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사채소년’, 카타르시스 없이 무거운 마음으로
2023-11-22
글 : 유선아

학교 서열 최하위인 강진(유선호)은 같은 반 일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날이 없다. 집이 부유한 남영(유인수)은 강진에게 숙제를 대신 시키고 기영(이찬형)은 강진을 괴롭히는 남영을 옆에서 거든다. 빚 때문에 부모도 떠나버린 텅 빈 집에 구둣발로 찾아온 사채업자 랑(윤병희)은 강진을 앞에 두고 돈을 갚으라 윽박지른다. 사채업자가 집으로만 찾아왔다면 불행 중 다행이건만 하필 일진 무리에게 괴롭힘을 당한 뒤 교실에 남아 있는 강진을 찾아서 랑은 학교 안으로까지 들어온다. 랑은 자신의 채무자인 강진에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도를 하나 제안한다. 한편 강진이 짝사랑하는 다영(강미나)도 돈 때문에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며 살고 있다. 다영이 어떻게 용돈을 마련하고 새 화장품을 살 수 있는지 같은 반 친구들이 알아서는 안된다. 그런 다영을 몰래 지켜보고 따라다니는 희원(서혜원)은 다영을 다시 올바른 길로 돌아서게 하고 싶다.

학원 누아르, 하이틴 범죄물을 표방하는 <사채소년>은 어울릴 길 없던 두 단어를 기어코 한편의 영화 안에서 만나게 한다. 부모의 돈과 힘으로 매겨진 학생들 사이의 서열은 강진이 우연한 계기로 학교에서 고리대금업을 하면서부터 완전히 뒤바뀐다. 부모의 재산이 아이들의 권력 구도를 결정짓듯, 채권자와 채무자라는 이름이 강자와 약자의 새로운 관계 역학을 만들어낸다는 논리. 왕따를 당하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던 조용한 소년, 강진이 사채를 쓴 학교 친구들에게 이자와 원금을 갚으라며 사자후를 내지르는 장면은 마냥 통쾌하지만은 않다. 여기에 다영과 희원의 스토리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평행선에서 진행되는 듯 영화의 메인 서사를 겉돈다. 그럼에도 <사채소년>이 가진 장르적 강점은 인물과 사건이 서로 복잡하게 얽히면서 교차편집과 몽타주를 구사하며 빠른 템포로 서사를 전진시켜나간다는 데 있다. 왕따에서 채권자로 군림하던 강진이 마주한 위기는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영화를 끌고 간다. 가수로 활동한 바 있는 강미나와 드라마 <슈룹>으로 존재감을 알린 유선호의 스크린 데뷔작으로 <사채소년>을 추동하는 또 다른 힘이 있다면 신인배우들의 넘치는 에너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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