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 방송 작가 혜영(한선화)이 휴가를 내고 모처럼 고향 부산을 찾는다. 얼마 만의 귀향인지 혜영은 부산대교가 주황색에서 회백색으로 바뀌었다는 것도 이번 방문에서야 알았다. 부산 영도에서만 몇십년째 거주 중인 엄마 화자(차미경), 맏언니 혜진(한채아), 늦둥이 동생 혜주(송지현)는 아버지의 제사랍시고 고향에 온 혜영이 반갑지만 낯설다. 제사가 끝나도 혜영은 서울로 올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가족들은 그런 혜영에게 의문을 품는다. 한편 화자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건망증이 잦아진다. 가까운 기억을 잊기 일쑤고 하지 않던 실수도 반복해 저지른다. 혜영은 이상함을 느껴 화자와 병원을 찾고, 화자는 지금의 건망증이 단순 노화에 의한 증상이 아님을 진단받는다. 한편 혜영은 어깨너머로 들은 후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화자의 과거를 문득 기억해낸다. 화자는 조선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뒀고, 화자의 식구는 어머니를 일본 교토에 남겨둔 채 영도에 와 지금껏 사는 중이다. 어느 날 세 자매는 화자가 평생 간직한 교토에서 온 한통의 편지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 편지는 혜영과 화자, 혜진과 혜주의 삶에 각각 새로운 계기를 제공한다.
편지와 일본과 겨울. 말 못할 사연을 뒤늦게 고백하는 몇편의 영화들이 자동으로 연상된다. <교토에서 온 편지>를 이루는 핵심 정서 또한 네 여자의 숨겨둔 사연으로 채워간다. 이들의 사연은 고향이자 거주지인 부산의 영도와 관련 있다. 고향에 돌아온 여자와 고향에 갈 수 없는 여자, 고향을 떠날 수 없는 여자와 고향을 떠나고 싶은 여자. <교토에서 온 편지>의 가장 큰 미덕은 네 여자의 사연이 어느 하나 소홀하지 않게 정성 들여 묘사된다는 점이다. 영화는 유사한 구성의 다른 작품들이 통상적으로 취하는, 엄마가 겪어온 인고의 세월을 뒤늦게 알아채는 딸들의 후회로만 이야기를 채우지 않는다. 기억의 끝에 선 엄마도 더 늦기 전 딸 셋이 각자 앓아온 응어리를 알아채고 위로한다. 지나치게 친절하게 다음에 벌어질 일을 암시하는 몇몇 플롯은 아쉽게 느껴지지만, 진득하게 네 여성의 이야기 모두를 듣고 위로하려는 영화의 섬세한 태도가 아쉬움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