신의 사랑과 생존을 지키는 것이 우선일 수밖에. 시대적 비극에도 불구하고 사적인 공간에서 사랑과 기쁨, 성적 쾌락을 찾는 생존자들의 움직임은 끊이질 않았다.

- <길 위의 연인들>엔 로맨틱하고 격정적인 섹스 장면이 많다. 성적 묘사, 섹슈얼리티에 접근하는 방식이 어땠는지 듣고 싶다.

= 첫 번째 규칙, 같은 성적 묘사를 절대 반복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끝까지 지켰다. 8화를 집필할 즈음 나와 동료 작가들 모두 ‘도대체 그동안 시도하지 않은 게 뭘까’ 하며 머리를 긁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웃음) 두 번째 규칙, 모든 성적인 장면은 스토리를 진전시켜야 한다. 두명이든 세명이든 베드신이 시작될 때와 끝날 때 그들의 관계는 달라져 있다. 세 번째 규칙, 이 쇼의 모든 장면은 사실 권력에 관한 것이다. 위대한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세상의 모든 것은 섹스에 관한 것이고 섹스는 권력의 문제”라고 말했다.

- 배우들이 신체적으로 긴밀히 접촉하는 동안 안전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구성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

= 니와 감독, 그리고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함께 모여 협의하면서 장면의 세부 사항들을 설정해 나갔고, 확신이 들면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배우들과 대화하러 갔다. 그건 지시나 감독의 과정이라기보다 배우들에게도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무엇인지 다시 찾아나가는 일에 가까웠다. 촬영은 비공개 세트에서 했지만 배우들을 살피는 의상, 분장 등 최소한의 인력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세트 내에 머물면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데, 그들조차도 배우들이 한번 자세를 잡고 나면 귀신같이 자리를 비웠다. 한번은 맷 보머의 발이 활용되는 장면에서 조너선 베일리를 위해 테이크가 바뀔 때마다 맷의 발을 깨끗이 씻겨준 뒤 다시 찍기도 했다. 카메라 속의 친밀함을 위해선 온갖 종류의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사진제공 파라마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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