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싱글 인 서울’, 첫사랑을 교열하다 발견한 오류, 온전히 마주해야 가능한 그 다음의 사랑
2023-11-29
글 : 임수연

논술학원 강사 영호(이동욱)는 첫 수업 시간부터 탁월한 외모로 학생들의 관심을 받을 만큼 미남이지만 세속적인 인기에는 별 관심이 없다. 회식을 멀리하고 혼술을 즐기는 그는 자신만의 싱글 라이프를 전시한 사진에 감성적인 문구를 곁들인 인스타그램 운영으로 파워 인플루언서가 됐다. 한편 도시별 싱글 라이프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 ‘싱글 인 더 시티’를 준비 중인 출판사 편집장 현진(임수정)은 싱글이라더니 갑자기 임신을 했다는 작가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기획에 부합하는 작가를 고심하던 현진에게 출판사 대표 진표(장현성)가 영호를 추천한다. 영호에게도 작가 등단의 꿈이 늘 가슴속에 남아 있었기에, 에세이 시리즈의 한 꼭지인 ‘싱글 인 서울’을 맡는 건 꽤 솔깃한 제안이다. 하지만 얼굴도 보기 전에 현진이 영호를 뒷담화하는 현장부터 들키는 등 어쩐지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삐걱거린다. 알고 보니 둘은 대학 선후배였는데, 영호는 현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그리 다정하지 않게 군다. ‘혼자’에 대한 관점과 책의 방향성에 대한 이견으로 끊임없이 부딪치지만 두 사람은 대화를 통해 점점 타협점에 이르면서 자연스레 심적으로도 가까워진다. 결정적으로 회식 자리에서 충동적으로 저지른 한 사건 이후로 영호와 현진 사이에는 기묘한 로맨스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런데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출판사 직원들이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영호의 ‘싱글 인 서울’과 홍 작가(이솜)의 ‘싱글 인 바르셀로나’의 일부 에피소드가 겹쳐 마치 같은 사건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신상이 알려지지 않은 로맨스 소설계 스타 작가 홍 작가가 출판사를 방문한다.

<싱글 인 서울>은 책을 만드는 과정을 새로운 사랑의 시작과 병치한 로맨스영화다. 책은 단지 개인의 자의식과 필력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좋은 편집자가 거시적인 시각을 갖고 작가와 부딪치며 함께 더 나은 방향을 찾아나가야 한다. 나의 경험을 글로 풀어쓰면서 스스로도 잊고 있었던 기억이 되살아나거나 기억의 오류를 찾아내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아픈 사랑의 기억을 봉인하고 ‘싱글’이라는 방어기제를 택한 남자의 성장담에 그치지 않고 당시 여자의 입장은 어땠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광식이 동생 광태> <건축학개론> 등 명필름이 이전에 만들었던 첫사랑 영화가 남성 화자 입장에서 서투른 첫사랑을 그렸다면 <싱글 인 서울>은 당시 그와 시간을 보냈던 여자의 입장은 어땠는지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반전을 꾀한다. 출판사 편집장 현진과 주변 캐릭터를 통해 출판계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점 또한 이 영화가 ‘책 쓰기’를 소재로 삼아야만 했던 당위성을 뒷받침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상당수 로케이션을 명필름 제작사가 위치한 파주출판도시에서 발견했다.

“여자의 첫사랑은 처음 하는 화장처럼 어설프다. 20대는 화장을 안 해도 예쁜 나이다. 하지만 가장 진하게 화장을 한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여자 입장에서 20대 첫사랑의 기억을 서술한 대사. <싱글 인 서울>은 지질하고 서툴렀던 첫사랑을 미화나 왜곡 없이 온전히 마주해야 비로소 잘 갈무리하고 그다음 사랑도 잘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CHECK POINT

<광식이 동생 광태> 감독 김현석, 2005

광식(김주혁)은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너무 소심하고, 광태(봉태규)는 진득하게 한 여자에 정착하지 못하는 자유연애를 지향한다. 너무 다른 두 형제가 각자의 이유로 사랑과 연애 때문에 갈등하고 성장하는 로맨스영화. 두 주인공 못지않게 광식의 애틋한 첫사랑 윤경(이요원)의 사연과 광태와 잠자리 위주의 연애를 하는 경재(김아중)의 캐릭터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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