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약속’, 애도에 수반되는 자연적 풍경의 사유화
2023-11-08
글 : 소은성

애도에 형식을 부여할 수 있을까. 또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이 짊어져야 하는, 쉽게 정리될 수도 없고 잡히지도 않는 감정들에 형식을 부여한다면 그것이 애도가 되는 것일까. 엄마의 죽음이라는 추상을 아직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어린 아들이 쓴 시를 마주하고 아버지인 이 영화의 감독은 영화의 어떤 형식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병든 엄마의 죽음이 가져다줄 충격이 걱정되어 감독은 아들에게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는 1년 후에 함께 엄마의 무덤을 찾아가자고 아들과 약속할 수 있었다. <약속>은 엄마의 무덤에 이르기까지 그 1년여의 시간을 통과해나간 아들 시우와 감독 자신에 대한 기록이다.

하지만 기록이라는 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감독은 시우의 연습장에서 우연히 이 영화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을 <슬픈 비>라는 시를 발견한다. 자신의 슬픈 마음에 대해 썼다는 아들의 시를 보고 나서 감독은 또 다른 약속 하나를 제안한다. 시우가 엄마의 무덤을 찾아가기까지, 매일 엄마에게 보내는 시를 한편씩 쓰는 것이다. 영화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분명 시우의 약속에 관한 것이지만 영화는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다루기보다 그것의 결과물을 세심하게 보여주는 데 더욱 집중한다. 시우는 자신이 쓴 시 23편을 직접 낭독하고 그 목소리는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공들여 촬영된 자연의 이미지들 위에 떠돈다. 시우의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옮겨갔다는, 그리고 남겨진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이 계속해서 살게 된 제주도의 집 근처 풍경들이다. 아들에게 이 풍경은 엄마의 부재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의 시를 촉발시키는 모든 자연물들에서 그는 엄마와 엄마를 그리워하는 자기 자신을 찾아낸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더이상 있는 그대로의 자연일 수 없는 자연물들은 아버지인 감독의 손에서 조형된 이미지들과 함께 배치되어 미적이라고 받아들여질 만한 풍경이 된다. 이것이 감독이 생각한 개인적인 애도의 어떤 형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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