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7일 오후 2시, 경기콘텐츠진흥원(이하 경콘진) 부천 본원 10층. 한 테이블씩 차지한 20명이 앞사람에게 뭔가를 설명하느라 분위기가 소란하다. 테이블의 주인들은 모두 ‘2023 경기 시나리오 기획개발지원 사업’에 선정된 작가들로, 사업의 마지막 활동인 비즈니스 매칭에 나선 것이다. 이날 오후 4시까지 진행된 ‘비즈매칭’은 지난 11월6일부터 15일까지 개최된 온라인 쇼케이스에서 영상 제작·투자사들의 사전 신청을 받아 이뤄졌다. 작가들이 시나리오·극본을 피칭하는 영상을 보며 마음에 든 작품을 발견한 영상 관계자들은 해당 작품을 쓴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직접 듣고 향후 제작 가능성을 엿봤다. 20분씩 할당된 개별 미팅 시간에 맞춰 관계자들이 바뀔 때마다 잠시 긴장한 모습을 보이던 작가들도 이내 관심 어린 질문에 적극적으로 답하며 자신들의 작품의 매력을 피력했다.
경기 시나리오 기획개발지원 사업은 경콘진이 한국영화감독조합(DGK)과 협력해 2018년부터 추진해온 사업이다. 공모를 통해 독창성을 지닌 장편 극영화 시나리오를 발굴하고 신인·기성 관계없이 유망한 작가를 육성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 지난해부터는 확장성 있는 콘텐츠 IP 개발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공모 대상에 시리즈 극본을 추가해 규모를 키워나가고 있다. 사업에 선정된 작가들에겐 4개월간 현직 영화감독과 멘토링, 교육 프로그램 및 워크숍, 비즈매칭, 창작지원금을 제공해 단기간에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리고 실질적인 영상화의 기회까지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올해는 4월20일부터 5월22일까지 영상화가 가능한 자유 소재의 순수 창작물 등을 요건으로 한 작품의 공모 접수를 받았으며 응모작 381편 중 시나리오 부문에서 15편, 세계관 부문에서 5편을 각각 뽑았다. 멘토의 경우 시나리오 부문에서는 <담보>의 강대규 감독, <스위치>의 마대윤 감독, <특송>의 박대민 감독, <모럴센스>의 박현진 감독,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의 부지영 감독, <경관의 피>의 이규만 감독이, 세계관 부문에서는 <D.P. 개의 날>의 김보통 작가, 이동하 레드피터 대표가 맡았다.
본원 10층에서 창작자들이 침착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동안 9층에서는 멘토 감독들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멘티 작가들이 제출한 총 20편의 완성작 중 상금이 걸린 우수작 7편을 선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최종 심사는 감독들이 담당 멘티 작가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가 자중하고, 격론이 오가다가도 이내 화기애애하게 진행되는 모습이 반복됐다. 오후 4시, 9층 대회의실에서 시상식이 열렸다. 심사를 마친 멘토진과 경콘진의 사업 담당자들, 10층에 있던 작가들과 영상 관계자들이 마침내 한자리에 모여 담소를 나눴다. 사업담당 감독이자 DGK 감사인 이우철 감독의 유머러스한 사회와 명함 경품 추천 이벤트로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진 오후 5시쯤 본식이 진행됐다. 사정상 불참한 김보통 작가를 제외하고 멘토 7명의 소감을 듣는 시간을 먼저 가졌다. 멘토들은 공통으로 “단시간에 굉장히 재밌어지는 여러분의 글을 읽으면서 같은 창작자로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박현진 감독)라며 이 사업 참여로 성장한 건 오히려 자기 자신이라는 말을 전했다. 곧이어 담당 멘티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멘토들이 담당 멘티들에게 수료증을 직접 전달하는 순서가 이어져 뭉클함을 더했다.
대망의 수상작 발표만 남자 장내에는 순식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영예의 시나리오 부문 대상(상금 5천만원)은 50대 여성이 검은돈 20억원을 세탁하기 위해 식당을 개업한다는 내용의 범죄 드라마 <맛나식당>에 돌아갔다. <맛나식당>의 박용주 작가는 강대규 멘토 감독을 포함한 멘토진에게 감사를 전하며 “주인공 영은과 제게 많은 영감을 주었던 주위의 40·50대 여성들에게 영광을 돌린다”는 수상 소감을 남겼다. 세계관 부문 대상(상금 1천만원)은 코마에 빠진 환자의 영혼을 보는 능력을 가진 응급의학의 박화부의 활약을 그린 시리즈 <영혼 보는 의사, 화부>가 차지했다. 멘토였던 이동하 대표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것으로 운을 뗀 임찬익 작가는 “좋은 글은 좋은 장소에서가 아니라 여유 있는 머릿속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으로 어디서든 끝까지 글을 쓰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시나리오 부문 최우수상(상금 2천만원)은 윤서현 작가의 <아스가르드를 찾아서>(박대민 멘토 감독)가, 우수상(상금 500만원)은 이승주 작가의 <독방>(박대민 멘토 감독), 박은미 작가의 <홍률은 비남비녀>(마대윤 멘토 감독), 김현정 작가의 <캐리어를 모으는 여자>(박현진 멘토 감독)가 받았다. 세계관 부문 최우수상(상금 500만원)은 정재휘 작가의 <탐정 좋댓구>(김보통 멘토 작가)에 주어졌다. 경기 시나리오 기획개발지원 사업을 통해 완성도를 갖춘 20개의 극영화 시나리오 및 시리즈 극본이 이제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마쳤다. 과연 어떤 글을 가장 먼저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을까. 당장 내년부터 ‘경콘진표’ 작품의 제작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