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 누가 영화를 봐?” 요즘 자주 듣는 가장 뼈아픈 말이다. 비관론자의 시선으로 논하자면 영화는 현실을 이길 수 없다. 비현실적인 사건, 사고가 현실에서 끊이지 않을 때 자조와 씁쓸함이 뒤섞인 탄식이 불현듯 터져나온다. 같은 말을 굳이 긍정 버전으로 짜내면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볼 것이 넘쳐나 영화를 볼 틈이 없다. 써놓고 보니 더 절망적이다. 재미있고 감동적인 순간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내리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극장은 너무 멀고 느리고 답답하다. (영화잡지 편집장이 이런 발언을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최근 내 가슴을 울렸던 순간들도 모두 극장 바깥에 있었다.
첫 번째는 볼 때마다 절로 겸손해지는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3>다. 이번 시즌에선 김마스타가 등장했을 때 문자 그대로 압도당했다. 허스키 보이스의 존재감이나 아우라 때문만은 아니다. 정확히는 그의 멘트에 반했다. “우리는 목숨 걸고 안 합니다. 인생을 걸고 하는 거지. 목숨은 하나지만 인생은 기니까.” 20년 넘는 세월 어딘가의 무대에서 자신의 음악을 쌓아온 가수의 노래에는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훌륭한 예술은 재현되는 방식 외의 감각으로 확장된다. 김마스타의 <부산에 가면>을 듣고 있으면 (임재범 심사위원의 말처럼) “바다가 보이고 파도가 보이고” 인생이 보인다.
두 번째는 2023년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이다. “내가 넘겨줄게”라는 페이커의 외침과 함께 한타를 뒤집는 슈퍼플레이를 할 때 환호를 억누를 방법이 없었다. 7년 만에 다시 손에 넣은 T1의 네 번째 우승컵은 노력, 우정, 승리 등 스포츠가 지향하는 가치를 최대치로 달성했다.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오른 자가 과거의 영광에 취하지 않고 주변의 질시와 비난에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지극한 드라마다. 포기를 모른 채 배우고 즐기는 챔피언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다시 오른 왕의 귀환. 사람들을 모으고 흔드는 곳엔 반드시 좋은 드라마가 있다.
마지막으로 <씨네21> 객원기자 최종면접에서 세 번째 울림을 느꼈다. 지원자들의 이력을 확인하고 직접 대면하는 내내 쉽게 정의하기 힘든 감정에 휩싸였다. 놀라운 이력에 경탄했다가, 그들이 쏟아온 노력 앞에 겸손해졌다가, 문득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치솟았다. 재능이 아니다. 갈망이다. 몇줄 이력에 미처 담지 못할 치열하고 간절한 노력의 서사. 지원자 개개인이 걸어온 길은 어느덧 겹치고 겹쳐 시대의 얼굴, 파도의 험난함으로 확장된다. 그들의 성취는 반대로 시대의 책임이기도 하다. 문득 얼굴이 뜨거워진다. <씨네21>을 아끼고 귀히 여기는 이들의 고맙고 뜨거운 마음 앞에 감히 미안함을 느낄 자격이나 될지 모르겠다.
극장 바깥에서 마주한 세번의 울림을 되새기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을 다시 본다. 스크린 바깥에서 나를 울렸던 감동들은 모두 이야기의 결과물이다. 마음을 흔드는 곳엔 반드시 좋은 서사가 있다. 영화는 반대다. 어떤 영화들은 정돈된 이야기 너머 찰나에 머물고자 애쓴다. 현실이 이야기를 소비할 때 영화는 이야기 너머 진실을 탐색한다(그리고 실패한다). 그 찰나의 이름은 때론 속임수이고 누군가에겐 진실이며 대부분 미완의 가능성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을 마주하며 영화의 힘이 결국 보지 못한 것, 보려 하지 않은 것, 보이지 않는 것마저 목격시키는 것에 있음을 실감한다. 진실과 거짓, 이야기 너머의 무언가. 그 혼란스럽고 영롱한 빛이 사라지지 않는 한 스크린의 마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도파민으로 범벅이 된 무수한 감동을 잠시 뒤로한 채, 멀고 좁고 어두운 방까지 굳이 찾아들어갈 이유는 그거면 충분하다. 아직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