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ee’s back”이라는, 샤이니월드(팬클럽 명, 이하 ‘샤월’ )를 매혹하는 주문으로 시작하는 영화를 팬들이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마이 샤이니 월드>는 올해로 데뷔 15주년을 맞은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역사를 콘서트 실황을 중심으로 돌아보는 다큐멘터리다. 그동안 열린 6번의 단독 콘서트를 한눈에 담고 멤버들의 진심 어린 소회를 듣는 즐거움도 크지만 이 영화의 진정 빛나는 점은 팬을 주인공으로 한 스토리텔링으로 ‘샤이니와 함께해온 나’를 추억하게 한다는 것이다. 직접 만난 이후빈 감독은 <마이 샤이니 월드>를 단순히 팬들을 위한 영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전했다.
- 넷플릭스 시리즈 <택배기사>(2023)의 B팀 감독에 이어 이색적인 행보다. 원래 다큐멘터리에도 관심이 있었나.
= 평소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관심 있는 주제의 다큐멘터리를 챙겨 보는 편이다. 다른 작업으로 인연을 맺은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가 제작, 메가박스중앙이 배급했다.-편집자)로부터 연출 제안을 받았을 때는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얼터 콘텐츠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맡게 된다면 여타 공연 실황 다큐와는 다르게 좀더 영화적으로 음악을 풀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막상 작업을 시작하니 예상보다 모든 게 너무 어려웠다.
- 특히 어떤 점이 어렵던가.= 올해 4~5월에 기획을 시작해 막판 후반작업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정말 쉽지 않았다. 방향성을 잡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도 15주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이니 어느 정도는 샤이니가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야 할 텐데 그건 팬들이 더 잘 아는 부분이라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깊게 가자니 팬이 아닌 관객이 공감하지 못할까 봐 걱정됐다. 결국 처음 발상대로 음악 중심으로 가야겠다 싶었다. 모든 관객이 2시간 동안 충분히 음악을 즐기고 나온 느낌이 들도록 엔터테인먼트적인 부분을 강하게 살리고자 했다.
- 데뷔곡 <누난 너무 예뻐> 무대부터 최신곡 <THE FEELING> 무대까지 담았고 총 23곡을 들을 수 있다. 히트곡도 많은 그룹이라 선곡 역시 쉽지 않았겠다.
= 정말 많긴 하더라. (웃음) 데뷔한 2008년부터 2023년까지 나온 노래들을 연도별로 쭉 나열하는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건드려야 할지 엄두가 안 났다. 그래서 심플하게 15년이라는 시간을 정리할 수 있는 곡들로 가닥을 잡았다. 비트가 빠르고 신나는 노래에서 점차 감성적인 노래로 나아가는 세트 리스트로 영화적인 기승전결의 흐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들어가는 무대 영상 자체의 퀄리티도 신경을 많이 썼다. 옛날 콘서트 영상들은 아무래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담당 DI 기사님이 꼼꼼히 색을 다 만져주시고 결점을 보완할 해결책까지 제시해주셔서 영상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 퇴근하고 지친 채 집에 돌아온 샤월이 샤이니 앨범을 보며 피로가 싹 가신 듯 웃는 도입부 덕에 바로 몰입할 수 있었다. 꼭 샤이니 팬이 아니더라도 덕질 대상을 보며 스트레스가 풀리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니 말이다.
= 관객들이 자신의 옛 시절을 추억하고 그 당시 힘들었던 나를 위로해준 존재가 누구였는지 떠올려보길 바라며 각본을 썼다. 작업하는 동안 나 역시 그런 시간을 가졌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를 보고 H.O.T.와 S.E.S.의 음악을 들으며 다시 힘을 내곤 했던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나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 버들의 토크 장면을 찍은 실내 세트를 실제 샤월의 방처럼 꾸몄다. 다종다양한 포토카드에서부터 멤버들조차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르는 샤이니 기름종이까지, 팬들에게서 받은 굿즈들로 내부를 채웠다.
= 단기간에 정말 많은 팬들이 보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되도록 손때 묻은 애장품들을 다 사용하려고 했다. 세트는 영화적인 재미를 위해 10대, 20대, 30대 샤월의 방으로 베리에이션(변형, 변용)을 줬다. 관객들이 ‘나도 10대 때는 내 가수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문구를 필기구에 붙였었지, 20대 때는 저렇게 많은 포스터로 벽을 도배했었지’ 하면서 빠져들길 바랐다. 어쩌면 팬들이 진짜 보고 싶어 하는 건 그들을 사랑했던 그 시절의 내가 아닐까.
-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 입대 공백기로 인한 불안감을 토로하는 멤버들의 대화가 무척 편하게 흘러간다. 이들에게 어떤 디렉션을 줬나.
= 진행자가 없는 구성에서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질 방법을 고심하다가 팬들의 질문을 모은 노트를 멤버들이 돌아가며 읽는 방식을 선택했다. 디렉션이랄 건 거의 없었다. 나이대별로 나눠서 가는 컨셉이라는 점과 답변해야 하는 질문 내용을 알려준 정도였다. 똑똑한 친구들이라 감독의 의도를 정확히 캐치해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줬고 덕분에 촬영에 더 신경 쓸 수 있었다. 토크 파트니 그냥 여러 대의 카메라를 두고 찍어도 됐겠지만 쉽게 가고 싶지 않았다. 세트가 크지 않아 장소가 한정적이었지만 멤버들의 동선을 따라가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촬영감독과 영화적인 무빙에 관해 의견을 깊이 주고받았다.
- 이번 작업을 통해 샤이니에게서 새롭게 발견한 점이 있다면.
= 새삼스럽지만 진짜 아티스트라는 점. 그들의 베테랑으로서의 면모와 프로다움에 감탄했다. 예를 들어 대배우는 장난치고 농담하다가도 슛이 들어가면 즉각 진지해지지 않나. 그런 강력한 돌변의 포인트를 멤버 모두가 가지고 있었다. 샤월 덕분에 아이돌 팬 문화에 대한 고정관념도 깨졌다. 팬들은 단순히 가수의 멋진 겉모습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아티스트가 열정적으로 만들어온 세계관을 지지한다는 걸 나 역시 샤월이 되면서 알게 됐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