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송경원 편집장] 그 많던 관객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 많은 관객은 어디서 나타난 걸까
2023-12-08
글 : 송경원

아는 만큼 보인다.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앞뒤로 뭔가 생략된 느낌이다. 이렇게 늘려보면 어떨까. 관심 있는 만큼 알고 싶고,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에 빠진다. 이렇게 바꿀 수도 있겠다. 관심 있는 만큼 보이고, 사랑하는 만큼 궁금하다. 아이가 태어난 뒤 작은 변화가 있다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는 거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시야에 들어오더니 어느샌가 눈에 밟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과거의 내게 거리에 나온 아이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배경에 가까웠다. 지금은 이 구역에 유모차가 몇대인지부터 파악하고 각자의 꼴로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시선을 사로잡는다. 세상은 마치 여러 겹으로 포개진 그림 같아서 내가 관심을 기울이는 정도에 따라 매번 새로운 색깔로 빛난다. 지루할 틈이 없다.

극장가에 단비를 내린 <서울의 봄>의 흥행세를 분석하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여러 리포트에서 2030 관객들이 극장을 찾은 것을 중요한 동력으로 꼽았다. 1980년대를 겪어보지 못한 젊은 층이 역사에 모티브를 둔 상상에 열광하는 게 인상적이라는 반응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직접 시대를 겪고 역사를 기억하는 중장년층이 밀착하고 호응하는 게 당연하니 이례적인 반응에 신기할 법도 하다. 하지만 ‘상식’이란 단어의 편리함은 종종 시야를 가린다. 젊은 관객들이 단 한편의 영화에 반응하여 갑자기 극장에 나타났을 리 없다. 차라리 극장을 꾸준히 찾았던 이들의 행보를, 찾고 싶은 이들의 바람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게 더 설득력 있다. 젊은 관객들로 넘쳐난다는 <서울의 봄> 상영관에 앉아 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힌다. 산업으로서 극장이 쇠퇴하고 있는 건 명백하다. 다만 그걸 극장의 가치와 의미의 퇴색으로 곧장 연결 짓는 건 게으른 일이다. 어떤 극장들은 여전히, 아니 전보다 더 뜨겁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영화를 보며 다시 한번 놀랐다. 늦은 시간 마지막 상영 회차까지 꽉 찬 객석을 보며 여기가 2023년 한국인가 싶었다. 모두가 극장의 위기, 한국영화의 위기, 독립영화의 위기를 말하는데, 여기만 딴 세상이다. 물론 단편적인 분위기만 보고 전체를 판단할 순 없다. 합리적인 반응. 영화제에 모인 한줌의 관객이 독립예술영화를 찾아보는 이들의 전부라고 평가절하할 수도 있다. 상식적인 추론. 그럼에도 오직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극장까지 발품 팔아 먼 길을 찾아오고,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는 열정을 마주하면 함께 뜨거워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언젠가 대중문화 산업의 제일 앞자리에서 밀려나는 날이 올지라도, 결국 영화는 이런 식으로 살아남는 게 아닐까. 어둠 속에 둘러앉아 피운 작은 모닥불처럼.

12월을 맞이하며 2023년을 되돌아본다. 올 한해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정작 강 한가운데에 있을 땐 흐름을 가늠하기 어렵다. 2023년 영화계는 과거의 수치와 지표가 무용해질 만큼 역동적인 변화 한가운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12월은 1년의 마지막 달을 핑계 삼아 지난 걸음을 되짚어보라며 받는 선물 같다. 변화는 이미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중이고 이제 바야흐로 점검의 시간이다. <씨네21>에서는 앞으로 한달 동안 2023년에 되짚어봐야 할 것을 더듬어보려 한다. 주간지의 바쁜 걸음을 핑계로 흘리고 지나갔을지도 모를 소중한 순간부터 거시적인 시야에서 조망해야 할 흐름까지, 차근차근 살펴볼 것이다. 우리는 아직 2023년 한국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러니 스크린을 향한 꺼지지 않는 관심으로 2023년은 물론 2024년에도 멈추지 않고 살펴볼 것이다. 우리가 사랑에 빠진 대상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자 할 것이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지루할 틈 따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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