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나폴레옹’, 현대에 도착하지 못하고 그 시절에 갇혀버린 영웅담
2023-12-06
글 : 이자연

1793년 1월21일,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 위에서 민중의 심판을 받은 뒤 사람들은 새로운 영웅을 갈망했다. 민주주의 실현의 성지로 떠올랐던 광장은 광기와 공분의 장으로 전환된 지 오래고, 사람들은 계급사회를 향한 단죄와 처벌에 중독된 듯 끝없는 판정을 원한다. 불안한 국가 정세 속에서 때마침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낸 나폴레옹(호아킨 피닉스)은 대중의 지지를 받으며 선망의 대상으로 떠올랐고, 1799년 브뤼메르 쿠데타를 통해 마침내 황제 자리에 오른다. 한편 한 사교파티에서 우연히 마주친 조세핀(버네사 커비)에게 첫눈에 반한 나폴레옹은 그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한다.

<나폴레옹>은 역사가 다루지 않은 나폴레옹의 인간적인 면모를 다양한 각도로 조명한다. 대포를 터뜨릴 때마다 두손으로 귀를 막거나, 연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야트막한 허세를 부리거나, 이역만리 전쟁터에서 조세핀의 외도를 알게 된 직후 프랑스로 돌아가는 충동적인 모습이 그렇다. 동시에 세계사적 성웅으로서의 면모도 잊지 않는다. 군사적·정치적 세력을 유럽 전역으로 넓혀나간 나폴레옹은 창조적으로 전장을 군림하며 승리를 거듭한다. 섬세하고 계획적이며 대담한 그의 전략은 오스트리아 제국과 러시아 제국의 동맹으로 그 끝을 예상할 수 없던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빛을 발한다. 특히 주변의 자연환경과 상대 국가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영리하게 이용해내는 모습은 프랑스 제국의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으로 떠오르게 된다.

영화는 전쟁터의 긴박한 순간을 밀도 있게 묘사하며 압도감을 높이고, 현실성 높은 디테일을 통해 아비규환을 구현한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하고 싶었던 기본 목적과 달리, 여성을 향한 나폴레옹의 지나친 통제욕과 폭력적인 성향을 웃음으로 무마하려는 방식은 다소 무책임하게 비쳐지기도 한다. 또한 세계사가 기억하는 영웅의 삶에 비중 높게 등장하는 조세핀을 오로지 나폴레옹의 연인으로서만 기능하게 한 점은 강한 아쉬움을 남긴다. 조세핀이 단편적이고 납작하게 그려질수록, 나폴레옹의 집착적인 구애와 사랑을 향한 갈급함의 설득력도 함께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그외에 시대적 고증과 미술적 상상력은 우직한 힘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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